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총통 선거를 앞두고 해상에서 중국 인민해방군(PLA)의 군용기가 의문의 폭발과 함께 추락한다. 중국은 항공기 수색과 구조 작업을 이유로 대만 해상을 봉쇄한다. 바닷길이 막힌 대만이 혼란에 빠진 사이 중국은 대만 내 '제5열(내부 스파이)'을 이용해 분란을 조장한다. 중국은 소셜미디어에 대만 총통이 해외로 도망쳤다는 허위 정보를 퍼뜨리고, 방송에 인공지능(AI) 딥페이크로 만든 가짜 대국민 담화를 송출한다. 중국 측 첩자에 의해 교도소에서 풀려난 수감자들은 거리 곳곳에서 폭동을 일으킨다. 영상 속 주인공의 대사처럼 도시가 "좀비 영화"의 한 장면처럼 황폐해진 가운데 중국군이 대만에 상륙한다.
지난 7월 공개된 대만 TV 드라마 '제로데이(零日攻擊·ZERO DAY)' 예고편의 내용이다. 10부작으로 이뤄진 드라마는 중국이 대만을 침공한다는 가상의 시나리오를 담았다. 예고편은 공개된 지 일주일 만에 조회 수 100만회를 넘어섰다. 올해 촬영을 마치고 내년에 대만에서 방영될 예정이다.
댓글 반응도 뜨겁다. 자신이 대만인이라고 밝힌 이용자는 "보면서 눈물을 터뜨렸다. 마음이 무겁고 두렵다"고 썼다. 또 다른 이용자는 "대만은 오랫동안 전쟁 직전에 있었다. 이것은 실제로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
'침공' 콘텐트, 전쟁 공포에 확산
최근 대만에서 중국의 침공을 주제로 한 드라마, 소설, 게임 등 문화 콘텐트가 화제가 되고 있다. 중국이 통치하는 미래 대만을 배경으로 한 소설, 플레이어가 중국의 공격에 대항하는 전략 시뮬레이션 보드게임도 등장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들은 "이는 과거에는 보기 힘들었던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블룸버그는 "대만해협에서 군사 충돌 가능성은 수십년간 존재해왔지만 그 주제의 민감성과 상업적 영향 탓에 대만 TV 프로그램에서 이를 노골적으로 다룬 적은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한동안 대만 내부에선 중국 침공에 대한 경각심이 낮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지난 2022년 낸시 펠로시 당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을 계기로 반전됐다. 제로데이의 정신메이(鄭心媚) 프로듀서는 "중국의 위협은 새로운 게 아니다. 우리는 민감성 때문에 얘기하는 것을 피해왔다"며 "표면적으로 보면 대만 사람들이 위협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침략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중국의 대만 포위 훈련은 대만인에게 전쟁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는 충격을 줬다. 중국과 대만의 전면전을 소재로 한 『불타는 서태평양(燃燒的西太平洋)』을 그린 만화가 량샤오셴(梁紹先)은 "중국이 대만섬을 포위하고 (타이베이 상공을 지나는) 미사일을 발사한 이후 만화 판매량이 7배 증가했다"고 WSJ에 밝혔다.
"전쟁 대비 논의 필요" vs "반중 선전에 불과해"
반중 성향의 집권당 민주진보당(민진당)은 작품 제작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제로데이 예고편에는 실제 타이베이 총통실과 대만 군함 등이 등장한다. 또 대만 문화부가 제로데이의 제작비 2억5921만 대만달러(약 108억7000만원) 중 절반 가까운 1억1301만 대만달러(약 47억4000만원)를 지원했다. 리위안(李遠) 문화부장(장관)은 "우리는 중국이 실제로 우리를 침략할지도 모른다는 숨겨진 두려움에 직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드라마의 주제의식도 현 정부의 시각과도 유사하다. 지난 5월 당선된 라이칭더(賴淸德) 총통은 전임자 차이잉원(蔡英文) 전 총통보다 더 강경한 반중·독립 입장을 보인다는 평이다. 취임식에서부터 양국론을 주장한 라이 총통은 최근 "중국은 대만을 대표할 권리가 없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수용하면 대만은 소멸할 것" 등의 발언으로 수위를 높이고 있다.
대만 2위 반도체 기업 유나이티드 마이크로일렉트로닉(UMC)의 차오싱청(曺興誠) 전 회장도 제로데이의 제작비를 보탰다. 차오 전 회장은 대만의 방위력 강화를 주장해온 인물이다. 그는 2022년 대만의 방위력을 강화해야 한다며 30억 대만달러(약 1260억원)를 기부하기로 약속했다.
블룸버그는 "제로데이의 예고편은 전국적인 반응과 토론을 불러일으켰다"며 "대만군의 병력 모집에 도움될 것"이라고 했다. 최근 대만은 저출산으로 군대를 지원하는 인원이 줄고 있는 상황이다.
"中, 강경 태도 바뀌지 않으면 계속될 것"
반면 친중 성향의 야당 국민당은 정부 지원을 받은 콘텐트들이 집권세력을 위한 선전물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국민당 부총통 후보로 출마했던 자오샤오캉(趙少康)은 "정말 저급하다. 그들이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을 거짓으로 고발하고 제5열로 낙인찍을지 누가 알겠나"라고 말했다.
중국 내 소셜미디어에선 제로데이 관련 언급이 검열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성명을 통해 "대만이 두려움을 퍼뜨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성주위안(盛九元) 상하이교통대 대만연구센터소장은 중국 관영매체인 글로벌타임스에 "이 선전의 가장 소름 돋는 측면은 '내부의 적을 만드는 것'"이라며 "민진당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반역자로 낙인찍힐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중국의 강경한 태도에 양안 사이 긴장감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공개 석상에서 수차례 대만 통일에 대한 의지를 피력했다. 미국도 시 주석이 3기 집권 마지막 해인 2027년 대만을 침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미 해군은 지난달 2027년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에 대비해 새로운 작전 지침을 내놨는데,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미국이 중국과의 전쟁 가능성을 더욱 부각했다고 평가했다.
이와 관련, 국책연구기관인 대만중앙연구원의 류원(劉文) 연구원은 시진핑 주석이 대만에 대해 언제, 어떤 조처를 할지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이런 추세는 계속될 수 있다고 WSJ에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