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패권 경쟁에서 한국이 가야할 길은 어디인가

2025-03-12

“AI 경쟁은 외교안보 차원의 ‘동맹과 연대 게임’으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미국 플랫폼 위에서 어떤 위상으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중국 플랫폼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김상배 교수

“우리나라가 AI의 모든 것을 잘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건 플랫폼의 경쟁력입니다.”

한양대 파이낸스경영학과 강형구 교수

12일 국회에서 열린 정책 토론회 ‘중국의 딥시크 공습, AI 패권 경쟁 속 한국이 나아가야 할 길’에서 나온 말이다. 이 토론회는 국회 스타트업 지원·연구모임 ‘유니콘팜’이 주최하고 스타트업얼라이언스, 플랫폼법정책학회가 함께 했다.

행사에 참석한 발제자와 토론자들은 모두 AI가 중요한 국가 경쟁력이라는 데에 입을 모았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AI는 국가 안보나 군사력과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김상배 교수는 “AI 패권 경쟁은 단순한 기술 개발을 넘어 플랫폼, 규제, 외교·군비 경쟁이 복합적으로 얽힌 국제정치적 이슈”라며, “미국은 민간 중심의 개방형 전략을, 중국은 정부 주도의 AI 전략을 펼치는 가운데 한국은 중견국으로서 균형 잡힌 AI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AI 경쟁력을 위해 필요한 것은 “선택과 집중”

참석자들은 특히 “선택과 집중”의 필요성에 대해서 공감했다. 미국과 중국이 천문학적 자금으로 AI에 대한 지원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과 정면대결해서 승리하기는 어렵다는 관점이다.

김상배 교수는 대학입시론을 펼쳤다. 그는 “대학입시에서 국영수를 잘해서 전교 1등 해보자는 학생이 있겠지만, 국영수는 어느 정도까지만 하고 암기과목 만점받아서 대학가자는 학생도 있을 수 있다”면서 “우리가 미국이나 중국에 대적할 수 있을 정도의 자원이 있는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제한된 범주에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두번째 발제자로 나선 한양대 파이낸스경영학과 강형구 교수도 ‘선택과 집중’을 강조했다. 강 교수는 “윤석열 정부는 AI의 거의 모든 분야를 포함해서 첨단기술 전반까지 세계 3대 강국으로 비상한다는 매우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이라면서 “하지만 모든 걸 잘 하겠다는 포부는 결코 전략이나 계획이 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AI 파운데이션 모델, AI 앱, 클라우드, 데이터 생태계, 반도체와 관련 장비까지 잘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모든 분야를 잘 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과 중국밖에 없다고 강 교수는 지적했다.

강 교수는 우리의 선택과 집중 대상은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네이버나 카카오와 같은 플랫폼을 보유한 나라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중국 러시아 정도밖에 없다”면서 “한국이 AI를 잘 하기 위해서는 기술 그 자체만 좇을 것이 아니라 플랫폼 관점의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설명했다.

“플랫폼 규제 완화가 첫번째 해야할 일”

강 교수는 이를 위한 첫번째로 플랫폼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우리나라는 구글 같은 빅테크 기업에 사실상 수천억원 규모의 보조금을 주고 있다고 봤다. 국내 기업에 비해 미국 빅테크 기업은 법인세를 중소기업 수준으로 내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은 구글 애플 아마존을 규제하고, 미국도 구글 애플 아마존을 규제하는데 한국은 네이버 카카오를 규제하고 있다는 게 그의 관점이다.

그는 국내 플랫폼을 계속 규제하면 중국 플랫폼에 기회가 될 것이라고 봤다. 특히 이커머스 시장의 경우 알리바바 테무와 같은 기업이 이커머스의 50%를 차지하게 될 것이고, 그 이후에는 결제와 금융 등 기간 산업으로 영향력을 확대할 것이라고 봤다. 이런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알리바바에 대한 지마켓의 투항”이라고 그는 말했다.

토론자로 나선 최난설헌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 사회는 기술이 처음 등장했을 때 호의적으로 보는 시간은 잠시이고, 바로 우려와 걱정이 대두되며 규제로 이어지는 면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AI에 있어서도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것 같아서, 지금 AI 패권을 둘러싼 패권 경쟁 속에서 우리가 분발해야하는 상황인데, 우려를 먼저 생각해야할 때인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엘리스 그룹 김재원 대표는 “국내 AI 생태계 발전을 위해 전기료 및 네트워크 비용 상승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며, 국방·의료·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AI 활용을 확대할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예 잡플래닛 COO(최고운영책임자)는 “글로벌 생태계가 이미 커지는 상황에서 자국 생태계 조성이 중요한지 의문가지는 분들도 있겠지만, 작게라도 자국 생태계가 존재하는 것은 현장에 있는 기업가에게는 최소한의 안전망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주연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전문위원은 “AI 생태계의 핵심은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 뿐만 아니라, 응용 모델의 발전에도 있다”며 “플랫폼 기업이 보유한 방대한 데이터와 유저층을 활용하는 것이 필연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현재 국가적 지원이 파운데이션 모델 및 반도체 개발에 집중되어 있으면서, 정작 AI 응용 모델을 발전시킬 수 있는 플랫폼 기업들에 대한 규제는 강화되고 있어 정책적 모순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영기 한국인터넷기업협회 국장도 과도한 플랫폼 규제가 AI 산업 발전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지적했다. 그는 “AI 기술 혁신에는 대규모 데이터 활용이 필수적인데, 지나친 개인정보보호 규제가 이를 제한해 산업 발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사전 규제 방식은 AI 기업의 기술 개발과 시장 진입을 지연시키고, 글로벌 경쟁에서 국내 기업을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할 위험이 크다”며, “무리한 규제는 오히려 국내 플랫폼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해외 기업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공진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인공지능기반정책과 과장은 “일각에선 한국이 미·중과 경쟁하기 어렵다고 보지만, 우리는 AI 특허·독자 모델 개발에서 글로벌 3위권을 유지하며 충분한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국회의 역할은?

유니콘팜 공동대표인 더불어민주당 강훈식 의원은 “한국이 AI 경쟁에서 뒤처졌다는 말이 많지만, 희망이 있다. 한국은 AI를 다양한 분야에 활용할 수 있는 나라다. 플랫폼·제조업·에너지정책을 AI를 활용해 고도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 민주당도 변화를 받아들이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유니콘팜 공동대표인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은 환영사를 통해 “AI 신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주식시장이 요동치는 등 AI는 이미 우리 삶에 밀접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라면서 “세계 6위의 AI 경쟁력을 보유한 우리나라가 미중 양강이 주도하는 AI 패권 경쟁에서 전략적 생존방식을 고려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유니콘팜 연구책임의원인 조국혁신당 이해민 의원은 “AI는 단순히 엔진(LLM)만 중요한 것이 아니고 AI를 활용한 애플리케이션 및 산업별 특화 서비스(버티컬 AI)도 중요하다”라면서, 국산 AI 서비스가 해외에서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정부, 기업, 학계가 협동하는 AI 생태계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전 삼성전자 사장이기도 한 유니콘팜 정회원 고동진 의원은 “AI산업의 골든타임은 아직 지나지 않았고, 한국은 훌륭한 인적자원을 갖고 있기에 지금도 얼마든지 잘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AI 분야의 주류인 스타트업들이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도록 국회에서 정책마련, 입법 등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심재석 기자>shimsky@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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