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준비 중이라서요” 보이스피싱 신종 수법···은행원, 수억원 인출 막았다

2025-12-02

“사실 남편이랑 이혼하려고 해서요.”

한 시중은행에서 사기전화(보이스피싱) 예방 업무를 하는 A씨는 최근 ‘소름 돋는 일’을 겪었다. A씨는 지난달 은행 앱으로 4억원의 예금을 해지한 고객 B씨에게 전화를 걸어 해지 사유를 물어봤다. 보이스피싱 피해가 의심됐다.

B씨는 “남편과 이혼하려고 하는데 돈이 필요해서 그렇다”고 답했다고 한다. 개인 사생활 관련된 민감한 정보라 더 이상 묻기 어려워진 A씨는 일단 가까운 영업점에 방문해달라고 안내했다.

여러가지 보이스피싱 수법을 경험한 A씨가 같은 날 또 한번 놀랐다. 2억원의 예금을 보유한 고객 C씨가 영업점을 찾아 “남편과의 이혼 대비에 필요하다”며 돈을 인출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A씨는 2일 경향신문과 통화에서 “영업점에서 돈을 지급해도 되는지 묻는 전화가 와서 이유를 물으니 똑같이 ‘이혼’ 얘기를 해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금융권과 금융당국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가해자들은 은행이 범죄를 의심하지 못하도록 피해자들에게 “투자에 쓸 돈”이라고 말하게 하는 등 미리 ‘시나리오’를 주입한다.

금전 피해를 막을 ‘최후의 저지선’인 은행은 특히 고액을 인출하려는 경우 최근 자금 용도 등을 물어보고, 보이스피싱이 의심되면 추가 확인 절차를 밟는다. 이를테면 투자처가 어디고, 누구에게 돈을 건네려고 하는지 꼼꼼히 확인하는 식이다.

문제는 은행이 수사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보이스피싱이 의심된다고 해도 고객을 ‘설득’하는 것 이상의 권한은 없다는 점이다. A씨는 “남편 모르게 이혼을 준비 중이라는 사람에게 ‘진짜 이혼하는 게 맞냐’고 묻기도, 남편에게 이 사실을 확인하기도 어렵다”고 전했다.

다행히 A씨는 ‘기지’를 발휘해 B와 C 고객의 피해를 막았다. 그는 “비슷한 일로 은행을 방문한 사람이 있었는데 보이스피싱이었다”며 ‘선의의 거짓말’을 한 것이다. A씨는 “이번에는 다행히 피해를 막았지만, 은행에서 확인하기 어려운 사유로 돈을 찾아가려는 시도들이 많다”며 “이 시도를 막으려고 일을 적극적으로 하면 ‘민원’이 들어올 때도 있다. 고객들의 항의에 위축되지 않을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요즘 보이스피싱은 1주일간 사전 작업을 해 피해자를 정신적으로 지배한다. 이런 피해자를 설득해야 하는 어려움은 알고 있다”며 “은행들이 더 적극적인 예방 업무를 할 수 있도록 모니터링 중 발생한 민원은 그 필요성을 감안해 평가에 반영하는 방식을 검토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