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생각지 못한 작품이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단편 애니메이션 예비후보에 올라 눈길을 끌었다. 일본 애니메이션 ‘알사탕(Magic Candies)’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우리가 일본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가져야 하나. 더구나 일본 애니메이션이 유명한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니던가.
이 일본 애니메이션은 ‘구름빵’으로 유명한 우리나라 백희나 작가의 그림책 ‘알사탕’과 ‘나는 개다’를 원작으로 한다. 원작이 그림책인 만큼 애니메이션으로 옮기기 수월하다는 장점이 있다. 아카데미에서 수상 가능성도 크다. 이미 이 애니메이션은 2024년 3월 뉴욕국제어린이영화제(NYICFF)에서 단편 애니메이션 심사위원 최우수상을 받았다.
일본 창작자들은 이렇게 훌륭한 그림책이 한국에 있다는 사실에 감탄했다고 밝힌 바 있다. 참여한 제작진도 일본에서 내로라하는 이들이다. 애니메이션 ‘드래곤볼’ ‘김전일’ 시리즈의 니시오 다이스케 감독이 연출했고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와시오 타카시 프로듀서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명망과 역량이 있음에도 일본식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백희나 작가가 만든 점토 인형의 질감을 충분히 살려 한국적 미감을 구현하려 했다.
한국에서는 백희나 작가의 작품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지 않았다. 우리에게 있는 중요한 문화 자산을 일본에 양보한 셈이 되었다. 아무래도 지금 우리는 너무 웹툰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웹툰을 넘어 주목해야 할 장르에 그래픽 노블이 있다. ‘풀’의 김금숙 작가에 이어 최근 그래픽 노블 분야에서 해외의 주목을 받는 이가 마영신 작가다. 마 작가는 ‘엄마들’이라는 작품으로 2021년 만화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미국 하비상을 받았다. 전년 김금숙 작가에 이어 한국 작가가 연달아 수상한 것이다. 마영신 작가는 프랑스 기메문학상 그래픽 노블상 후보에도 올랐다. ‘엄마들’에 이어 ‘러브 스트리밍’과 ‘아티스트’는 영상화될 예정이며 ‘호도’도 해외 출간을 앞두고 있다.
마 작가는 태블릿 피시가 아니라 펜으로 직접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더 인정을 받는다. 해외에서 그래픽 노블(Graphic Novel)은 그림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 코믹스 만화보다 그림이 더 예술적이고 내용이 깊이 있는 만화를 가리킨다. 마 작가는 우리나라 웹툰이 유럽이나 북미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못 보이는 것은 그래픽 노블 장르가 웹툰 플랫폼에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아서라고 지적한다.
우리 포털 웹툰 플랫폼들이 문을 두드리는 유럽 가운데 프랑스는 종이 만화가 아직도 만화 산업의 주류다. 지난해 프랑스 앙굴렘국제만화축제에서 한국 만화가 박윤선의 ‘어머나, 이럴 수가 방 소저’가 아동 부문 최고상인 아동 야수상을 받았다. 주로 출판 종이 만화인 우리의 그래픽 노블이 해외에서 인정을 받는데, 정작 한국에서 홀대받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그래픽 노블은 영감의 수원지(水源池)가 될 수 있다.
그래픽 노블은 독립 만화 장르라고 할 수 있고, 독립 만화는 종이 만화로 연결된다. 종이 만화의 애독자, 즉 마니아는 우리나라 문화 수준을 높이는 코어 팬덤이라 할 수 있다. 반대로 해외 진출을 적극 꾀하는 한국의 포털 웹툰은 코어 팬덤이 적은 라이트 팬덤이다. 주말 드라마가 시청률은 높아도 열렬한 팬은 적고, 시청률이 낮은 드라마가 오히려 코어 팬덤은 큰 것과 같다.
웹툰은 조회 수가 많아 화제가 되어도 작품성이 높은 경우가 거의 없다. 영상화 당시엔 화제가 되어도 두고두고 회자되는 사례가 많지 않은 이유다. 더구나 웹툰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는 경우는 찾기 힘들다. 한국 웹툰이 정말 대단하다면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과 제작진이 관심을 가질 텐데 그렇지가 않다. 그들은 오히려 한국의 그림책을 주목했다. 이는 결국 일본 애니메이션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일이다.
적지만 핵심적인 한국의 그래픽 노블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는데도 국내에서 이를 본격화하려는 작업이 없어 안타깝다. 재능 있는 창작자들이 모두 웹툰으로 몰려가는 현실에서 과연 그것만이 정답인지 묻고 싶다. 웹툰을 통해 상업적인 이익을 얻으려 흥행 코드에 집중하기보다는 만화를 예술의 단계로 끌어올릴 전문 인력 양성을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웹툰 플랫폼이 뿌리 깊은 나무가 될 수 있다. 웹툰업계는 출판 만화의 성장이 웹툰과 불가분임을 성찰해야 한다. 정부는 이를 지원할 정책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뿌리를 깊이 내리기도 전에 열매를 먼저 따려는 모습이 종종 보이는데, 이것은 한국 웹툰의 위기를 예고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필자 김헌식은 20대부터 문화 속에 세상을 좀 더 낫게 만드는 길이 있다는 기대감으로 특히 대중 문화 현상의 숲을 거닐거나 헤쳐왔다. 인공지능과 양자 컴퓨터가 활약하는 21세기에도 여전히 같은 믿음으로 한길을 가고 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writer@bizhankook.com
[핫클릭]
· [K컬처 리포트] 다시 뜨는 밴드 음악, K팝 '대안' 될까
· [K컬처 리포트] '오징어 게임 2' 논란 속에도 '글로벌 1위' 이유는?
· [현장] 코코몽·롯데월드 모인 콘텐츠 IP 마켓, 해외 판권계약 날개 달까
· [비즈피플] 나스닥 오른 '성덕' 김준구 네이버웹툰 대표, 잇단 악재 해법은?
· 'K팝 성지 대결' 카카오는 성공하고 CJ는 실패한 결정적 장면
<저작권자 ⓒ 비즈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