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이 고율의 상호관세와 함께 농산물 개방 압박을 병행하는 가운데 우리 정부가 진퇴양난에 빠진 형국이다. 정작 미국 내부에선 농산물 부문의 통상 협상을 뒷받침할 파트너조차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현지시간)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8월 1일부터 모든 한국산 제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면서 “한국은 미국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성 문구도 포함했다.
하지만 이 같은 강경 메시지에도 불구, 정작 미국 농업 정책을 담당하는 농무부(USDA)는 정권 교체 이후 정책 결정 라인이 무너진 상태다.
한 고위직 공무원에 따르면 USDA는 주요 중간 간부직 인선이 지연 중이며 산하 부서도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이 관계자는 “미국이 농업 시장 개방을 압박하고 있지만 구체적 내용을 조율할 채널이 사실상 작동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USDA 전체 정원의 약 15%에 해당하는 1만5000여 명이 해고되거나 퇴직 예정이라는 현지 보도도 있다.
그럼에도 미국은 통상 실무에서 민감 품목을 꾸준히 거론해왔다. 대표적인 것이 30개월령 초과 미국산 쇠고기 수입 허용 요구다. 한국은 2008년 광우병 사태 이후 30개월 미만 쇠고기만 수입 중이다. 미국은 국제 기준에 근거해 “차별적 조치”라고 주장하지만 최근 보고된 광우병 사례가 모두 고령우에서 발견된 점은 여전히 소비자 불안을 자극한다.
쌀 시장 개방 요구도 수면 위로 오르고 있다. 미국은 우루과이라운드(UR) 이후 사실상 정체된 쌀 시장 개방 조치를 문제 삼아 무관세 수입물량(TRQ) 확대 또는 관세 인하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정부는 “식량주권과 직결되는 사안으로 협상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 밖에 블루베리 등 과일류의 검역 간소화, 유전자변형생물체(LMO) 승인 절차 단축 등도 미국 측 요구 항목에 포함돼 있다. 농식품부측은 “과학적 기준과 소비자 수용성을 모두 반영해야 한다”며 검역 주권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협상에 임하겠다는 방침이다. 현재 정부는 산업부·외교부·농식품부가 참여하는 협상 대응체계를 통해 농업 분야 전반에 대한 방어 논리를 재정비하고 있다.
농민단체들도 정부의 신중한 대응을 촉구하고 있다. 한 농민단체 관계자는 “쌀과 쇠고기 개방은 농업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며 “국익과 안전이 걸린 문제인 만큼 원칙 있는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효주 기자 phj20@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