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일 헌법재판소로부터 파면 선고를 받은 윤석열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한남동 관저에서 국민의힘 지도부를 만나 “대선과 관련해선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당을 중심으로 대선 준비를 잘해서 꼭 승리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가 이날 오후 5시부터 30분 동안 위로차 한남동 관저를 찾아 윤 대통령을 만났다고 신동욱 수석대변인은 서면브리핑을 통해 밝혔다.
윤 전 대통령은 당 지도부에게 “최선을 다해준 당과 지도부에 고맙게 생각한다”며 “성원해준 국민과 지지자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비록 이렇게 떠나지만 나라가 잘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고 신 수석대변인은 전했다. 당 지도부는 윤 전 대통령에게 “그동안 수고가 많으셨다. 이런 결과가 나온 데 대해 안타깝다”는 뜻을 밝혔다. 면담 자리에 김건희 여사는 참석하지 않았고, 무거운 분위기다 보니 대화가 길게 이어지진 못했다고 한다.
이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은 이날 헌재 결정 2시간 30분 뒤 변호인단을 통해 낸 메시지에서 “그동안 대한민국을 위해 일할 수 있어 큰 영광이었다. 많이 부족한 저를 응원해 주신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며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너무나 안타깝고 죄송하다”고 말했다. 또 “사랑하는 대한민국과 국민 여러분을 위해 늘 기도하겠다”고 했다. 다만 헌재 결정에 승복한다는 언급은 없었다.

윤 전 대통령은 이날 한남동 관저에서 김 여사와 함께 TV로 헌재 선고 결과를 지켜봤다.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파면을 선언했을 때 윤 전 대통령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충격이 컸을 것이라는 대통령실 인사들의 전언이다. 용산 대통령실과 대통령 경호처 고위급 참모 대부분은 선고 직전까지도 ‘4 대 4 기각 또는 각하’로 윤 전 대통령 복귀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대통령실은 이에 맞춰 대국민담화와 업무현안 보고,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개최 등의 일정도 준비해뒀었다. 하지만 헌재 재판관 전원일치 인용 결정이 나오자 망연자실한 분위기였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전 대통령이 돌아와 임기 단축 개헌을 통해 비상계엄이라는 과오를 결자해지 했으면 하는 바람이 컸었다”고 말했다.

윤 전 대통령은 즉시 한남동 관저를 나와야 하지만 이번 주말까지는 머무를 것으로 관측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탄핵 결정 이틀 뒤에 삼성동 사저로 이동했다. 탄핵된 대통령도 최대 10년간 경호·경비 대상이라 윤 전 대통령 사저가 위치한 서초동 아크로비스타에 경호 관련 준비와 관저 및 집무실 내 짐 정리를 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성태윤 정책실장, 신원식 국가안보실장을 포함한 대통령실 수석비서관 이상 고위 참모진은 이날 오후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에게 일괄 사의를 표명했다. 하지만 한 대행이 즉각 이들의 사표를 반려하며 “한 치의 국정 공백도 발생하지 않아야 하고, 시급한 업무를 차질 없이 수행해달라”고 지시했다. 한 대행은 이날 국무위원 긴급 간담회에서도 각 장관에게 국정 안정을 위해 “새 정부가 출범할 때까지 모두 자리를 지켜달라”고 당부했다.

탄핵 인용 결정 뒤 대통령실에서 윤 전 대통령의 흔적들은 빠르게 지워졌다. 대통령실 청사 정문 게양대에 걸렸던 봉황기는 오전 11시 40분쯤 깃대에서 내려왔다. 봉황기는 대한민국 국가수반의 상징으로 대통령 재임 기간 상시 게양된다. 대통령실 청사 1층 복도에 설치돼 윤 전 대통령의 주요 행사 사진이 노출됐던 대형 전광판의 전원도 꺼졌다. 청사에 걸린 윤 전 대통령의 사진들도 곧 철거될 예정이다.
박태인.조수진([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