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훈 교수가 쓴 ‘위험한 일본책’을 읽다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일본인의 친절과 관련해 쓴 대목인데 여러 면에서 공감 갔다. 나 또한 일본을 다니면서 일본인들이 이전 같지 않다고 느끼던 차였다. 박 교수는 ‘불친절해진 일본인’이란 글에서 더 이상 일본인은 친절하지 않다며 경험을 소개했다. 일본 유학 시절 일본인의 친절에 감동했다는 박 교수는 시간이 지날수록 의심이 생겼다고 한다. 손님을 대하는 종업원들의 음성 톤과 태도가 너무나 똑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감정이 거세된 친절을 ‘사이보그 친절’로 명명하고, 솔직하지 못한 일본의 국민성을 아쉬워했다. 그랬던 일본인들이 반갑게도(?) 많이 불친절해졌다며 반겼다.
박 교수는 이자카야에서 사케 잔을 가득 채워 달라고 했다가 종업원으로부터 레이저 눈빛을 받았다고 했다. 일본에서 손님을 쏘아보는 눈빛은 처음이었다는 그는 불친절을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기계적 친절에서 벗어난, 일본 청년세대의 변화는 자연스러운 결과다. 선의를 담은 박 교수의 해석에 공감한다. 하지만 눈살을 찌푸릴 만큼 극단적인 불친절을 겪었던 나로서는 마냥 공감하기 어렵다. 근래 일본을 다니면서 ‘이건 아닌데’라고 느꼈던 게 한두 번 아니었다. 우연도 거듭되면 필연이 되고, 실수도 반복되면 악의가 되듯 연이은 불친절과, 무례함은 ‘일본의 친절’을 다시 돌아보게 했다.
지난해 가을, 도쿄 인근 하코네(箱根)에서 겪은 일은 지금 생각해도 불쾌하다. 유명 온천 관광지인 하코네는 도쿄에서 가까워 연중 관광객으로 북적인다. 하코네 여행은 고라(强羅) 역을 중심으로 이뤄지는데, 모든 버스와 산악열차가 출발하고 도착하는 곳이 고라 역이다. 나는 종점인 고라 역에서 내려야하기에 벨을 누르지 않았다. 버스가 정차하면 자연스럽게 내릴 생각이었다. 종점에 도착해 내리겠다고 하자 버스 기사는 짜증 섞인 얼굴로 “바가야로(멍청한 놈)”라고 중얼거렸다. 순간 나는 “뭐야? 바가야로?”라고 반문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당황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고 얼버무리며 수습했다. 매일 같은 코스를 운행하는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나머지 무심코 내뱉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용납하기 어려웠다.
도쿄 긴자에서 공항버스를 탈 때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버스 타는 줄이 맞느냐는 물음에 중년 여성은 “그렇다”며 차갑게 응대했다. 버스가 출발할 때쯤에서야 그의 불손한 언사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그는 출발 시간에 임박해 남편과 딸이 오지 않아 초조했던 것이다. 덮어놓고 친절을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불쾌했다. 지난 1월 벳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후쿠오카 공항행 버스 짐칸에 짐을 싣고 탑승하는데 중년 여성은 내가 새치기를 한다며 버스기사에게 격하게 항의했다. 예약석이기에 자신에게 불이익이 없을 뿐더러, 나 또한 새치기하려는 게 아니었다. 그럼에도 사소한 것조차 민감하게 대응하는 그를 보면서 많이 변했구나 하는 생각에 씁쓸했다. 박훈 교수는 일본 젊은 세대의 불친절을 긍정적인 변화로 받아들였지만 내 경우는 다르다. 모두 중년인데다, 불친절과 무례는 정도를 한참 벗어났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도 일본의 지방 소도시에서는 감동어린 친절을 수시로 경험한다. 자칫 호들갑스럽다고까지 여겨지지만 ‘친절한 일본’은 긍정적인 자산이다. 이따금 주변에서 일본인의 친절을 ‘본심(혼네)’이 아닌 ‘겉치레(다테마에)’로 폄하하는 이들을 만난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러는 당신은 흉내라도 내봤느냐”며 반박한다. 그랬던 일본인들이 변했으니 난감하다. 직접 겪은 사례는 퍽이나 당혹스럽다. 도쿄 등 대도시와 유명 관광지에서 유독 흔하다. ‘사는 게 힘들다보니 각박해졌다.’고 이해하면서도 불쾌한 건 어쩔 수 없다. 무한경쟁을 기본으로 하는 자본주의 속성에서 비롯된 변화가 아닌가싶다.
그들에게 외국인은 더 이상 손님이 아니라 평온한 삶을 깨뜨리는 ‘침입자’일 뿐이다. 나아가 돈 벌이 상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친절에 앞서 짜증부터 나는 것이다. 여기에 동양인을 우습게 보는 국민성도 한 몫했으리라 짐작한다. 우리도 그렇지만 일본 또한 백인 앞에서는 다소곳하지만 동양인은 쉽게 대하는 경향이 있다. 더구나 한때 식민지였고, 이제는 많은 분야에서 경쟁상대로 떠오른 한국을 얕잡고 경계하는 일본인도 적지 않다. 일본이 ‘잃어버린 30년’을 지나며 헤매일 때 ‘메이드인 코리아’는 가전제품부터 반도체까지 ‘메이드인 제팬’을 무섭게 대체했다.
그럼에도 일본인의 친절은 여전히 감동적이다. 지난해 가을, 조선 독립운동가 무료 변론에 일생을 바친 후세 다쓰지 변호사와 간토 대지진 와중에 조선인 300여 명을 구한 오카와 쓰네키치 서장을 취재하러 가는 길에 만난 일본인들은 감동적이었다. 그들은 세차를 멈추고, 정원수 손질을 중단한 채 자신들 차로 나를 안내했다. 과도한 친절과 무례한 불친절이 공존하는 일본 사회를 한마디로 규정하기란 쉽지 않다. 친절과 불친절 여부 또한 개인 성향에 따라 다를 수 있기에 선입견 역시 경계할 일이다. 다만 나는 가식적일망정 일본인의 친절이 계속되길 소망한다. 습관도 오래되면 태도가 된다. 일본인의 겉치레 친절도 시간과 함께 감동어린 친절로 바뀌었다고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