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연방정부의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 사태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재정적자가 매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는 통계가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부과로 세수는 다소 늘었지만, 조 바이든 전 대통령 때까지 불어난 적자 규모가 워낙 방대해 이자도 겨우 갚는 수준 밖에 안 된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각국 관세율을 높이는 것도, 한국과 일본·유럽연합(EU) 등에 현금성 달러 투자를 압박하는 것도,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 줄기차게 금리 인하를 요구하는 것도, 연방 공무원을 대규모로 해고하려는 것도, 셧다운을 불사하고 민주당의 공공의료보험 ‘오바마케어(ACA)’ 보조금 연장안에 반대하는 것도, 이달부터 전기차 보조금을 없앤 것도, 인텔 등 기업 지분을 정부가 직접 매집하는 것도 모두 이 같은 심각한 재정 문제와 연결돼 있다. 미국 연방정부의 재정적자는 금융 시장에도 시한폭탄 같은 사안이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도 이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내년 11월 중간선거에서 역공을 당할 수도 있어 당분간 세수는 늘리고 세출은 줄이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관세 수입 170조원 늘었지만…2600조원 적자에 이자만 1500조원


11일 서울경제신문이 지난 8일(현지 시간) 미국 연방의회 산하 예산 분석 기관인 의회예산국(CBO)이 공개한 예산 보고서를 분석한 데 따르면 미 연방정부는 2025 회계연도(2024년 10월 1일~2025년 9월 30일)에 총 1950억 달러(약 279조 원)어치의 관세를 걷어 770억 달러(약 110조 원)를 걷었던 2024 회계연도(2023년 10월 1일~2024년 9월 30일)보다 1180억 달러(약 169조 원) 더 많은 수입을 얻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올 4월 5일부터 미국으로 수입되는 모든 제품에 10%의 보편관세를 매긴 효과가 반년도 안 돼 상당한 세수 효과로 돌아온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국가별 상호관세는 8월 7일부터 발효된 점을 감안하면 2026 회계연도(2025년 10월 1일~2026년 9월 30일)에는 관세 수입이 이보다 더 늘어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문제는 늘어난 관세 수입액 만큼이나 정부 부채 증가 부담도 커졌다는 점이다. CBO에 따르면 2025년 회계연도의 미국 연방정부 공공 부채 순이자 규모는 총 1조 290억 달러(약 1471조 원)를 기록해 직전 회계연도의 9490억 달러(약 1357조 원)보다 800억 달러(약 114조 원)나 늘었다. 미국 연방정부의 2025 회계연도 세입 규모가 5조 2260억 달러(약 7470조 원)인 점을 고려하면 이 가운데 20%가량을 이자를 갚는 데만 썼다는 뜻이다.
이자 비용을 제외한 연방정부의 지출도 이 기간 5조 7860억 달러(약 8265조 원)에서 6조 60억 달러(약 8589조 원)로 2200억 달러(약 315조 원)나 더 늘었다. 공공 의료보험인 메디케어와 사회보장 프로그램 관련 지출이 각각 8% 증가한 탓이다. 미국 연방의회가 공무원들에 대한 사회보장 혜택을 2024년 1월로 소급 적용한 데다 메디케어 가입률까지 증가한 결과였다.
연방정부 지출이 수입을 초과한 액수도 2024 회계연도 1조 8170억 달러(약 2598조 원)에서 2025 회계연도 1조 8090억 달러(약 2587조 원)로 거의 비슷했다. 관세 수입이 늘어 봤자 사회보장 지출 증가분을 메우는 데만 급급하다는 얘기다.
월스트리저널(WSJ)은 9일 이 보고서를 두고 “경기가 확장하는데도 1조 8000억 달러 수준의 재정적자가 그대로 유지됐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감세를 연장·신설하면서 사회보장과 메디케어는 건드리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군사비 지출은 늘리기를 원한다”고 지적했다.
