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을 꺼내 아스팔트에 던지고 싶었다”…‘대치키즈’가 겪은 우울

2025-04-14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부모를 패러디한 ‘제이미맘’이 화제였던 지난 2월. 유튜브에는 ‘대치동과 우울증’ ‘대치동 우울증 생존자의 이야기’라는 제목의 영상이 각각 올라왔다. 조윤진씨(23)와 송지현씨(26)가 대치동에서 학교·학원을 다니며 입시 경쟁과 사교육 열풍 한복판을 경험한 뒤 어른이 되어 털어놓은 자기고백이었다.

대치키즈 당사자로서의 목소리가 공개되자 수많은 공감이 이어졌다. 두 사람은 시차를 두고 대치동을 경험했지만 대학 입시만 보고 질주하며 공통의 어려움을 겪었다. 조씨는 대치동 학군지에서 학교를 다니며 입시 경쟁에 시달렸고, 송씨는 기숙형 특목고에서 주말마다 대치동 학원들을 전전했다. 두 사람은 ‘잘해야 한다’는 부담과 경쟁에서 뒤처진다는 자책을 끌어안으며 우울증을 겪어야 했다고 말했다.

두 사람과 지난 5일과 10일 각각 전화·화상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우울증 영상을 올린 계기는 무엇이고 반응은 어땠나.

조윤진=‘배부른 소리’라는 댓글도 달렸지만 학부모들이 ‘영상 보고 많은 걸 느꼈다’는 댓글도 달아줘서 놀랐다. 나 스스로도 ‘이렇게 많은 지원을 받았으니 감사해야 한다’고 자기검열 하듯 생각하면서 살아왔는데 학부모 댓글을 보고 일면 뿌듯하고 신기했다.

송지현=학교 다닐 때 스스로 내 탓을 너무 많이 해서 힘들었다. 우울해하면 안 된다는 생각만 많이 했었다. 그때의 제게 ‘네 탓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 영상을 찍었다. 댓글중에 ‘40대이고 대치동 지나온 사람인데 아직도 고통받고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대치동을 이미 20년 전에 겪었던 분들도 성적 압박 때문에 심리적 우울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이게 계속 누적돼 온 문제라는 걸 실감했다. 유튜브 영상을 보시고 입시에 실패하더라도 잘 살아갈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줘서 고맙다는 반응들도 큰 힘이 됐다.

-대치동을 언제 처음 경험했나.

조=초등학교 1학년 때 대치동으로 이사왔다. 크면서 이 학원들과 인프라를 활용해서 좋은 대학에 보내려고 이사를 왔구나 느꼈다. 고등학교 때는 전과목 학원을 다녔는데 밤에 수업이 끝나면 새벽 2시까지 독서실에 있는 게 일상이었다. 모두가 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기계적인 분위기였다. 압도적으로 많은 학습량을 요구하고, 모두가 기계처럼 앉아 지식이라고 말하기 애매한 암기거리를 머리에 넣었다.

송=중학교 3학년 때부터 경기 성남에서 대치동으로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특목고 면접을 위해 예상 기출문제를 준비하거나 <과학구조의 혁명> 같은 책을 읽게 시켰다. 아침부터 학생들이 숨 막힐 정도로 빼곡하던 곳에서 면접 준비하던 기억이 난다.

-대치동 학원들의 문제가 뭐라고 보나.

조=대치동에서 내신 학원을 다니면 시험 전에 직전보강을 한다. 보강에선 학생들이 감당할 수 없는 양의 자료를 쏟아낸다. 학원들은 ‘적중률 100%’를 자랑하지만 사실 시험 전 범위를 짚어주기 때문에 다루는 내용이 시험에 나올 수밖에 없다. 학생들에겐 ‘너희가 받아먹지 못 한 탓이다. 학원은 할만큼 했다’고 말한다. 학생들은 우리가 더 열심히 해야 했구나라고 자책하게 되는 구조다.

송=대치동 학원에서 가장 싫어하는 두 가지 지점이 있다. 우선 경쟁이 안 되는 게임에 학생을 밀어넣는다. 능력이 되는지 보지 않고 밀어넣어 학부모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고등학교 입학 전에 ‘용인외대부고 애들은 미리 뇌과학 경시대회 준비를 많이 한다’며 해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알고보니 2·3학년이나 영재가 아니면 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둘째로, 강남8학군이나 특목고 재학처럼 일종의 타이틀을 달고 가면 특별대우가 시작된다. 은밀히 불러서 원장님 방에서 상담을 시켜주거나 정보를 나한테만 알려주는 식으로 특별히 관리해준다는 뉘앙스를 준다. 학생들 입장에선 그 기대에 부응해야 하기도 하고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으로 느끼기도 한다.

