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스크바엔 호텔이 거의 없었다.
그 이유는 첫째로, 공산주의 하의 소련이란 나라가 극심한 통제정책을 펴왔기에 여행자가 매우 적었을 것이고, 둘째로 여행자들이 몰려다니면서 정치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불평을 늘어놓게 되는 장소를 아예 만들지 않으려고 한 데서 나온 것이라고 판단되었다.
내가 중심가에 도착하였을 때는 마침 햇빛이 반짝 비치기 시작한 때라 단청이 요란한 양파 모양의 유명한 바실리 교회는 더욱 선명하게 보였으며, 나는 약간의 흥분 속에서 내가 이곳에 설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정부 기관과 사람들에 대해서 순간 고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침내 개인 투어가 가능하다고 해서 1시간의 투어를 하게 되었으며, 그간에 웅장한 정부청사들, 금색이 찬연한 교회들, 국빈호텔, 유일한 백화점, 제정러시아-소련의 명사들의 기념비들을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지금은 그 위광이 많이 사라져 초라하게 느껴지는 관 속의 조그마한 레닌(Lenin)의 모습이었으며, 이 때 나의 뇌리를 스치고 있었던 것은 이념과 정치가 인류사에 있어서 그저 무상할 뿐이라는 생각이었다.
다음날부터 나는 나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모스크바 대학에 갔고 냉전의 세계적 석학 베를린 자유 대학의 놀테(E. Nolte) 교수로부터 소개받은 독일어를 잘하는 독일 통일 전공 교수를 만나 의견을 교환하고 자료 등을 얻을 수 있었다.
하얀 눈으로 온통 뒤덮인 모스크바 대학은 참으로 웅장해서 시원스럽게 보였다. 역시 각 나라는 그 나라에 어울리는 옥스포드 대학, 빈 대학,; 베를린 대학, 하버드 대학과 같이 웅자를 나타내는 대학들이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온 세상이 새하얀 눈으로 덮여 있는 가운데 고색이 창연한 건물들과 도시 그리고 모스크바 중앙을 유유히 흐르고 있는 강은 나그네의 마음을 매혹시키기에 충분하였다. 한때 최전방 수색중대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지만 추위에 약하고 감기까지 걸린 나에게는 너무나 추운 것이 큰 아쉬움이었다.
나는 이 순간 일조시간이 짧고 매섭도록 추운 기후 속에 사는 러시아 사람들에 비해, 비록 인구가 많아 생존경쟁이 너무나 심한데다가 부존자원마저 부족하지만 계절의 변화와 함께 쾌적한 기후와 아름다운 자연 속에 사는 한국인이 정말 행복하며 그 가능성 또한 무한하다고 새삼 느끼게 되었다.
체류기간이 매우 짧았는데도 계획했던 일들을 큰 어려움 없이 마칠 수가 있었고 너무나 추운 날씨 때문에 움직이기가 매우 불편해서 모스크바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 몹시 아쉬웠지만 곧바로 목적지인 베를린 대학으로 떠날 생각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닥칠 우여곡절은 예상하지 못한채 사가(史家)로서 피터대제의 대개혁과 러시아 혁명과정의 상징인 상트 페테르부르그(St. Petersburg, 舊 Leningrad)를 보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시간을 내 상트 페테르부르그에 가기로 결정했다.
이규하 <전북대학교 명예교수>
저작권자 © 전북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