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실근로시간 단축’ 강조하지만
부작용 적지 않아 노사자율로 정해
노란봉투법 등 재추진…갈등 확산 우려
경영계 우려 경청 노동 분쟁 최소화를
‘근로자 추정제’ 법 사각지대 해소 기대
특고·플랫폼 노동자 표준계약서 중요
월급 받는 목사님·스님도 노동위 찾아
독립기구화해 전문 분쟁 해결 나서야
“주 4.5일제를 해서 소득이 떨어지면 좋겠어요? 법정 근로시간을 줄일 때 중소기업 근로자들을 비롯한 취약계층들은 더 힘들어졌습니다. 대기업은 노동조합이 받치고 있죠. (대·중소기업 간) 격차가 더 벌어져 불평등을 키울 수 있다는 겁니다.”
김태기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이 선거 때 공약한 ‘주 4.5일제’에 대해 이런 소신을 밝혔다. 주 4.5일제는 지난 대선에서 양당이 공약으로 내걸면서 사회적 관심을 모았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도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고 말하며 근로시간 단축 추진을 예고했다.

이 대통령은 최근 주 최대 근로시간(연장근로 제외)인 40시간을 36시간으로 줄이는 ‘법정 근로시간 단축’이 아닌 ‘실근로시간 단축’이라는 점을 강조했으나 이 역시 부작용은 있다. 공공부문이나 일부 대기업에만 적용돼 중소기업 근로자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실근로시간이 줄면 근로자의 소득이 줄어드는 문제도 생긴다. 기업이 떠안는 부담도 작지 않다. 근로시간이 줄어드는데 만약 임금이 줄지 않는다면 시간당 임금이 상승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의 비판적 발언은 이런 우려에서 비롯했다. 그는 “정부가 법정 근로시간이 아닌 실근로시간 단축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는 데 그치지 않고, 노사가 자율로 정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일 서울 중구 중노위 서울사무실에서 만난 김 위원장은 새 정부가 예고한 노동정책에 가감 없이 쓴소리를 했다. 노동경제학계 석학인 그는 노·사·공익 3자로 구성된 행정기관인 중노위를 2022년 11월부터 이끌고 있다. 김 위원장은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 근로자 추정 제도 등을 언급하며 “어마어마한 변화가 있을 것이고, 노사 관계를 넘어 자본주의 전체까지 흔들 수 있다”고 말했다. 노동 분쟁 해결 기구인 중노위의 역할도 자연스레 확대될 전망이다. 다음은 김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새 정부의 노동정책 총론을 평가한다면.
“노동정책을 크게 구분 지으면 첫 번째 ‘일자리’, 두 번째 ‘소득 확대’, 세 번째 ‘불평등 완화’다. 이 세 개가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대체로 보수 정권에서는 일자리를, 진보 정권에서는 불평등 완화를 강조해왔다. 이재명정부도 불평등 완화에 초점을 두는 것 같다. 그런데 법을 통해 이를 시행하려 할 때 오히려 불평등을 키울 수 있다. 법을 잘 쓰면 기득권을 완화하지만, 잘못 쓰면 기득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간다. 주 4.5일제가 그 예다.”

―우려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주 4.5일제는 노동의 가치를 높이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다. 그렇지만 현재 주 40시간에서 36시간으로 법정 근로시간을 줄이면 속도가 너무 빠르고, 불평등을 확대할 수 있다. 근로시간을 10% 줄일 때 소득이 10% 줄어든다면 누가 좋아하겠냐는 말이다. N잡러(다중취업자)만 급속하게 늘어나지 않을까.
‘저녁 있는 삶’은 좋지만, 돈이 없을 때도 저녁이 있냐고 되묻고 싶다. 결국 생산성이 올라가야 한다. 정부가 ‘인공지능(AI) 3대 강국’을 목표로 잡았는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관에 국한하지 말고 전 분야에 어마어마하게 지원해야 한다고 본다. 근로시간 문제는 소득만이 아닌 저출생 등과도 직결되기 때문에 AI로 생산성과 소득을 같이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노란봉투법 재추진은 어떻게 보는가.
“핵심은 두 가지다. 하청 노동자가 원청과 직접 교섭할 수 있도록 하고, 파업 등에 대한 사측의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것이다. 법이 통과되면 하청 노동자는 원청 사업주와 교섭할 길이 열린다. 그런데 하청 기업이 한두 곳이 아닌 기업들은 필연적으로 갈등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지방노동위원회를 포함해 노동위의 역할은 더 중요해진다. 교섭단위 설정 등에 판단이 필요해서다. 불법 파업 역시 마찬가지다. 파업 과정에서 불가피한 문제들이 불거진 것이랑 처음부터 불법 파업인 건 다른데, 불법 파업이 면책되는 길로 가서는 안 된다. 즉 자칫하면 노동 분쟁이 확산하고, 부작용이 순작용보다 클 수 있다. 경영계 우려도 경청해야 하는 이유다.”

