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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비관세장벽을 고려한 상호관세 시행을 언급한 가운데 한편으론 미국이 수입품에 대한 원산지 규정을 강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가공식품에 집중된 케이푸드(K-Food·한국식품)의 대미 수출과 중소 농식품업체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뒤따른다.
NH농협금융지주 NH금융연구소(금융연구소)는 최근 이런 내용을 담은 ‘글로벌 통상환경 변화에 따른 국내 농식품 산업 리스크 및 대응 방향’ 보고서를 내놨다.
이소연 금융연구소 부연구위원은 “미국의 비관세장벽 강화는 중국산 원재료 사용 제한 등 원산지 규제로 이어질 수 있다”며 “영세한 중소 농식품업체는 원산지 증명, 품질 인증 등에 대한 대응 부담이 대미 수출 장애물로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이후 관세율은 낮아졌지만, 비관세장벽은 견고해지고 있다. WTO 무역정책검토기구에 따르면 전세계 신규 비관세장벽은 2006년 1953건에서 2016년 3862건, 2023년에는 6360건으로 급증했다.
미국은 2012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관세를 낮추는 대신 비관세장벽을 강화한 선례가 있다. 2011년 미국은 식품 공급 안전성 보장을 명분으로 ‘식품안전현대화법’을 도입했다. 이에 따라 국내 농식품 수출업체들은 미국 식품의약국(FDA) 실사, 안전성 검증 등 의무 부담이 커졌다. ‘무역장벽보고서(NTE)’ 등을 통해 한국의 비관세 조치를 허물라고 압박하면서도 자국의 비관세장벽은 되레 높인 꼴이다.
금융연구소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산 원재료를 규제하는 형태로 한국에 우회적인 비관세장벽을 쌓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국산 농산물을 주원료로 사용하더라도, 중국산 원재료를 함유하면 수출이 차단될 수 있는 셈이다. 김기환 금융연구소 부연구위원은 “자국민에게 안전한 식품을 공급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면 이를 저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원산지 규제는 케이푸드 수출시장을 흔들 수 있다. 금융연구소에 따르면 가공식품에 빈번하게 활용하는 소맥분, 팜유류, 감자·고구마 전분 등 원재료는 대부분 외국산이다. 대표적 수출 품목인 라면 역시 투입 원재료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한다.
전문가들은 중소 농식품기업이 큰 피해를 볼 것으로 진단한다. 김 부연구위원은 “미국이 중국산 원료가 일정 비율 이상 포함된 제품의 수입을 제한하거나 추가 검증 절차를 도입하면, 대기업은 해외 생산시설 현지화 등을 통해 대응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규제 관련한 정보 파악부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했다.
현장에서는 우선 농식품의 안전성 검사 비용, 포장비 지원을 확대해달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신세경 한국농식품여성CEO연합회장은 “영세 수출업체들은 수출 허가 여부도 불확실한 조건에서 안전성 검사, 포장비에 품목당 최소 1000만원 이상을 투자하는 상황”이라며 “사업 계획이 명확한 업체를 대상으로 10년 무이자 거치, 분할 상환하는 방식의 금융 지원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김소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