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국계 보험사를 중심으로 심박스를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고객 정보의 안전과 신뢰성이 중요한 금융사까지 파고들었다는 점에서 문제입니다.”
업체 한 관계자는 “심박스는 보이스피싱에 주로 활용하던 변작기의 일종인데 최근들어 심박스를 활용하려는 기업이 늘고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국내 외국계 생명보험사와 손해보험사를 비롯해 국내 카드사는 물론 일반 기업까지 심박스를 사용한다는 계 업계 추정이다. 이처럼 이들이 활용하는 심박스는 변작기의 일종이다. 변작기는 발신번호를 변작하고, 해외 통화를 국내 통화처럼 중계하며, 다수의 유심을 관리하는 등 통신 경로를 적극적으로 조작하고 우회하는 역할을 한다.
전기사업법에 따르면 자가전기통신설비를 설치한 자는 그 설비를 이용하여 타인의 통신을 매개하거나 설치한 목적에 어긋나게 운용하거나 신고 또는 변경신고한 사항과 다르게 운용하면 안 된다
일례로 한 외국계 생보사 콜센터는 본사 500석을 비롯해 대리점 1000석에 해당하는 심박스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심박스는 여러 개의 휴대전화 유심 칩을 장착해 휴대전화 발신 정보를 조정할 수 있는 장치인 만큼 통신장비에 해당한다는 게 법률적 지적이다. 이 장비는 인터넷 전화(VoIP)를 이동통신 전화(VoLTE/3G)로 변환하거나, 해외에서 걸려온 전화가 마치 국내에서 걸려온 것처럼 발신 전화번호를 변경할 수 있도록 중계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한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는 “콜센터에서 모바일 유심이 장착된 심박스를 사용하는 것은 현행 법률, 특히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여러 가지 심각한 법률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했다.
전기통신사업법 제84조의2는 정당한 사유 없이 가입자 임의로 본인의 전화번호를 다른 번호로 변경하여 음성전화 발신 및 문자 메시지를 발송하는 행위, 즉 발신번호 변작을 금지하고 있다.
이 규정은 주로 보이스피싱 등 범죄에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핵심적인 법적 장치인데 심박스는 해외에서 걸려온 전화를 국내 휴대폰 번호(010)로 변작해 표시되도록 하는 핵심 기능을 수행한다. 그 사용 자체가 이 조항에 위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했다.
정부 관계자도 “발신번호 변작 행위는 단순한 규제 위반을 넘어 형사처벌의 대상이 된다”고 지적했다. 전기통신사업법 제95조의2 제4호 및 제5호에 따르면, 다른 사람을 속여 재산상 이익을 취하거나 폭언·협박·희롱 등의 위해를 입힐 목적으로 전화(문자메시지 포함)를 하면서 송신인의 전화번호를 변작하는 등 거짓으로 표시한 자, 또는 영리를 목적으로 송신인의 전화번호를 변작하는 등 거짓으로 표시하는 서비스를 제공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고 규정돼 있다.
보험·카드사의 경우 금융기관에 특화된 규제 환경과 정면으로 충돌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또 다른 변호사는 “심박스의 주요 기능은 발신번호를 변작하거나 통화의 실제 발신지를 불분명하게 만든다”며 “이러한 익명성 추구는 금융실명법이 강조하는 금융거래의 투명성 및 추적 가능성 원칙과 충돌은 물론이고 금융 계약 체결, 보험금 청구, 고객 정보 변경 등 금융 거래와 관련된 중요한 통화가 심박스를 통해 이루어질 경우, 통화 발신자의 신원 확인 및 통화 기록의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콜센터 심박스 이용현황(업계 추산)
이경민 기자 km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