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땅을 가르며 101m로 길게 늘어선 조선 목조 건축의 걸작. 국보 ‘종묘 정전’이 5년간 보수 공사를 마치고 20일 공개됐다. 그간 창덕궁 구(舊) 선원전에 모셨던 조선 왕과 왕비의 신주(죽은 사람의 위패) 49위도 종묘 신실로 되돌아왔다.
이날 위용을 드러낸 종묘 정전은 산뜻한 흰색을 되찾은 용마루(지붕 중앙 수평부분)와 함께 기와도 한결 가지런해진 모습이었다. 앞서 공장제와 수제 기와를 함께 쓰면서 하중이 맞지 않는 문제가 있어 이번엔 수제 기와 7만장으로 전면 재시공했다. 국가무형유산 제와장 김창대 보유자가 수년에 걸쳐 제작·납품했고 번와장 이근복 보유자가 각 기와를 이어 얹었다. 이 밖에도 월대 일부를 보수하는 등 노후화된 주요 부재를 정비·교체했다. 정전 앞에 깔려 있던 시멘트 모르타르는 수제 전돌로 대체했다. 색이 바래고 군데군데 훼손됐던 단청도 전통방식으로 새단장했다. 1989~1991년 이후 약 30년 만에 이뤄진 대공사엔 5년 간 총 200억원이 투입됐다.

공사 과정에서 약 300년 전 상량문(上樑文)도 발견됐다. 상량문은 목조 건물을 짓거나 고친 역사를 기록한 자료로서 일반적으로 건물의 최상부 부재인 종도리(마룻도리)를 올릴 때 함께 넣어둔다. 국가유산청은 2023년 4월 정전 11번째 방의 종도리 하부에서 상량문을 찾았다. 국가유산청 측은 “영조 대에 정전을 증축하면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며 “1726년 공사 과정을 기록한 ‘종묘개수도감의궤’(宗廟改修都監儀軌)와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상량문은 국립고궁박물관의 보존처리를 거쳐 수록 내용을 밝히는 작업 중에 있다. 이밖에도 해체한 나무 부재의 연륜(나이테) 연대를 조사한 결과 광해군(재위 1608∼1623) 대의 목재가 사용된 점이 확인되는 등 중수도감의궤와 일치하는 연구 성과가 나왔다.


이날 오후엔 조선 태조 이성계(재위 1392∼1398) 등 신주 49위를 다시 정전으로 모시는 환안(還安) 의례가 거행됐다. 환안제가 열린 건 정전 및 영녕전 수리가 있었던 1870년(고종 7년) 이후 155년 만이다. 궁궐 밖 운반용 가마인 신연(神輦) 등 가마 28기와 말 7필이 신주를 모시고 창덕궁을 출발, 광화문에서 종묘까지 약 3.5㎞ 구간을 행진했다. 종묘에 신주를 무사히 모신 뒤엔 이를 신령들께 고하는 고유제(告由祭)가 전주이씨대동종약원 봉행으로 열렸다.
총 19칸의 신실 앞에 120명의 종친들이 제복(第服)차림으로 약 40분간에 걸쳐 예를 올리는 행사는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최응천 국가유산청장 등 주요 인사 외에 초청된 시민들도 함께 참관한 가운데 열렸다. 10여개국 대사 및 외교관들도 정중하게 지켜봤다. 지난해 8월 부임해 종묘 정전을 처음 찾은 야니스 베르진스 주한라트비아대사는 고유제 후 기자와 만나 “옛 조상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의례가 우리나라(라트비아)에도 있는데 이 같은 문화적 동질성을 발견해 반갑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진 준공 기념식에서 유인촌 장관은 “많은 이들의 헌신에 힘입어 종묘의 위용과 품격을 마주할 수 있게 됐다”면서 “세대를 넘어 그 가치가 공유되길 바란다”고 소회를 밝혔다. 최응천 청장은 “이번에 확인된 복원 성과를 바탕으로 우리 문화유산을 가꾸는 데 힘쓸 것”이라고 했다.

국가유산청은 종묘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30주년과 정전 보수 완료를 기념해 21일부터 6월16일까지 종묘에서 ‘삼가 모시는 공간, 종묘’ 특별전을 연다. 종묘의 증·개축 및 보수의 역사를 소개하는 내용이다. 또 24일부터 5월 2일까지 종묘제례악 야간 공연이, 26일∼5월 2일에는 조선시대 왕비가 참여했던 국가 의례를 엿볼 수 있는 재현 행사가 선보인다. 앞서 코로나19와 정전 공사로 인해 영녕전에서 축소돼 열린 종묘대제도 오는 5월 4일 6년 만에 정전에서 일반 공개로 열린다.
☞종묘 정전=조선 왕실의 사당인 종묘에서도 중심 건물로 1395년 처음 건립됐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걸 광해군 대인 1608년 11칸 규모로 다시 지었고 영조(재위 1724∼1776)와 헌종(재위 1834∼1849) 대에 각각 4칸씩 증축됐다. 총 19칸의 방에 태조 이성계(재위 1392∼1398) 등 왕과 왕비의 신주 49위를 모시고 있다. 1985년 국보로 지정됐고 199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종묘)에 등재됐다. 정전 서쪽의 영녕전에도 16칸의 방에 왕실 신주 34위가 모셔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