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플로맷 아카이브: 히든 스토리(Diplomat’s Archives: Hidden Stories)’ 한국 전쟁, 그들도 있었다···라트비아

2025-06-24

지난 23일 방송이 된 아리랑TV ‘디플로맷 아카이브: 히든 스토리(Diplomat’s Archives: Hidden Stories)’는 한국전쟁 발발 75년을 맞아, 그 동안 제대로 다뤄지지 못한 한국전쟁 속 해외 참전용사들의 숨은 사연을 발굴해 소개했다.

총 2편으로 기획된 이번 다큐멘터리는 1편에 라트비아, 오는 30일 2편에 멕시코의 사례를 각각 소개한다.

1편 라트비아와 한국전쟁에 대한 이야기에는 야니스 베르진스 (Jānis Bērziņš) 주한라트비아대사, 백승주 전쟁기념사업회 회장, 크리스탑스 필딘스(Kristaps Pildiņš) 전 라트비아 전쟁박물관 연구원, 한종우 한국전쟁유업재단 이사장이 출연해 숨은 역사를 전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남침으로 발발한 한국전쟁은 1953년 7월 27일 휴전 시까지 1,127일간 지속됐으며, 공식적으로 16개국이 전투지원국으로, 6개국이 의료지원국으로 남한을 도왔다. 이 중 가장 많은 군사를 보낸 곳은 미군으로 연인원 178만 9,000명이 참전한 것으로 집계된다. 그런데 최근 미군의 깃발 아래 함께 싸운 또 다른 국적의 참전용사들의 존재가 밝혀지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라트비아다. 그런데 라트비아인들은 어떻게 미군의 깃발 아래 한국전쟁에 참전하게 된 것일까?

먼저 야니스 베르진스 주한라트비아대사는 한국전쟁 발발 당시 라트비아는 소련의 점령 아래에 있던 시기라고 털어놓으며 “1941년 많은 라트비아인들이 소련에 의해 시베리아로 강제 이주당했다. 또 1948년부터 1953년 사이 라트비아 인구의 약 3%가 추방되어 다시 라트비아로 돌아오지 말 것을 명령받았다. 동시에 소련은 다른 지역에서 온 러시아어 사용자를 라트비아로 대량 이주시켜, 라트비아 언어와 문화를 폐지하려 했다”고 말하며 한국이 일제 강점기에 겪었던 위기와 비슷한 라트비아 현대사의 순간을 공유했다.

그 동안 숨겨져 있던 라트비아 참전용사들의 사례를 발굴하고, 2024년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이와 관련한 전시까지 열 수 있었던 데에는 라트비아 전쟁박물관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던 크리스탑스 필딘스 씨의 역할이 컸다.

필딘스 씨는 처음엔 한국전쟁에 대해서 잘 몰랐지만 라트비아 전쟁사를 연구하던 중 한국전쟁에 참전한 라트비아 병사들의 자료를 발견했다고 말한다. 그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으로 이주한 라트비아인들 중 일부는 살아가기 위한 방편으로 군에 지원했고, 일부는 미국 시민권을 얻기 위해, 또 다른 이들은 난민으로 자신들을 받아들여 준 국가에 대한 소속감을 행동으로 증명하기 위해서 군에 입대했다”고 분석했다.

베르진스 대사는 당시 라트비아 참전용사들이 미국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라트비아 국적으로 참전했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 한국전쟁에 참전한 라트비아인들은 미국 시민이 아니었기 때문에 장교 등 지휘관이 될 수 없었다. 그들의 역할은 일반 병사로 한정됐지만 맡은 역할에 충실했으며, 매우 용감했다”고 평가했다.

미국인이 아닌 라트비아인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기 때문에 아쉬움을 자아내는 사연도 있었다. 1952년 20세의 나이에 자원 입대한 아이바르스 카를리스 살레니엑스(Aivars Karlis Salnieks)는 ’펀치볼‘(현재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에 있는 분지 지역으로 한국전쟁 때의 격전지 중 하나이다. 외국 종군기자가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 화채 그릇, 즉 펀치볼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이라 불리는 최전방에 배치됐다. 당시 그는 벙커에 수류탄이 떨어지자 자신의 몸을 던져 폭발을 최소화했고, 다른 병사들의 목숨을 구했다. 이런 그의 희생을 기리며 미군은 그에게 두 번째로 높은 수훈십자장을 수여했다.

이에 대해 필딘스 씨는 “당시 살레니엑스는 미국 시민권을 따지 못한 상황이었다. 아마 이 때문에 미국 의회는 최고 수준의 명예훈장 대신 두 번째로 높은 수훈십자장을 수여했으리라 추정해 볼 수 있다”고 말하며 불공정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더 많은 라트비아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의 사례를 조사, 연구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용산 전쟁기념관 내 한국전쟁 미군 전사자 명비에서 4명의 라트비아 군인 이름을 실제로 확인할 수 있다. 또, 라트비아 용사들의 참여와 헌신을 주제로 한 특별전시는 동두천시 소재의 자유수호평화박물관에서 6월 30일까지 관람이 가능하다.

해외 참전용사들의 기록 영상을 디지털화하고, 미국 등 해외 역사 교사들과 함께 한국전쟁 알리기 운동을 진행하고 있는 한종우 한국전쟁유업재단 이사장은 참전용사들과 이야기를 나눴던 경험을 털어놓으며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미군들은 당시 전쟁에서 이기지 못했기에 매우 쓰라린 기억을 안고 돌아가야 했다.”라고 말하며 한국전쟁은 당시 참전용사들에게 기억하고 싶지 않을 만큼 힘든 전쟁이었다고 전했다.

한국전쟁은 ’잊혀진 전쟁‘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은 꾸준히 더 많은 해외 참전용사들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근 라트비아 전쟁박물관을 직접 방문해 양 기관과의 교류 방안을 논의하고 돌아온 백승주 전쟁기념사업회 회장은 “라트비아 뿐만 아니라 다른 발틱 국가, 동유럽 국가들에서도 2,500여 명 정도가 다른 나라 국적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이 사실을 보다 널리 알려, 비공식 참전국이라는 표현 아래 한국과 해당 국가가 좀 더 친근감을 느끼고 나아가 양국 간 동맹의 의미로도 확장해 나갈 수 있다.”며 해외 참전용사들을 더 많이 찾아내는 작업이 한국 공공외교의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전쟁 해외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기리며, 한국과 라트비아 관계의 새로운 연결고리로 떠오르는 라트비아 참전용사 이야기를 다룬 ‘디플로맷 아카이브: 히든 스토리 (Diplomat’s Archives: Hidden Stories)’ 라트비아 편에 이어 30일 오후 3시에는 공식 전투지원국이 아님에도 미군 등에 배속돼 파병 온 해외 참전용사들 중 멕시코 참전용사에 대해 알아본다.

이들은 그 규모가 무려 10만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멕시코는 당시 중립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남한에 물자를 지원하기도 했다. 카를로스 페냐피엘 소토(Carlos Peñafiel Soto) 주한 멕시코대사와 로베르토 바르보사 시에라(Roberto Barbosa Sierra) 멕시코 참전용사 등으로부터 한국전쟁 속 멕시코 참전용사들이 치른 희생을 재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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