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두칠성 빛난 별들이 물러가고 숫눈밭엔 산새가 출근 도장을 찍는다. 새 발자국을 보면 재밌는 게, 푸르릉 내려온 곳과 박차고 올라간 곳에만 굵고 널따란 발자국이 찍혀. 나머진 사뿐사뿐 걸어서 금세 바람에 흩어져. 새가 하늘로 오를 때 발바닥에 힘을 주는지 발자국이 배나 선명하고 날갯짓한 부분이 찍혀 있기도 해. 신해철의 낭송곡 ‘아버지와 나’를 들어봐. “난 창공을 날으는 새처럼 살 거라고 생각했다. 내 두 발로 대지를 박차고 날아올라 내 날개 밑으로 스치는 바람 사이로 세상을 보리라 맹세했다. (…) 저기 걸어가는 사람을 보라. 나의 아버지 혹은 당신의 아버지인가. (…) 이제 당신이 자유롭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나였음을 알 것 같다. (…) 길어진 그림자 뒤로 묻어 둔 채 우리 두 사람은 세월 속으로 같이 걸어갈 것이다.” 타갠(닮았다, 비슷하다란 전라도 방언) 사람, 아버지를 타갠 나. 새처럼 살고팠던 부자. 나는 그를 가장 타갠 사람.
새들 일가족이 머물다 날아가고, 다음 순서, 고양이 일가족이 살금살금 아침 행차. 아랫집 보일러창고에서 졸다 깬 어린 고양이들도 엄마를 따라 운동 시작이다. 생김새를 보면 누가 아빠 고양이인지 대번 알아차릴 수 있다. 이 아침 아빠는 보이지 않는다만 점박이들 백퍼 얼굴이 타갰다. 도시락을 안 싸온 아이처럼 춥고 가난한 고양이 일가에게 멸치라도 던져줄란다. 쥐들이 집 천장에서 뛰놀지 않게 해준 감사의 선물로다가.
당신은 과연 누구를 가장 빼닮았는가. 나는 누굴 가장 닮았을까. 얼굴과 마음, 어쩌면 행실과 말투와 글까지. 또 누가 있어 나와 당신을 가장 닮았을까. 무엇이 어떤 게 닮는다면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