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제47대 대통령이 20일(한국시각 21일 새벽) 취임 선서를 하며, 공식 임기를 시작했다. 우리에겐 8년 전 취임 때와 이후 행보에서 너무 강력한 이미지로 각인돼 있는 만큼, 그의 새 임기가 낯설지만 않고 익숙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이날 임기 첫날부터 쏟아 내놓은 무더기 초강력 행정명령은 앞으로의 4년 시간이 한-미 관계에도 평탄한 길만은 아닐 것을 예고했다.
가장 먼저, 우리는 트럼프 1기 행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상대가 없는 상태'로 그의 취임을 맞았다. 우리는 이전 1기 때와 짜맞춘 듯 똑같이 벌어진 대통령 탄핵이란 비상시기 속에 그의 행정명령과 선언 등을 고스란히 맨 몸으로 받아야하는 처지다. 원래부터 존중의 자세가 약하기도 하거니와, 우리에겐 고려하거나 예우해야 할 상대 조차 없으니 더욱 거칠어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해야하는 게 우리 입장이다.
우리 독립부터만 따져도 80년 이상 다져온 관계이니 하루아침에 금이 가거나 깨질 일은 아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보편관세나 첨단기술 보호, 자국위주 산업 재편 의지가 어느 일방에 절대 유리하도록 흐르지도 않을 것이다. 다행히 우리는 현재 우리 객관적 상태보다 훨씬 양호하다 할 수 있을 정도의 기술력과 산업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오히려, 우리의 적극적인 협조 여부에 따라 향후 미국의 전략이 바뀔 수 있는 상황에 있는 것들도 수두룩하다.
일례로 미국은 민심이 물가에 의해 좌우되는 나라다. 관세 인상은 자국 물가인상의 근본 요인으로 직접 작용한다. 따라서 지난해 우리가 미국을 상대로 올린 557억달러의 무역흑자가 고스란히 우리 이익 또는 미국의 손해로 해석돼선 안된다. 또 하나, 미국 정부의 전략적 방침에 따라 중국은 회피하면서도 질높은 완제품을 만들려면 한국산 반도체, 자동차기술, 조선 테크 등을 가져다 쓰지 않으면 안되는 형편이다. 우리 요구도 있지만, 미국의 요구가 더 큰 분야다.
한국 정부를 대표하는 상대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일정 혼란이 불가피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양국이 그래왔듯 '호혜적 동맹'에 기초한 전환기 시스템을 상처 받지 않게 유지하는 유연한 전략이 필요하다. 그리고 줄 것은 주더라도 보장 받을 것은 보장 받는 '기업식 거래'를 확장하는 것이 요구된다. 트럼프 2기 출범 첫 해 모든 것이 고정되기 전, 주요 기업들의 민간외교에 거는 기대가 커지는 이유다.
이진호 기자 jho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