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남인터넷신문]21세기 농업은 괭이보다 센서, 감보다 데이터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논밭을 날아다니는 드론은 토양의 수분 상태와 작물의 생육 정도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인공지능(AI)은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병해충 발생 가능성과 최적의 수확 시기를 예측한다. 이러한 흐름은 전통적으로 농민의 오랜 경험과 감각에 의존해왔던 농업을 예측 가능하고 과학적인 산업으로 전환시키고 있으며, 전라남도 농업 역시 이 변화의 기로에서 생존과 도약이라는 이중 과제를 마주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스마트농업의 선두주자로 꼽히는 나라는 네덜란드다. 이 나라는 협소한 국토와 불리한 기후 조건이라는 한계를 오히려 기술혁신의 자극제로 삼았다. 자동화 온실, AI 기반 생산관리 시스템, 로봇 수확 기술 등 첨단 기술을 조기에 도입함으로써 세계적인 농산물 수출국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이들의 성공 요인은 단순히 기술의 도입에 있지 않다. 생태환경, 인간의 노동, 기술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시스템의 구축’이 핵심이었다. 전라남도 역시 이 사례에서 영감을 얻되, 단순 모방이 아닌 지역 특성과 자산을 바탕으로 한 독창적 모델을 정립해야 한다.
전라남도는 대한민국 농업의 중심지이자 식량 주권의 버팀목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고령화, 노동력 부족, 기후 위기라는 삼중고가 농촌을 짓누르고 있으며, 대부분 중소규모 농가로 구성된 전남의 구조에서는 대규모 스마트팜 중심의 획일적 모델을 적용하기 어렵다. 이에 지금 필요한 것은 전남 고유의 자연환경, 작물 특성, 농업 생태계에 적합한 ‘맞춤형 스마트농업 모델’의 구축이다. 이는 단순한 기술의 수입을 넘어, 전남농업의 정체성과 지속 가능성을 함께 고려한 융합형 전략이어야 한다.
예컨대 유자, 매실, 고구마 등 전남의 대표 특산물에 AI 기반 병해충 예찰 시스템을 도입하면 친환경 농업의 안정적 기반을 구축할 수 있다. 축적된 기후 및 생육 데이터는 수확량 예측과 가격 변동 대응에 기여하고, 나아가 디지털 유통망이나 로컬푸드 플랫폼과 연계해 소비자와의 직거래 시장을 활성화할 수 있다. 이처럼 전남의 자연과 농산물, 문화는 기술과 결합할 때 더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농업이 기계화되거나 대규모화될 수는 없다. 특히 소농 중심의 전남 농가는 고비용의 스마트 기술을 도입하기 어렵고, 대농장과의 생산성 경쟁에서도 불리할 수밖에 없다. 이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차별화 전략’이 필수다. 로봇과 AI의 시대일수록 농산물은 공산품처럼 균질화되기 쉽고, 이에 따라 가격 경쟁력은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농민들은 생산 방식의 고유성, 전통 지식, 지역의 문화와 스토리를 담은 ‘공산품 같지 않은 농산물’을 만들어야 한다. 단순한 상품이 아닌, 이야기와 가치를 담은 농산물이 되어야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전라남도농업기술원의 역할이 중요하다. 기술원은 단지 새로운 농업기술을 연구하고 보급하는 기관이 아니라, 전남농업의 지속가능성과 미래 경쟁력을 설계하는 ‘전략적 두뇌’여야 한다. 로봇과 AI를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 기술 개발뿐 아니라, 소규모 농가도 살아남을 수 있는 차별화 전략과 문화적 접근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예를 들어, 농민의 이야기를 담은 농산물 브랜딩, 전통 지식 기반의 재래종 복원과 활용기술 개발, 지역문화와 연계한 체험농업 확대 등은 기술이 아닌 가치로 경쟁하는 방식이다. 기술과 문화,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전남형 스마트농업’은 이원화 전략으로 가능하다. 즉, 한편으로는 고도화된 기술로 산업화를 추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전통과 생태 기반의 고부가가치 전략과 함께 재미 요소를 가미해 병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양립형 농업정책은 단순히 생존을 넘어, 전남농업을 대한민국 미래 농업의 모델로 끌어올릴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다. 전남농업기술원은 이 두 축을 아우르는 균형 잡힌 전략을 통해, 로봇과 AI의 시대에도 전라남도 농업이 품격과 생명을 지닌 산업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