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전모씨(52)는 올해 건강검진에서 혈관에 콜레스테롤이 쌓여 동맥경화증(죽상경화증)이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혈액 속 콜레스테롤과 노폐물이 혈관벽에 오랜 기간 달라붙어 혈관이 좁아지고 딱딱해졌다는 것이다. 그와 함께 이상지질혈증이란 진단도 받았다. 전씨는 “이상지질혈증 자체는 나처럼 중년기가 되면 비교적 흔히 생기는 질환이라고 의사에게 들었지만 내 얘기일 줄 몰랐던 병을 알게 되니 충격이 컸다”고 말했다. 전씨는 약을 처방받아 동맥경화와 이상지질혈증 치료에 들어갔다.
이상지질혈증이란 개별 질환만 보면 지질 대사에 이상이 생겨 혈액 속 총 콜레스테롤이나 흔히 ‘나쁜 콜레스테롤’이라 불리는 저밀도(LDL) 콜레스테롤 등이 높은 경우를 가리킨다. 하지만 이 질환이 진행돼 나타나는 각종 심혈관질환이 국내 사망원인 중 2위에 올라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가볍게 보기 어렵다. 특히 고혈압이나 당뇨병 등 보다 널리 알려진 만성질환에 비해 이상지질혈증에 대해선 경각심을 일깨우려는 정책이나 활동이 드문 편이다. 2025년에는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를 넘어서고 그만큼 만성질환 환자 역시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상지질혈증 증가세를 잡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3일 질병관리청이 발표한 2023년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를 보면 최근 10년간(2014~2023년) 국내 19세 이상 성인의 고혈압, 당뇨병 유병률은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고혈압 유병률은 2014년 20.1%에서 지난해 20.0%로 소폭 줄었고, 당뇨병은 같은 기간 9.3%에서 9.4%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지질혈증에 포함되는 고콜레스테롤혈증 유병률은 해당 기간 11.6%에서 20.9%로 상승해 지난해 기준 고혈압보다 높았다.
10년 새 유병률 두 배 가까이 상승
고혈압·당뇨병과 ‘3종 세트’ 환자
최근 10년간 4배 늘어 250여만명
장기간 방치하면 동맥경화증 심화
갑작스럽게 심·뇌혈관질환 올 수도
지질강하제로 80% 이상 조절 가능
포화지방 많은 음식 섭취 피하고
체중 줄이는 등 생활습관 고쳐야
이 세 가지 질환은 치명적인 심혈관질환이 발생하기에 앞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선행질환이다. 그래서 의료계에서도 정부의 만성질환 예방관리 정책이 고혈압·당뇨병뿐 아니라 이상지질혈증까지 확대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박근태 대한개원의협의회 회장은 “이상지질혈증은 특별한 증상이 없어 발견이 어려운데, 방치할 경우 심혈관질환과 같은 심각한 후유증을 초래할 수 있다”며 “이상지질혈증의 유병률은 매년 높아지는데, 인지율과 치료율이 낮을뿐더러 만성질환 관리 정책에서도 소외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이 고혈압·당뇨병과 함께 이상지질혈증까지 함께 묶어 만성질환 관리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특히 이상지질혈증이 있으면 병리적으로 혈압이 높아지는 고혈압과 인슐린 저항성이 커지는 당뇨병 모두를 동반하기가 쉬워진다. 또 이상지질혈증을 적시에 치료하지 않으면 3종의 만성질환이 ‘한 세트’로 발병할 위험은 물론, 더 심각한 중증 심혈관질환 위험도를 크게 높일 수 있다. 대한고혈압학회의 ‘고혈압 팩트시트 2024’를 보면 실제로 이들 3개 질환을 동시에 치료하는 환자는 지난 10년간 약 4배 증가해 250만명을 넘어섰다.
이상지질혈증은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의 이상뿐 아니라 비만, 특히 복부의 내장지방이 많아 혈중 중성지방 수치가 높은 경우 등도 포함한다. 이 질환이 있다고 해서 특별한 증상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젊은 나이인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부터 향후 치명적인 위험이 될 수 있는 요인들이 점차 축적되기 시작한다는 점이 문제다. 혈관벽에 지방이 쌓여 혈관이 좁고 딱딱해지는 현상은 나이가 들면서 계속 진행되기 때문에 증상이 없다고 장기간 방치하다 동맥경화증이 심해지면 결국 협심증, 심근경색, 뇌졸중 등 심·뇌혈관질환이 갑자기 닥칠 수 있다.
치료와 예방을 위해선 특히 혈관에 콜레스테롤이 쌓이도록 유도하는 ‘나쁜 콜레스테롤’인 저밀도 콜레스테롤을 주의해야 한다. 저밀도 콜레스테롤 중 약 20%는 음식 섭취 등 외부에서 흡수된 것이고, 80%는 체내에서 생성된 것이다. 따라서 약물치료와 더불어 생활습관 개선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 특히 비만은 이상지질혈증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체중을 줄이면 대체로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 수치가 낮아져 상태가 개선된다. 식생활에서는 지방 중 특히 포화지방이 많은 음식은 피해야 하고, 탄수화물 역시 필요 이상 섭취하면 남는 칼로리를 저장하기 위해 간에서 콜레스테롤을 더 많이 만들어내므로 적당한 수준으로 조절해야 한다. 신체활동과 운동은 늘리되 흡연과 음주는 하지 않아야 한다. 환자에 따라 유전적 요인이 작용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가족력이 있다면 보다 세심하게 살피며 주의해야 하고, 당뇨병·갑상선저하증·간질환 등 다른 질환이 있을 때 이상지질혈증이 생길 수도 있으니 원인질환이 있다면 우선 치료해야 한다.
약물치료는 심혈관질환 위험도와 저밀도 콜레스테롤 수치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결정한다. 심혈관질환 예방효과가 있는 스타틴은 가장 우선적으로 쓰이는 치료제 중 하나로, 저밀도 콜레스테롤 목표 수치에 도달할 때까지 용량을 조절해 사용한다. 만약 복용할 수 있는 최대 용량의 스타틴으로도 저밀도 콜레스테롤을 목표치인 70㎎/dℓ 아래로 조절하지 못하면 콜레스테롤의 흡수를 억제하는 약제인 에제티미브를 추가로 복용할지 고려해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특히 젊은 이상지질혈증 환자들이 병과 자신의 몸 상태를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이들은 중장년층보다 만성질환을 경험한 비율이 크게 낮아 생활습관 개선과 약물치료에 소홀하기 쉬운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젊은 나이부터 질환이 진행하기 시작하면 중증 심혈관질환을 겪을 경우 투병 기간도 길어지고 여러 합병증을 동반할 위험도 높아진다. 고령 환자보다 더 오랜 기간 병에 시달리기 때문에 삶의 질이 더욱 저하되기 쉽다.
박근태 회장은 “이상지질혈증은 지질강하제를 통해 80% 이상의 환자가 혈중 지질 수치를 조절할 수 있는 만큼 질환의 조기 발견과 치료가 매우 중요하다”며 “진단 후 환자가 국가건강검진 사후관리 체계에서 고혈압·당뇨병과 이상지질혈증까지 함께 통합적인 관리를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정부의 일관성 있는 정책적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