―‘근로자 추정제도’를 도입해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가 처한 사각지대를 개선하겠다는 정책에 대한 의견은.
“불평등을 완화하고자 하는 취지로 노동법의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법적 실효성을 높이려면 정책이 세밀하고 정교해야 한다. 예컨대 웹툰 작가 등 하나의 직군을 일괄적으로 근로자라 정하는 것은 곤란할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2019년 근로자 추정제가 도입됐다고 해서 사람들이 박수를 치지만,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게 현실이다. 법적 보호 강화가 기업에는 ‘법적 리스크(위험) 증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노동시장을 위축시킬 수 있다. 캘리포니아 경제가 쇠퇴하고 텍사스 등으로 기업들이 옮겨가는 현상이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미 노동위에 특고와 플랫폼 종사자들 사건이 많이 올라와 있다. 고용 관계의 성격을 고려해 건별로 구체화하는 게 중요하다. 그 연장선에서 특고·플랫폼 노동자를 위한 표준계약서 연구 등을 노동위에서 할 수 있게 조사·연구 기능이 강화돼야 한다.”
―노동위 조사관, 상임위원 부족 등 인력난이 지적되고 있는데.
“저와 같은 상임위원은 21명, 다른 주업이 있는 비상임위원이 1800명이다. 문제는 사건이 늘어났다는 거다. 노동위에 접수된 사건은 2023년 2만1394건으로 전년 대비 19% 늘고, 지난해에도 2만3963건으로 12% 증가했다. 인력은 그대로여서 참석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새 정부에서 근로자 추정제, 노란봉투법 등이 추진되면 노동위 업무가 더 늘어날 것이다.

상임위원 확대는 공무원 정원과 연관된 문제라 행정안전부, 기획재정부와 이야기해야 한다. 공론화가 필요한 대목이다. 노동위 인력을 늘려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나야 한다.
조사관 문제도 마찬가지다. 조사관은 고용노동부에 노동청 인사 계획에 따라 순환 근무로 온다. 통상 1년 반, 길면 2년 정도 머물다가 이동한다. 전문성이 쌓이기 힘든 구조다. 새 정부가 ‘노동위 실효성 강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는데 그 핵심은 조사관의 전문성 강화다.”
―조직과 인력이 고용부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말인지.
“그렇다. 단언컨대 노동위는 고용부 소속 행정기관에서 독립 기구로 떨어져 나와야 한다. 노동법의 보호를 받는 근로자가 확대되면 조정과 심판 대상도 늘게 돼 있다. 안 그래도 분쟁 당사자가 노동조합과 사업주에서 개별 근로자끼리 분쟁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목사님, 스님도 노동위를 찾는다. 월급 받는 목사님, 스님이 부당해고를 주장하며 구제 신청을 하는 식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위는 전문 분쟁 해결 지원기구로 확대돼야 한다.”

―취임 뒤 가장 역점을 둔 부분은.
“노동 분쟁 예방과 해결에 집중했다. ‘조용한 해결사’라는 별명을 언론에서 지어줄 만큼 당사자들 자율적 해결을 지원했다. 객관적 지표가 성과를 뒷받침한다. 사건이 매해 늘어나는데도 평균 사건 처리 일수는 2022년 53일, 2023년 51일, 지난해 50일로 줄었다. 중노위 판정에 대한 법원의 재심유지율은 2022년 84.2%, 2023년 84.4%, 지난해 87.5%로 올랐다.

‘대안적분쟁해결(ADR) 전도사’라는 별명도 뿌듯하다. ADR은 중립적인 중재자가 화해·조정·중재로 분쟁을 해결하는 방식이다. 지난해 ‘ADR 전문가 양성 과정’을 개설했다. 말 그대로 ‘대박’이 났다. 지난해 기초과정은 5000여명, 심화 과정은 2000여명이 교육을 받았다. 올해는 집합·실습교육 72시간을 수료해야 하는 고급 과정도 개설했다. 다음 달 8일 고급 과정 졸업생 50여명이 처음 배출된다. 연말까지 총 100명의 고급 과정 이수자가 나온다. 쟁쟁한 변호사들, 교수들이 많이 참여했다. 이런 호응이 엄청난 변화의 시작이라고 본다.”
―남은 임기 동안 힘을 쏟고자 하는 부분은.
“조사관 수당 인상, 인력 증원 등으로 사기를 높이고 싶다. 지난해 조사관 활동 수당(월 5만원)을 신설했지만, 근로감독관(월 25만원)보다도 많이 적다. 동시에 AI디지털 기술로 업무 효율성을 높이고자 한다. 내년 6월부터는 AI 기반 상담 등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궁극적으로 ‘분쟁 해결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 앞장선 위원장’, ‘노동위 사건 처리에 AI 기술을 접목한 위원장’으로 기억되고 싶다.”

김태기 위원장은…●1956년 부산 출생 ●서울대 경제학 학사 ●미 아이오와 대학교 경제학 석·박사 ●단국대학교 경제학과·부설 분쟁해결연구센터 초대 소장 교수 ●중앙노동위원회 공익위원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임금근로시간제도개선위원회 위원장·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 위원장 ●서울시 노사정 서울모델협의회 위원장 ●한국노동경제학회 회장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2022년 11월∼)
대담=정재영 사회부장, 정리=이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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