
한때 기업가치 8000억원으로 국내 명품 플랫폼 시장의 '유니콘'으로 평가받았던 발란이 결국 법정관리 절차에 돌입했다. 창업자인 최형록 대표는 최근 판매대금 미정산 사태와 관련해 경찰 수사를 받고 있으며, 출국금지 조치까지 내려진 상태다.
10일 업계 등에 따르면 발란이 지난달 31일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자 서울회생법원은 지난 4일 회생 개시를 결정, 별도의 외부 관리인을 선임하지 않고 최형록 대표를 관리인으로 지정했다. 이에 따라 그는 회생계획안 제출과 형사 수사 대응이라는 이중 과제를 동시에 떠안게 됐다.
최형록 대표는 공군 회계장교 출신으로, 전역 직후인 2015년 발란을 창업했다. 명품 셀러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C2C 기반 플랫폼 모델로 출발한 발란은, 코로나19 기간 소비 증가와 비대면 수요에 힘입어 급격히 성장했다.
2020년 243억 원이던 연매출은 2022년 891억 원까지 확대됐다. 이후 최 대표는 적극적인 마케팅과 투자 유치 전략을 통해 발란을 '글로벌 3위 명품 플랫폼'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외형 성장의 이면에는 구조적인 수익성 부재가 존재했다. 발란은 2020년 이후 한 해도 흑자를 내지 못했다. 특히 2022년에는 연간 순손실이 374억 원에 달했으며, 2023년에도 123억 원의 손실이 이어졌다.
2023년 말에는 자산총계 76억 원, 부채총계는 153억 원으로 자본총계 –77억 원을 기록하며 완전자본잠식에 빠졌다. 유동자산은 약 56억 원에 불과한 반면, 유동부채는 약 138억 원으로 단기 유동성 부족 규모만 82억 원에 달했다. 사실상 외부 자금 유입 없이 셀러 정산이나 운영비 지출이 불가능한 구조였다.
이 같은 재무 상황은 회계감사보고서에 '총부채가 총자산을 초과하고 있어 계속기업으로서 존속 가능성에 중대한 불확실성이 있다'고 명시될 만큼 심각했다.
그럼에도 발란은 2021년부터 3년간 약 691억 원의 광고선전비를 집행하며 외형 확대에 집중했다. 연간 매출의 30~40%를 마케팅에 투입했지만, 이를 상쇄할 수익 기반은 마련되지 않았다.
내부 통제 구조 역시 미흡했다. 셀러 정산 시스템 개선이 미뤄진 채 운영되면서 지난달 판매대금 미지급 사태로 이어졌다. 발란은 3월 24일부터 정산을 중단했고, 28일부터는 상품 거래까지 멈췄다.
사태가 공식화되자 일부 입점업체들은 최 대표를 사기 및 횡령 혐의로 형사 고소했다. 현재까지 접수된 고소장은 20건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과거 티몬·위메프 사례 이후 발란 측이 정산 대행사 도입을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정산이 중단되기 직전까지도 광고상품 가입을 유도했다는 점에서, 단순 실수라기보다 계획된 정산 연기였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이에 경찰은 최 대표를 출국금지 조치하고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투자자들과의 신뢰 훼손도 피할 수 없게 됐다. 발란은 지난 2월 28일 코스닥 상장사 실리콘투로부터 총 150억 원 규모의 전환사채(CB) 투자를 유치했다. 1차로 75억 원이 납입됐고, 나머지는 발란이 특정 조건을 충족할 경우 지급되는 구조였다.
그러나 회생 신청이 알려지자 실리콘투는 "사전에 관련 사실을 전달받지 못했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콜옵션을 통해 확보한 지분 50%도 회생 절차 진행에 따라 실질적 의미를 잃을 가능성이 커졌다.
법원이 회생절차 개시를 결정함에 따라, 발란의 채무는 일시 동결됐다. 이에 셀러들이 보유한 정산금 채권은 대부분 일반 무담보채권으로 분류돼 변제 우선순위가 낮을 수 있다. 업계에서는 회수율이 10% 미만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일부 셀러들은 민사소송 외에 형사고소를 통해 개인 책임을 묻는 전략으로 전환하고 있다.
현재 발란의 회생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현재까지 인수 의사를 밝힌 기업은 없다. 브랜드 이미지 훼손과 재무 리스크, 정산 채무 등 복합적인 부실 요인으로 인해 전략적 투자자(SI)나 재무적 투자자(FI)의 접근 가능성도 낮다는 평가다. 회생계획안 제출 마감일은 오는 6월 27일이다. 계획안이 제출되더라도 법원이 이를 인가할지는 불확실하다. 특히 자력 회생이 어려운 상황에서 인수자 확보에 실패할 경우, 파산 절차로 전환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형록 대표는 회생 신청 직후 "정산 문제 해결과 서비스 정상화를 위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신뢰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플랫폼 산업 특성상, 한 번 잃은 신뢰를 회복하기란 쉽지 않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회계 기반의 투명성 확보와 자본 구조 정상화, 그리고 셀러와의 관계 회복이 모두 전제되지 않는 한, 발란의 회생은 어려울 것이란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신동우 법무법인 대온 변호사는 "회생 절차가 시작되면 일반 무담보채권자인 셀러들은 변제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어 실질적인 회수율이 매우 낮을 가능성이 크다"며 "특히 정산금이 곧바로 매출과 운영자금으로 연결되는 구조였던 중소 셀러들에게는 회생이 오히려 유동성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결국 플랫폼 사업의 본질은 신뢰인데, 그 신뢰가 무너진 상황에서 법적 회생만으로 사업 정상화를 기대하긴 어렵다"며 "투자자와 판매자, 소비자 모두가 이탈한 상태에서 다시 신뢰를 구축하는 건 사실상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일"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