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적 비축 시스템 구축 요원한 것인가?

2025-07-09

[축산신문]

곡물 가격의 급등이 농산물 가격은 물론 전체 물가를 치솟게 하는 세계적인 애그플레이션(Agflation) 현상을 우리는 지금까지 세 차례나 겪었으며 그 위기로부터 계속해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재 곡물 선물가격은 3차 애그플레이션 발생 바로 전 단계 수준까지 떨어졌으나 곡물 가격이 안정적이었던 시기에 비해서는 여전히 높다. 짧게는 3개월, 길게는 5개월의 시차를 두고 국내에 반입되는 곡물 가격도 2021년 초반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곡물 시장은 얇은 시장 또는 좁은 시장의 특징을 지니고 있어 가격 변동성이 심하며 대내외적으로 쏟아지는 다양한 정보가 매번 곡물 가격을 들썩이게 만든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중동에서의 지정학적 위험, 기후 변화에 따른 주요 국가의 생산 전망 불확실성 등으로 인해 곡물 가격은 더 이상 큰 폭으로 떨어지지 않고 있다.

식품 및 사료 원료로 대량 소비되는 곡물들인 옥수수, 소맥, 대두 등을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식량 안보에 극히 취약한 우리나라의 경우 세계 식량 위기론이 불거질 때마다 야단법석이었으나 위기가 잠잠해지면 식량 안보 문제는 다시 뒷전으로 물러나기 일쑤였다. 지금까지 3차 애그플레이션의 위기를 겪으면서도 우리 정부는 식량 안보를 강화하기 위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방법과 수단을 내놓지 못했다. 1차 애그플레이션 발생을 계기로 우리 정부는 안정적인 곡물 공급망 확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국제 곡물 조기 경보 시스템 및 국가 곡물 조달 시스템을 구축하고 해외농업개발 추진 등을 통해 식량 위기 대응 방안을 마련했으나 미봉책에 그쳤다.

고곡가와 식량 위기에 대비해 중장기적으로 추진해나가야 할 방안으로 전략적 비축 시스템의 구축이 손꼽히고 있다. 우리나라는 쌀을 제외한 주요 곡물들에 대한 전략적 비축 시스템을 두고 있지 않아 문제가 크다. 코로나19 펜데믹으로 곡물 공급망이 훼손되고 주요 국가의 수출 통제가 이루어지자 안전장치로 곡물을 전략적으로 비축해 놓아야 할 필요성은 더욱더 높아졌다. 석유비축 사업과 같이 곡물도 비축 사업을 통해 평상시에는 내수 시장에서의 수급 안정에 기여하고 세계 곡물 수급 불균형으로 곡물 가격이 폭등하거나 수출이 제한되는 비상시에는 비축 재고를 방출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와 비슷한 수급 구조를 가진 일본의 경우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집계한 2022년 국가별 세계식량안보지수에서 6위를 차지할 만큼 세계 최고 수준의 식량 안보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1970년대에 모든 일본 종합상사들이 해외 곡물 사업에 뛰어들었으며 생산 단계 진입을 통한 해외 식량 기지 건설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으나 1980년대 중반부터 해외 시장 개척을 업스트림의 생산 단계가 아닌 생산 이후의 중간 유통망을 확보하는 이른바 Post Harvest 전력을 펼쳐 성공을 거뒀다. 일본과 같이 해외농업개발을 통해 비상시 식량자원을 확보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지 못한 주요 수입국들은 전략적 비축에 중점을 두고 있다.

세계 식량의 블랙홀이라고 불리는 중국은 모든 정책에 있어서 가장 우선시하는 것이 식량 안보이며 그에 맞는 농정을 펼치고 있다. 중국 정부는 해외농업투자는 물론 국영 곡물 기업의 육성, 전략적 비축 시스템 도입으로 식량 안보를 강화해나가고 있다. 특히 미국과의 무역전쟁 장기화로 인해 중국의 전략적 비축 시스템 강화를 위한 예산 규모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중국의 식량안보지수는 25위로 39위인 우리나라보다 상당히 높다.

주요 식량자원으로 소맥, 보리 등을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북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의 국가들도 전략적 비축 시스템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오만과 같은 국가는 식량안보지수가 우리나라보다 높다. 이집트 국영 곡물저장회사(EHCSS)와 튀니지 곡물청(ODC)은 곡물 저장 및 처리, 가공 시설을 운영하고 있으며 시설을 점점 더 확대해나가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국가 식량 공급망 강화를 위해 곡물 운영 및 전략적 비축을 위한 곡물저장회사(SALIC)를 출범시켰다. 아랍에미리트는 식량 안보 강화를 위해 칼리프 항에 최신식 곡물 저장 및 가공 시설을 건설하는 계획을 세웠다.

2028년 준공 예정으로 국내에서도 부산 신항에 새로운 양곡 부두가 건설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노후화된 부산 북항 양곡 부두를 대체하는 것이며 하역 및 일시 저장하는 시설이지만 곡물의 장기 비축 시스템 구축을 위한 교두보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새만금 간척지 위에 식량 콤비나트를 만들어 전략적 비축 기지로 활용하는 방안도 강구되고 있어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전략적 비축 시스템을 가동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예산이 요구되며 사업 수행 및 운영에 필요한 설비를 갖추는 것도 중장기적인 계획을 요하는 만큼 착실한 준비가 이루어져야 한다. 옥수수, 소맥, 대두 등 주요 곡물의 전략적 비축 시스템 구축에 대해 지금까지 우리 정부는 소극적이며 방관하는 자세를 취해왔었다. 비상계엄 사태 후 들어선 새 정부에 바란다. 전략적 비축 시스템 구축 및 강화는 자급자족으로 식량 안보를 만들어나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안이며 그에 맞는 농업 정책과 비전을 적극적으로 제시해주길 당부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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