머스크 ‘공무원 해고’도 효력 없어…트럼프 ‘감세 법안’도 악영향

미국 의회예산국의 통계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올 상반기에 이끌던 정부효율부(DOGE)의 노력도 별다른 영향을 못 미쳤음을 시사했다. 정부효율부는 1~7월 6개월가량 운영되며 연방정부의 여러 보조금을 없애고 수많은 직원들을 해고했다. 트럼프 대통령 재집권 후 정치로 외유를 떠났던 머스크 CEO는 1월부터 이 조직을 이끌다가 테슬라가 혁신 부족, 불매 운동 등으로 판매 부진 위기에 처하자 5월 경영 일선으로 복귀했다. WSJ는 “머스크 CEO는 정부효율부를 통해 2조 달러(약 2860조 원)의 지출을 절감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큰 흐름은 바꾸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2026 회계연도부터 관세 정책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오더라도 연방 적자는 해소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감세 법안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7월 4일 서명한 이른바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BBBA)’은 2017년 트럼프 대통령 1기 임기 때 시작한 한시적 기업 감세 조항을 올해 말 종료하지 않고 더 연장하는 내용을 담았다. 저소득층 의료보험인 메디케이드와 아동 건강보험프로그램(CHIP) 예산 삭감, 푸드스탬프 예산 삭감 등의 내용도 포함했다.
6월 5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의회예산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5월 13일까지 시행한 관세 인상 조치로 2035년까지 재정적자가 2조 5000억 달러(약 3575조 원)가량 줄어들 것으로 봤다. 또 연방정부 순차입액 감소에 따른 이자비용 절감으로 5000억 달러(약 715조 원) 정도의 적자 폭을 추가로 줄일 것으로 관측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대외 무역 보복으로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매년 0.06%포인트씩 감소하고 올해와 내년 물가는 0.4%포인트씩 상승한다는 가정 아래 총액은 2조 8000억 달러(약 4004조 원)로 낮춰 추산했다. 당시에는 한국 등 60여 개국의 개별 상호관세, 중국산 제품 30% 추가 관세, 캐나다·멕시코산 25% 관세, 자동차 부품 25% 관세 등만 가정해서 분석했다.
의회예산국은 그러면서 감세 법안으로 10년간 미국의 재정적자가 추가로 2조 4000억 달러(약 3432조 원) 더 늘어날 것으로 추정했다. 이 경우 관세를 통한 재정적자 축소 효과는 4000억 달러(약 572조 원)로 쪼그라들게 된다. 이는 경제성장, 금리와 같은 변수도 모두 제외한 수치다. 감세 법안은 트럼프 대통령과 머스크 CEO 간 사이도 갈라 놓았다. 머스크 CEO는 연방의회가 해당 법안을 처리하려고 하자 X(옛 트위터)에 글을 올리고 “의원들에게 전화해 법안을 죽이라”며 선동까지 했다.
의회예산국은 나가 6월 12일 보고서를 내고 트럼프 대통령의 감세 법안으로 내년부터 10년간 소득 하위 10% 가구가 연 평균 1559달러(약 223만 원)의 손실을 볼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이들 가구 소득의 3.3%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의회예산국은 특히 메디케이드와 푸드스탬프 예산이 삭감되면서 감세 효과가 커질 것으로 관측했다. 그러면서 저소득층과 달리 소득 상위 10% 가구의 소득만 연 평균 1만 2000달러(약 1716만 원) 증가할 것으로 분석했다. 이는 이들 가구 소득의 2.3%에 달하는 수치다.
美국가부채 5경원 돌파…韓日 현금 투자, 연준 금리 인하, 각종 보조금 폐지 압박 계속

현재 미국의 국가부채 규모는 실로 심각한 수준이다. 올 7월 말~8월 초께 사상 처음으로 37조 달러(약 5경 2910조 원)를 돌파했다. 지난해 11월 말 36조 달러(약 5경 1480조 원)를 넘어선 지 8개월도 안 돼 1조 달러(약 1430조 원)가 더 불어났다. 초당파 비영리단체 ‘책임 있는 연방예산위원회(CRFB)’에 따르면 경제 전문가들이 총부채보다 더 중요시하는 공공 보유 부채 규모도 약 29조 6000억 달러(약 4경 2328조 원)로 늘어 미국 국내총샌상(GDP) 규모와 맞먹는 수준이 됐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은 8월 19일 CNBC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관세 수입이 올해 3000억 달러가 될 수 있다고 말해왔는데 그것을 상당히 상향 조정해야 할 것”이라며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을 낮추기 위해 부채 상환을 시작할 것이고 그 이후에는 미국 국민들의 (소득)보전책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재정 상황이 너무 악화됐다 보니 트럼프 대통령은 재집권 직후부터 지출 삭감과 현금성 수입원 확보에 혈안이 된 태도를 보이고 있다. 4월 10% 보편관세에 8월 각국 상호관세를 부과하고 철강·자동차 등에 품목 관세를 매긴 게 그 대표적인 시도다. 트럼프 대통령은 10일에도 희토류 기술 수출 통제 조치에 맞서 다음 달 1일부터 중국에 100% 관세를 추가로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무역 협상 대상국인 한국과 일본에는 각각 3500억 달러(약 501조 원), 5500억 달러(약 787조 원) 규모의 현금성 투자를 강요하고 있다.