-공부가 당연한 분위기 때문에 자책을 많이 하게 됐다고 했다.

조=고등학교 2학년때부터 부모님이 학원비 결제하라고 카드를 주시면 한 달치 영수증을 다이어리 앞에 붙여뒀다. ‘우리 부모님이 나한테 지금 얼마를 쏟고 있는데 잠이 오냐’고 스스로를 타이르며 잠을 깨려고 노력했다. 학원에서도, 학교에서도 공부하는 게 너무나 당연한 분위기였다. 숙제를 안 해오는 학생이 있으면 ‘쟤는 왜 공부 안하냐’고 수근거리는 분위기가 있었다.

송=고등학교에 입학해서 식품공학이나 조향에도 관심이 생겨 꿈이 많이 바뀌었다. 처음에는 제과제빵 동아리도 만들어보면서 재밌고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2학년 때부너 ‘대입 준비해야지 아직도 그러고 있니’라는 시선을 받으면서 현실적인 눈이 강제로 떠졌다. 공부에 조금 방해될 것 같거나 학습분위기를 흐린다는 느낌이 나면 애들과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걸 느꼈다. 공부 안 하는게 소문이 날까 두려워 문제집을 붙들고 있었다.

-학생들이 학원도 스스로 가려고 하나.

조=학교 시험범위가 너무 많다보니 자습으론 감당할 수 없었다. 그리고 다들 학원을 다니니까 다니게 된 부분도 있었다. 사교육을 받아야만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다는 강박 때문에 다니고 싶어했다. 전문 강사한테 들으면 성적이 더 잘 나올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공부를 잘 해야 한다는 부담을 언제부터 느끼게 됐나.

조=중학교 때까지 성적이 잘 나오던 편이라 고1 때는 스스로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그 성적 기준에 미치지 못 하자 좌절하기 시작했다. 학교도 공부 잘하는 학생을 좋아한다고 느꼈다. 학부모끼리 모여서 ‘누구는 어디 학원 다닌다’ ‘누가 레벨업 했다더라’ 하는 얘기를 들으니 압박도 당연히 커졌던 것 같다. 입시는 ‘나는 실패자고, 내가 그렇게 특별하지 않다’는 걸 깨닫는 과정이었다.

송=중학교 때 영재반에 있었는데 나 스스로도 영재 머리는 없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성적이 잘 나오면서 선생님들도, 부모님도 내게 기대하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중3 때 담임선생님한테 조리고등학교에 가고 싶다고 말했지만 모두가 농담으로 여기는 걸 보고 ‘나는 특목고에 가야 하는구나’라고 스스로 내재화했던 것 같다. 자사고에 입학해서는 더 많은 경험을 하게 될 줄 알았던 고등학교가 사실상 대입 양성소였음을 깨달았다. 거기에 부응하지 못하면 자책을 많이 했다. 주말에 학원이 끝나고 학교로 복귀하는 차 안에서 심장을 꺼내 아스팔트에 던지면 얼마나 시원할까 생각하기도 했다.

-친구들과 이런 어려움에 대해 얘기해본 적 있었나.

조=주변 친구들도 모두 힘들어했다. 그런데 세상이 이걸 너무 당연하게 여겨서 힘들다는 이야기를 아무도 하지 않는 느낌이었다. 대치동이란 환경이 이상하다는 걸 인식하기까지도 오래걸렸던 것 같다.

송=힘들다고 토로하려면 서로의 성적을 오픈해야 하는데 친구들 사이에서도 ‘성적 떨어지는 걸 왜 말하냐’라는 분위기가 있었다. 내신이 4~5등급 정도 나왔는데 친구들과 공유를 하지 않으니 그때는 내가 정말 바닥인줄만 알았다. 그때 이런 어려움이 좀 더 공유되고 서로 토닥토닥하는 분위기였다면 그렇게까지 힘들진 않았을 것 같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보면 18세 이하 아동·청소년 중 정신과 진료를 받은 수는 2019년 18만6361명에서 2023년 30만7097명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특히 강남3구의 아동·청소년 환자와 병원 수는 서울 전역의 3분의 1 수준에 달한다. 조씨와 송씨도 고등학교 재학 중 또는 졸업 직후 정신과 상담을 받았고, 아직까지도 대치동 학원가를 피해다닐 정도로 힘들어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3학년에 올라가며 우울증으로 점점 더 힘들어졌다고.

