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온난화가 심해지면서 산불을 비롯한 기후재해 발생 빈도가 늘어나고 있다. 이에 이상기후에 가장 취약한 산업인 농업분야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사전 대비와 사후 복구·보상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최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발표한 3월 영남권 산불 피해조사 결과에 따르면 총 1조81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났으며, 피해 복구비는 1조8809억원이 책정됐다. 인명 피해는 사망 27명(위로금 지급대상 기준)과 부상 156명 등 183명으로 집계됐으며, 10만4000㏊의 산림 피해도 발생했다. 이번 산불 피해는 관련 통계를 작성한 1987년 이후 최대 규모다.
국제 기후변화 연구기관인 세계기상특성(WWA)은 이번 산불의 주원인으로 기후변화를 꼽았다. WWA는 이번 산불이 340년에 한번 꼴로 발생할 만큼 이례적이었지만, 산업화 이후 기온이 1.3℃ 상승하면서 대형 산불 발생 확률이 2배로 증가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만일 2100년까지 기온이 1.3℃ 더 높아지면 산불 발생 가능성이 다시 2배 올라 178년에 한번 꼴로 대형 산불이 나타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으로 기후재해가 더욱 빈번하게 발생하리라는 예측이 나오며 기후에 민감한 농업분야의 타격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농협 미래전략연구소는 최근 ‘이상기후에 따른 농업재해 현황과 정책 제언’ 보고서를 내고 기후변화로 인한 농업 피해를 줄일 방법을 모색했다.
보고서는 농업재해 대응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필요한 정책을 사전 대비와 사후 복구·보상으로 구분했다. 그러면서 농업재해 사전 대비를 위한 방안 중 하나로 ‘농어업재해대책법’ 개정을 들었다. 장도환 농협 미래전략연구소 부연구위원은 “현행 ‘농어업재해대책법’은 재해 복구를 위한 정책 비중이 높아 선제적으로 재해를 막는 데 어려움이 있다”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기후 적응형 농업인프라와 농작물 재해 예방 대책 구축 의무를 부여하는 조항 추가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장기적 관점에서 아열대기후에 따른 농업정책 플랜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기후변화로 한반도 기후가 아열대로 변한다는 징후가 관측되면서 온대와 아열대 기후가 공존하는 지역에 맞는 농작물 품종을 개발하고, 가뭄이나 폭우에 대비할 수 있는 재해저감형 관개시설을 설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후 복구·보상 정책으로는 농업재해 복구비 현실화가 꼽혔다. 정부는 재해복구비 현실화를 위해 지원 단가를 점진적으로 인상하고 있지만, 농업계가 원하는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분석이다.
장 부연구위원은 “재해 회복력이 낮은 영세·고령농에게 도움이 되도록 ‘재해복구 영농자재 바우처사업’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며 “피해농가가 재해 발생 전까지 투입했던 생산비를 재해복구비로 지원하는 방식도 적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특별재난지역 선포 기준을 변경할 필요도 있다고 했다. 현재 특별재난지역은 ‘특정 자연재해’와 ‘공통 재해(자연재해+농업재해)’ 발생 시 선포할 수 있다. 이상저온·우박·병해충 등과 같이 농작물에만 영향을 주는 특정 농업재해 발생으로는 특별재난지역 선포가 불가능하다. 보고서는 이상기후로 특정 농업재해로 인한 피해가 커지는 만큼 복구 비용의 일부·전부를 국고로 지원받는 특별재난지역의 선포 기준을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정부에서 탄소중립, 농업분야 기후적응 연구·개발 등에 사용할 수 있는 ‘농업기후적응기금’을 신설하는 방안도 대책 중 하나로 거론했다.
이재효 기자 hyo@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