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사법 통과, 울산형 공공의료 인력 시스템 가능하나?

2025-12-17

[울산저널]이승진 기자= ‘지역의사의 양성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지역의사법) 공포안이 12월 16일 국무회의에서 통과됐다. 2개월 뒤 시행을 앞두고 있다. 지역 의료 인력 부족을 ‘개인 선택이나 시장 논리에 맡기지 않겠다’는 국가적 선언이다. 수도권으로 몰리는 의료 인력과 지역 의료 붕괴를 구조적 문제로 규정하고 국가가 개입해 인력 양성과 배치를 제도화하겠다는 점에서 이전 정책과는 분명히 다르다. 그러나 ‘울산지역 의료 회복 실효성을 가질 수 있는가’는 다른 문제다.

울산은 의료 수요 구조가 특수한 산업도시다. 대규모 국가산업단지와 조선·화학·자동차 산업이 밀집해 외상, 응급, 직업환경의학, 재활의학 등 필수·산업 연계 의료 수요가 상시적으로 발생한다.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 출생)를 중심으로 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까지 더해지며 지역 의료 부담은 한계에 이르고 있다. 여기에 산재전문공공병원 개원은 논란 속에서도 울산 공공의료 전환점에 대한 기대를 모았지만 의료 인력 확보는 불확실성이 크다.

울산저널이 지속적으로 지적해 온 것처럼 문제의 본질은 시설이 아니라 사람이다. 병원을 짓는 것보다 의사를 확보하는 과정이 더 어렵다. 채용보다 지역에 남게 만드는 과정은 복잡한 이해관계가 엮여 있다. 지역의사법은 이처럼 오래된 난제를 제도적으로 풀겠다는 첫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법이 설계한 입구가 실제 의료 현장으로 이어지는 출구를 갖추지 못한다면 제도는 선언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현재 울산대학교 의과대학은 전국 의대 가운데 상대적으로 높은 비율의 지역인재 전형을 운영하고 있다. 2026학년도 기준 전체 정원 40명 가운데 약 57%를 부·울·경 지역인재로 선발한다. 이는 민심의 비판을 감안해서 지역 의료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반영한 구조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수치 자체가 곧 지역 의료 인력 확충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는 경계해야 한다.

지역 선발 인재 다수가 수도권에서 수련받고 수도권 병원에서 경력을 쌓은 뒤 지역으로 돌아오지 않는 구조가 반복돼 왔기 때문이다. 핵심은 선발 이후 경로 설계다. 지역의사법은 ‘의무복무형 지역의사 제도’를 내세우지만 울산에서는 의무만으로 인력을 잡아 두기 어렵다는 인식이 강하다. 복무 강제 중심의 접근이 오히려 지역 의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높일 수 있다. 처벌과 제재보다 지역을 합리적으로 선택하게 만드는 조건이 중요하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제기되는 대안이 ‘울산형 지역의사 경로’다. 이는 법이 허용한 틀 안에서 울산이 자체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선택형 경로다. 지역인재를 대상으로 장학금, 주거 지원, 수련 연계, 연구 기회를 묶어서 제시하고 필수의료 분야에서 중장기적으로 경력을 쌓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식이다. 단기 복무가 아닌 장기 경력 설계가 가능할 때 지역 정착 가능성도 높아진다.

수련 구조 역시 중요한 변수다. 지역의사는 의대 졸업 이후 전공의 과정을 거쳐야 현장에 투입될 수 있다. 그러나 울산은 필수의료 분야 전공의 수련 환경이 충분히 갖춰졌다고 보기 어렵다. 산재전문공공병원, 기존 상급종합병원, 향후 추진될 수 있는 울산의료원이 각자 움직이는 구조에서는 인력 양성과 배치 선순환이 작동하기 어렵다. 병원 간 경쟁이 아닌 협력 기반의 수련·진료 네트워크 구축을 핵심 과제로 삼아야 한다.

또 하나의 쟁점은 시간이다. 지역의사법에 따른 복무형 인력이 실제 의료 현장에 투입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동안 발생하는 의료 공백을 어떻게 채울 것인지도 현실적 과제다. 계약형 전문의는 보조 수단이 아니라 핵심 안전판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단기 계약과 열악한 근무 여건이 반복되면 인력 유출 악순환은 끊어지지 않는다. 필수과 차등 처우, 당직 부담 완화, 교육·연구 기회 보장, 가족 포함 정주 지원까지 종합 설계가 필요하다.

이제 시선은 2026년 지방선거로 향한다. 지역 공공의료 향방을 가르는 분기점이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는 인물 경쟁이나 개발 공약 나열이 아니라 시민 생명과 건강을 책임질 수 있는 공공의료 체계를 선택하는 장이 돼야 한다. 공공의료 인력 정착에 대한 실질적 계획이 있는지, 울산형 지역의사 경로에 대한 구체적 구상이 있는지, 병원 간 협력 기반 수련 체계를 구축할 의지가 있는지, 단체장 후보가 그 책임을 어디까지 인식하고 있는지 검증해야 한다.

공공의료에 대한 책임 있는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는 후보에게 울산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 2026년 지방선거는 울산 시민이 공공의료 방향을 직접 선택하는 시간이다. 개발 중심의 단기 성과가 아니라 의료 안전과 생존 조건을 묻고 판단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역의사법이 산업도시 특유의 의료 수요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울산형 공공의료 체계를 제대로 작동시킬 수 있을지 여부는 2026년 선택에 달려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승진 기자

[저작권자ⓒ 울산저널i.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