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뇌수지 적자 비상…‘HBM 아버지’ 제자들도 한국 떠난다

2025-06-17

HBM(고대역폭메모리)은 인공지능(AI) 시대 반도체 핵심 부품이다. ‘HBM의 아버지’로 불리는 김정호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기전자공학부 교수의 연구실이 주목받는 이유다. 하지만 김 교수의 제자들은 상당수가 국내에 남기보다 구글·애플·테슬라·마이크로소프트·엔비디아 같은 미국 실리콘밸리 ‘빅테크’ 취업을 선호한다. 높은 연봉은 물론이고, 개방적인 문화와 성과에 따라 보상받는 시스템 때문이다. 말 그대로 ‘두뇌 유출’의 현실이다.

AI 인재 확보에 빨간불이 켜졌다. 이재명 정부가 초대 AI미래기획수석(AI수석)에 하정우(48) 네이버클라우드 AI혁신센터장을 발탁하고, AI 분야에 100조원 규모 민관 펀드를 조성해 투자하겠다고 공약한 상황에서다. AI·반도체·2차전지 등 전문 분야 고급 인력의 해외 유출을 막기 위한 국가 차원의 전략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왔다.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가 17일 발표한 ‘한국의 고급 인력 해외 유출 현상의 경제적 영향과 대응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두뇌 수지’ 적자가 늘어나고 있다. 두뇌 수지는 해외 전문인력의 국내 유입에서 국내 전문인력의 해외 유출을 뺀 값이다.

상의에 따르면 해외로 유출된 과학기술 분야 대졸 전문인력은 2019년 12만5000명에서 2021년 12만9000명으로 4000명 늘었다. 반면에 같은 기간 국내로 유입된 외국인 전문인력은 4만7000명에서 4만5000명으로 줄었다. 두뇌 수지 적자 폭은 같은 기간 7만8000명에서 8만4000명으로 확대됐다. 2022년부터 글로벌 AI 붐이 본격적으로 확산한 만큼 두뇌 수지 적자 폭이 더 커졌을 가능성이 높다.

AI로 분야를 좁혀본 국제 성적표도 비슷하다. 상의에 따르면 미국 스탠퍼드대 인간중심AI연구소가 지난해 인구 1만 명당 AI 인재 유·출입을 분석한 결과 룩셈부르크가 8.92명 늘어 가장 많았다. 독일(2.13명), 미국(1.07명), 캐나다(0.95명) 등도 AI 인재가 몰려들었다. 하지만 한국은 AI 인재가 0.36명 빠져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35위로 최하위권을 기록했다. 상의는 “상위 성과자일수록 해외 이주 비중이 높아 ‘유능할수록 한국을 떠나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고급 인력 유출은 곧 국력 손실이다. 국내 대졸자 1명에게 드는 평생 공교육비는 약 2억1483만원이다. 이들이 해외에서 경제활동을 할 경우 발생하는 소득세 등 세수(국세 수입) 손실은 1인당 약 3억4067만원으로 집계됐다. 단순히 따져도 1명당 5억5000만원가량 손해다. 사교육비를 포함하지 않은 데다 석·박사급 전문인력은 손실이 더 크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상의는 인재 유출 원인으로 ▶단기 실적 중심 평가체계 ▶연공서열식 보상 시스템 ▶부실한 연구 인프라 ▶국제협력 기회 부족 등을 꼽았다. 인재 유출을 막으려면 역으로 ▶성과에 연동한 급여체계 강화 ▶주 52시간제 예외 등 유연근로제 도입 ▶연구 성과에 따른 차등 보상 강화 같은 대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김천구 대한상의 연구위원은 “정부가 추진하는 ‘AI 세계 3대 강국’ 등 공약을 달성하려면 젊은 혁신 인재의 유치가 핵심”이라며 “단순히 인재 유출을 억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브레인 게인(Brain Gain, 두뇌 확보)’ 전략으로 정책 방향을 전환해 인재가 다시 유입·순환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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