연방정부 수입을 늘리기 위한 시도는 자국 기업을 대상으로도 계속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를 허가하면서 황금주를 받는가 하면 8월에는 바이든 행정부 때 약속한 보조금으로 인텔 지분을 9.9% 취득해 최대주주에 오르기도 했다. 미국 국방부도 희토류 생산 업체인 MP머트리얼스에 4억 달러 규모로 지분 투자를 단행해 이 회사의 최대주주가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엔비디아와 AMD 등에 대(對)중국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출을 허가해 주는 대가로 그 수익의 15%를 세금처럼 내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테슬라 등에 지급되던 전기차 세액 공제 혜택(7500달러)도 지난달 30일 부로 종료시켰다.
매년 내는 이자 부담만 1500조 원에 육박하다 보니 연준을 향한 금리 인하 압박도 쉬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10일 CNBC에 따르면 베선트 장관은 차기 연준 의장 후보군도 1차 면접을 거쳐 미셸 보먼 연준 부의장,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 케빈 워시 전 연준 이사, 릭 리더 블랙록 글로벌 채권 최고투자책임자 등 5명으로 좁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르면 연내에 이들 가운데 1명을 제롬 파월 현 의장 후임으로 지명해 연준에 대한 추가 금리 인하 압박 수위를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셧다운 장기화에 공무원 해고 본격화…재정 악화, 내년 11월 중간선거 핵심 이슈

트럼프 행정부는 셧다운 사태가 다음주까지 이어지게 되자 공무원 해고도 본격화했다. 러셀 보트 백악관 예산관리국(OMB) 국장은 10일 자신의 X에 글을 올리고 “인력 감축이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보건복지부 대변인도 이날 “민주당이 주도한 정부 셧다운의 직접적인 결과로 보건복지부 여러 부서의 직원들이 감원 통보를 받았다”고 말했다. 마이크 존슨 공화당(루이지애나) 하원의장은 같은 날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이 완강히 버티며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에 130만 명의 현역 군인들이 10월 15일 급여를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미국 상원은 공화당과 민주당이 각각 발의한 임시예산안(CR)을 지난달 19·30일, 이달 1·3·6·8·9일에 잇따라 상정했으나 결국 처리하는 데 실패했다. 아직까지는 ACA 보조금 연장에 대한 여야 인식이 바뀔 기미가 안 보이는 상태다. 모두 연방정부의 돈 부족과 관련한 문제다.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달 29일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여야 지도부를 만난 뒤 합의점을 찾지 못하자 다음 날인 30일 취재진에게 “셧다운이 되면 해고를 해야 하고 많은 사람들을 자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일에도 트루스소셜에 글을 올리고 보트 국장과 회의를 한다고 소개하며 “대부분 정치 사기에 불과한 여러 ‘민주당 기관’ 중 어떤 것을 삭감하고 그것이 일시적일지 영구적일지 판단하기 위한 권고를 듣는다”고 밝혔다.
미국 연방정부의 재정적자 문제는 내년 11월 중간선거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간 관세 정책 등으로 이를 해결하겠다고 수 차례 공언했기에 그 결과를 무시할 수 없는 까닭이다. 미국은 내년 11월 3일 선거에서 연방 하원 435석 전체, 상원 100석 중 34석, 주지사 50석 중 36석을 새로 뽑는다. 여기서 밀릴 경우 트럼프 대통령은 조기 레임덕(임기 말 권력 누수)에 빠질 위기에 처할 수 있다. 그때까지 재정적자를 해소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각종 무리수가 미국은 물론 한국 등 글로벌 금융 시장을 계속 뒤흔들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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