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단의 무기체계도 동맹과의 거래 대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특유의 이 같은 '안보 거래' 인식이 다시 한번 드러났다. 최근 일본 측에 F-22·F-47 등 미 전투기 구매 의사를 타진했다는 소식을 통해서다. 파격적 제안인 만큼 성사 가능성은 두고 봐야 하지만, 미국산 무기로 동맹을 무장시켜 안보는 물론 경제 영역에서 이득을 취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거래 방향성을 명확하게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본 아사히신문 등 외신에 따르면 지난 23일 트럼프 대통령은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와 전화 통화에서 F-22와 F-47 등 미 전투기의 능력을 강조하며 도입 의사를 물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존 최강의 전투기로 평가받는 5세대 전투기 F-22는 1998년 미 의회의 수출 금지 조항에 묶여 해외로 수출된 전례가 없다. 스텔스 기술과 전자전 시스템 등 첨단 기술의 유출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2030년대 중반 실전 배치를 목표로 개발되고 있는 6세대 전투기인 F-47은 아직 제원조차 명확히 공개된 적이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해당 제안 자체가 파격인 셈이다.
중국 견제 위한 일본 전진 기지화
트럼프 대통령이 F-22와 F-47을 꺼낸 것을 두고 외교적 노림수가 다분하다는 얘기는 그래서 나온다. 일본을 중국 견제의 전진기지로 삼으려는 미 측의 의도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J-20 등 첨단 스텔스 전투기로 동중국해와 대만해협에서 제공권을 장악하려는 중국에 맞서려면 지정학적 근접한 일본의 공군력 강화가 필수적이라는 의미다. 이는 중국의 팽창 정책에 미 단독 패권보다 역내 동맹의 균형으로 대응하길 선호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방위 전략과도 맞닿아있다.
일본을 지역 안정의 버팀목으로 세우려는 미 측의 전략적 포석이 일본의 이해관계와 부합하는지도 눈여겨볼 만하다. 일본 역시 중국과 벌이는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 분쟁 등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공중전력의 보강이 시급하다. 일본 내에선 대만 문제가 자국 안보 이익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인식도 적지 않다. 실제 일본은 2000년대 차세대 전투기 사업에서 F-22를 최우선 후보로 검토하다가 미 수출 금지법이 철폐되지 않아 뜻을 접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진화된 미·일 동맹을 기반으로 중국의 위협에 맞서야 할 필요성을 파격 제안으로 상기시키려 했을 수 있다.

동맹에 '안보 아웃소싱'…美 경제적 이득 극대화
동맹국의 역할을 대중 견제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미국의 안보 전략 기조는 결국 비용 문제와도 직결된다. 안보 분야까지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과 연결 지어 부담을 전가하는 이른바 동맹에 대한 미국식 '안보 아웃소싱'이다. "일본은 즉각 GDP 대비 3% 수준으로 국방예산을 늘려야 한다"는 엘브리지 콜비 미 국방차관의 발언도 비슷한 맥락이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전례도 있다. 2019년 트럼프 대통령은 방일 중 아베 신조(安倍晋三) 당시 일본 총리로부터 105대 규모의 F-35 추가 구매 약속을 끌어냈다. 미·일 무역협상이 한창이던 시기에 이뤄진 합의였다. 대일 무역적자를 F-35로 상쇄하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의도가 성과를 거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F-22 등 첨단 전투기 판매 등으로 주일미군 주둔 경비와 같은 비용 부담을 줄이려 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지난 4월 트럼프 대통령은 미·일 관세 협상에서 일본의 주일미군 주둔 비용 부담이 적다고 불만을 표시하며 압박을 예고했다. 아베 정부에 F-35 수출을 관철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일본에 F-22라는 선택지를 제시함으로써 일본의 화답을 기대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현실성 의문…협상 카드로 활용하려는 포석일 수도
트럼프의 해당 제안을 놓고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F-22의 경우 수출 금지법이 유지되고 있는 데다, 생산라인은 2011년 이후 멈춘 상태다. 2016년 미 의회는 F-22 생산 재개를 검토했지만, 대당 비용이 2억600만~2억1600만 달러(약 2818억 4920만원~2955억 3120만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돼 뜻을 접기도 했다. 마지막 생산된 F-22의 대당 비용 1억3700만 달러(약 1874억 4340만원)보다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결론이었다. F-47은 개발 단계인 만큼 일본 입장에선 특히 신중할 수밖에 없다. 영국·이탈리아와 공동으로 6세대 전투기를 개발하기로 한 일본이 여기서 발을 빼는 일도 쉽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이 향후 일본과 다양한 교섭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이번 제안을 내놨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일본은 앞서 2025년 2월 미·일 정상회담에서 C-17 수송기 구매 의사를 밝히는 등 트럼프식 방산 거래에 호응 의사를 드러냈다. F-22와 F-47이라는 비현실적인 목표를 제시한 후 상대에게 양보한다는 인식을 심어줘 최종적으로 최대 이익을 뽑아내는 '앵커링 효과'를 노렸을 수 있다는 얘기다.

군 안팎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새 정부가 출범하면 비슷한 거래를 시도할 수 있다는 관측이 상당하다. 군 당국자는 "동아시아의 중국 견제라는 '축'에서 미국이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 간의 경쟁 구도를 만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