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에 와닿지 않던 4차 산업혁명의 실체가 표면에 드러난 것은 오픈AI가 개발한 대규모 언어모델(LLM) '챗GPT'의 등장으로 인공지능(AI)의 CPND(콘텐츠, 플랫폼, 네트워크, 디바이스) 생태계가 요동치면서부터다. 종합포털 검색 패러다임은, 기존의 '검색어 쿼리 입력 후, 정보 URL 클릭'에서 'LLM 요약 정리'로 더 지능·개인화된 '시맨틱웹'으로 변모했다. 존재감 없던 마이크로소프트(MS)의 종합 포털 '빙(BING)'이 챗GPT를 검색 엔진에 장착하자 세계 포털시장을 석권해 온 구글은 화들짝 놀라며 '바드(BARD)'에서 '제미니(Gemini)'로 이름을 바꿔가며 대응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토종 포털인 네이버도 한글 검색의 장점을 전면에 내세우며 '클로바 X'를 개발했고, SK텔레콤은 이동 환경에 맞춘 소형 언어모델(sLLM) '에이닷'을 상용화했다. 연구·개발이나 서버 관리 비용이 한두 푼 드는 것도 아니고 수익이 팍팍 느는 것도 아닌 데, 뒤쳐지면 죽는다는 위기감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다. 온라인에는 챗GPT를 이용해 관심 주제를 요점·정리한 블로그라든지 달리(Dall-E) 같은 이미지 프로그램을 이용한 생성물도 급증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 지형도 크게 흔들리고 있다. PC의 색·게임 제어용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설계하는 팹리스 기업 '엔비디아(NVIDIA)'는 챗GPT 덕분에 승승가도(乘勝街道)다. 반면 PC의 '중앙처리장치(CPU)' 시장을 독점해 온 '인텔(Intel)'은 주가 폭락과 종업원 다량 해고로 치닫고 있다.
AI 부문에서 무용론이 팽배했던 '제2의 겨울'을 넘어선 것은 2010년 앤드루 응 스탠퍼드대 교수가 수천개의 작은 코어로 구성된 GPU의 병렬 처리 능력을 활용하여 딥러닝이 구현되면서다.
반도체를 위탁 제조하는 파운드리(Foundry) 회사 간에도 희비가 엇갈린다. 후발주자인 SK하이닉스는 연산 장치가 데이터에 빠르게 접근·처리해 주는 3차원 적층 구조의 '고대역폭 초고속 메모리(HBM)'에 투자했지만, 연구·개발과 제조에 높은 비용이 든다는 이유로 포기한 삼성전자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데이터 서버를 보관하던 통신사의 인터넷데이터센터(IDC)는 'GPU 팜(farm)'으로 전환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팹리스 기업 퓨리오사AI·리벨리온·파두나 AI 학습 플랫폼인 크라우드웍스와 같은 다양한 스타트업이 눈에 띈다.
반도체 산업이 격변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모든 디지털 기기에 AI 기능을 구현하는 두뇌인 '칩(Chip)'이 심어질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외국어 번역·대화 기능을 탑재한 AI 스마트폰을 출시했지만, 속도가 더딘 아이폰은 주가·수요가 예전만 못하다. 여기에 챗GPT를 중심으로 검색 기능을 장착한 오픈AI는 단말기 제조도 검토하고 있어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
AI 생태계가 요동치면서 정보기술(IT) 인력 시장도 변하고 있다. 십여년 전보다는 나아졌지만, AI 알고리즘을 다룰 수 있는 전문 인력은 여전히 부족하다. 그렇지만, 몇 달 학원에서 프로그램 배워 IT 회사에 취직하려고 한 김대중 대통령 시절과 달리, 빅데이터 전문가라며 어설프게 탈바꿈하려고 해도 취업 문전에서 걸러지고 기존 인력은 잉여가 되어 해고 대상이 되는 것이 현실이다. 변화가 너무 빨라 넋 놓고 있을 여유가 없다.
이내찬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nclee@hansu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