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양식은 단순한 '기술 배치'가 아니다. 이는 산업의 언어를 새로 짜는 작업이다. 자동 사료공급기, 수질센서, 질병 예측 솔루션이 전국 양식장에 들어섰지만, 산업은 여전히 과거 작동 방식에 머물러 있다. 기술은 늘었지만, 그 기술을 연결하고 작동하게 할 '운영 문법'이 부재한 상태다.
스마트양식의 본질은 장비 보급이 아니라, 데이터를 엮고, 해석하고, 결정에 연결하는 '운영체계'를 만드는 데 있다. 오늘날 스마트양식이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하는 이유는 기술 부족이 아니라, 기술간 소통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데이터가 단절된 상태에서는 아무리 정교한 장비도 산업의 혁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한국의 수산 디지털화는 그간 장비 도입에 집중돼 왔다. 그러나 기술이 '있다'고 해서 산업이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각 장비는 데이터를 쏟아내지만, 이 흐름은 하나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 운영자들은 여전히 수기로 기록하거나, 각자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에만 데이터를 저장할 뿐이다. 마치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는 기계들 사이에 통역기가 없는 셈이다.
스마트양식의 성공을 위해서는 기술의 '총합'보다, 기술 간의 '연결 구조'가 더 중요하다. 지금이야말로 '운영 설계'의 시점을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다음 세 가지가 그 핵심이다.
첫째, 장비-데이터-운영 간 흐름을 구성하는 '데이터 신경망'을 구축해야 한다. 농업은 이미 스마트팜 플랫폼을 통해 센서, 기기, 제어 시스템 간 데이터 흐름을 표준화해왔다. 수산업도 이제는 자체적 플랫폼 설계에 나서야 한다. 센서, CCTV, 자동화 장비 간 통신과 해석 체계를 갖춘 '수산형 데이터 인터페이스'가 필요하다. 장비 간 통신 규약이 제각각이고, 수집된 데이터의 형태나 단위조차 통일되지 않는 현실에서는 산업 전체의 디지털 전환은 요원하다.
이러한 데이터 신경망은 단순히 정보를 모으는 데 그치지 않고,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해석하고 활용하는 체계'로 발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표준화 작업과 함께, 민간 기술기업들과의 협업 생태계도 함께 구축되어야 한다. 일본과 노르웨이는 이미 이 방향으로 정책을 정비하고 있다.
둘째, 생산 현장에서 판단을 내리는 '운영 알고리즘'을 체계화해야 한다. 노르웨이의 양식장은 센서가 실시간으로 수온, 용존산소, 어류 행동 반응을 읽고, 인공지능(AI)이 이를 분석해 사료량을 조절한다. 폐사율이 줄고, 노동력도 절감된다. 이는 단순히 데이터를 수집하는 기술이 아니라, 데이터를 '결정의 언어'로 바꾸는 시스템이다.
한국은 아직도 많은 양식장이 개인의 직관과 경험에 의존하고 있다. 사료량 결정, 질병 대응, 출하 시점 같은 주요 판단이 데이터 기반이 아니라 수기 기록과 구두 판단에 의해 내려진다. 하지만 산업의 고도화는 '사람의 감'이 아니라 '데이터의 논리' 위에 세워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AI 기반 표준 운영 프로토콜과 상황별 대응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이를 어업인과 공유하는 교육 체계도 마련해야 한다. 스마트양식 기술은 단지 기계가 아니라, '판단의 구조'를 설계하는 일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셋째, 정부는 개별 기술이 아니라 '운영체계' 중심으로 정책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현재 스마트양식 관련 정책은 시범사업, 장비 보급, 단편적 연구개발(R&D) 중심이다. 그러나 이 방식으로는 산업화가 어렵다. 해역 조건, 어종 생리, 인력 역량을 통합하는 시스템 접근이 절실하다. 수산업의 스마트화는 단일 기술로 완성되지 않으며, 기술-사람-환경이 하나의 구조 안에서 통합적으로 작동해야 비로소 산업으로 진화한다.
정부는 이제부터라도 스마트양식 예산의 우선순위를 '장비 지원'에서 '운영 플랫폼 구축'으로 전환해야 한다. 민간 기술기업, 지자체, 어업인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생태계와 표준화된 플랫폼이 필요하다. 특히, 어업인의 데이터 활용 역량을 높이기 위한 디지털 훈련 프로그램과 인증 체계도 함께 설계돼야 한다.
기술을 퍼뜨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술이 '어떻게 쓰일 것인가'에 대한 구조적 해답이 없다면 산업은 제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다. 지금처럼 각각의 기술을 개별적으로 도입하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스마트양식이 산업 전체의 생산성과 지속가능성을 이끄는 핵심 수단이 되기 어렵다.
수산업의 디지털 전환은 데이터의 '양'이 아니라, 데이터를 어떻게 연결하고 해석하고 결정에 쓸 수 있느냐가 성패를 가른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장비가 아니라, 그 장비들이 같은 언어로 대화하고 협력하게 만드는 체계다. 산업은 연결될 때 비로소 작동한다.
스마트양식의 본질은 '장비 유무'가 아니라, 장비들이 서로 말하게 하는 '운영 설계'에 있다. 산업의 언어를 다시 짜는 이 작업이야말로, 한국 수산업의 경쟁력을 구조적으로 바꾸는 전환점이 될 것이다.
김태호 전남대 해양생산관리학과 교수·스마트수산양식연구센터장 kimth@j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