조=고2 때부터 정신적으로 굉장히 힘들어했고 주변에서도 자해 하는 친구들이 있던 걸로 추측한다. 3학년 올라가면서부터는 부모님 몰래 정신과에 다니기 시작했다. 성적을 내지 못하면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내 가치가 없어진다는 생각 때문에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을 했었다. 입시를 포기하거나 대학에 안 가도 된다는 선택지는 생각조차 하지 못 한 채 꾸역꾸역 버텼다.

송=고3 때 제일 심했다. 가장 자괴감이 많이 들었던 건 그렇게 힘든데도 뭐라도 하는 척 앉아서 문제집 제일 쉬운 부분만 계속해서 풀었던 것이다. 전교권인 애들은 많이 자도 ‘천재’라는 평을 듣지만 어정쩡한 학생들이 잠 많이 자는 건 죄악시 되기 때문에 일부러 늦게까지 깨 있었다. 우울증이 심해지면서 원래 30분이면 할 수 있던 걸 4시간이 걸려도 못 하게 됐다. 스스로 ‘쓰레기’라고 자책하고 성적이 더 떨어지면서 집중도 하락과 우울증이 심해지는 악순환의 굴레였다.

-두 사람 모두 반수나 재수를 시도했다.

조=대치동에선 한 반에 30명이면 80~90%가 재수를 했다. 재수는 필수, 삼수는 선택이라고 ‘재필삼선’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대학에 간 뒤에 다른 지역에서 온 친구들을 만나며 이런 문화가 정말 이상한 거였구나 느꼈다.

송=재수를 할 때까지도 우울증이라고 생각을 못했다. 그러다 재수하던 3월쯤 과호흡이 왔다. 그때까지도 ‘재수해서 의대를 가야만 중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인연을 회복하고 다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해 9월 결국 재수를 그만두면서 방에서 4개월동안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았다. 무슨 정신으로 병원을 갔는지도 잘 기억이 안나지만 이렇게 아무것도 못하고 죽는 건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송=대학 입시를 실패하면 굉장히 큰 실패라고 낙인 찍는 게 심하다. 한국에서 유일하게 남은 사다리가 대학 입시니까 경쟁이 점점 더 과열되는 것 아닐까. 이런 사회에서 자란 아이들로선 대학 말고는 점점 더 다른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느끼는 것 같다.

-대치동에서 성적뿐 아니라 전반적인 서열화를 경험한 것도 영향이 있었나.

조=고가의 브랜드 옷을 입거나 신발을 신는 친구들을 많이 봤다. 알게 모르게 ‘쟤네 집은 잘 사는구나’라고 느끼면서 부러운 마음과 함께 ‘저 친구만큼은 열심히 해야지, 저 만큼은 해야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가정 형편이 그렇게 여유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학원비까지 알고 있다면 더 큰 부담을 느낄 거라고 본다.

송=처음 대치동 학원가에 왔을 때 수업을 밤 10시까지 들으니까 중간중간 부모님 차에서 밥을 먹었다. 대치동에 사는 애들은 집에서 밥을 먹고 다닐테니 어린 마음에 차에서 김밥 먹는 게 부끄러웠던 기억이 난다. 픽업하는 차종을 봐도 환경이 다르다는 점이 가시적으로 보였다.

-성골 대치키즈라는 표현도 쓰인다고 들었다.

조=학교 선생님 중 한 분이 대치동 출신 사립고를 졸업해 서울대에 진학한 사람은 성골, 다른 고등학교에서 서울대에 가면 진골이라는 식으로 표현하던 게 기억난다. 그 표현을 듣고 정말 모든 것이 대학이라는 이름표로 나눠진다고 느꼈다.

송=기숙 재수학원에 갔을 때 강남 8학군에 대치동에서 나고 자란 이른바 ‘성골 대치키즈’ 친구를 봤다. 대치동이라는 바운더리가 너무 익숙하고 대치동에서하는 공부와 학원들을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친구였다. 공부 스트레스는 우리 모두 겪었지만 대치동에선 공부를 당연시하는 게 너무 달라보였다.

-지금도 대치동에서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조=지금도 대치동에서 저 때보다 더하면 더 했지, 덜 하진 않을 거라고 본다. 의욕이 있는 학생이라면 이 경쟁 체제 안에서 부모님이 다그치지 않아도 충분히 스스로 압박하게 된다고 본다. 좀 더 격려를 많이 하는 목소리가 나오면 좋겠다.

송=어릴 때부터 실패자로 낙인찍는 인식만 덜해져도 학생들의 마음이 훨씬 편해질 것 같다. 신격화되는 대치동에 넘어갈 게 아니라 마케팅의 일환이란 점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다. 압박감 속에서 아이들이 말 못 할 스트레스 크다는 점을 모두가 알아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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