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은 자연과 떨어져 존재할 수 없다. 숲과 바다, 강과 들판은 단순히 경관이 아니라, 인간의 삶과 미래를 지탱하는 터전이다. 그러나 인간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자연은 조심스레 신호를 보낸다. 때로는 끊어진 생태계로, 때로는 위협받는 생명으로, 때로는 예기치 못한 사고로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다.
국립공원 역시 다양한 위기를 맞고 있다.
해양과 육지에서는 멸종위기종 등 야생생물의 서식지가 위협받고 있으며, 예상치 못한 재난·안전사고 역시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또, 탐방객이 만든 샛길로 인해 생태계 단절과 건전한 탐방문화가 저해되고 있다.
사람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자연은 고요히 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직원 한명이 관리하는 국립공원 면적은 축구장 357배에 해당하는 약 2.55㎢에 달하다 보니 적절하게 응답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국립공원의 자연과 사람 모두를 지키기 위해 과학적 공원관리라는 새로운 답을 찾고자 한다.
국립공원공단은 기술로 그 생명의 흔적을 기록하고 지키고 있다. 2023년부터 포스코DX와 협력해 인공지능(AI) 기반 로드킬 예방 시스템(2개소)을 도입해 운영 중이다. 도로를 건너는 야생동물을 AI가 인식하고 사전에 차량 이용자가 알 수 있도록 표출해 주는 시스템으로, 도입 후 로드킬 및 차량사고가 없는 등 큰 효과가 입증됐다.
또 시스템을 운영하며 AI가 학습하고 수집한 685건의 야생동물 데이터베이스(DB)를 통해 향후 자연자원 조사, 동식물 동정 등 다양한 조사업무 분야에 활용할 수 있는 성과도 있었다. 다만, AI의 동물 탐지 정확도는 98.53%로 매우 높으나 종 판별 인식율은 낮은 수준으로 향후 보완할 과제다.
올해는 해양까지 범위를 넓혀 AI를 활용한 해양 생물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한다. 멸종위기종인 상괭이 생육 모니터링 및 서식지가 단절된 육지 서식 게류(도둑게)의 로드킬 방지를 위해 AI 기술이 활용된다. 이번 사업도 포스코DX와 포스코스틸리온과 함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협력을 통해 추진되며, 민간과 공공이 함께 생명을 위한 연결고리를 강화해 나가는 모범 사례가 될 것이다.
한편 탐방객 안전과 재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AI의 힘이 절실하다. 물놀이 위험지역과 계곡, 해수욕장에 지능형 폐쇄회로텔레비전(CCTV) 87개를 설치해 실시간으로 탐방객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필요한 경우 즉각 경보를 송출하고 있다. 이러한 체계 덕분에 해당 지역에서 익사 사고를 '제로(0)'로 유지할 수 있었다.
산불 재난 예방에도 AI를 활용하고 있다. 설악산 등 5개 공원에 연기감지 AI CCTV를 5대 도입했고, 올해 추경 예산을 통해 22대(11억원)가 추가 설치될 예정으로 보다 신속하고 정확한 초기 대응이 가능해졌다.
무분별하게 만들어진 샛길도 과학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국내 대표 정보통신기술(ICT)기업의 위치기반 빅데이터를 활용해 설악산과 북한산에서 80여개의 신규 샛길을 발견했고, 이를 바탕으로 현장관리 실효성을 47% 끌어올릴 수 있었다.
이러한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탐방객이 국립공원을 보다 안전하고 쾌적하게 이용할 수 있다. 또 샛길 이용으로 인한 사고 위험과 자연 훼손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준다. 체계적이고 질서 있는 탐방 환경이 마련돼 이용 만족도를 높일 수 있으며, 국립공원의 자연생태계를 함께 지켜가는 데 동참하는 경험이 될 수 있다. 앞으로 지리산과 속리산, 덕유산, 오대산 등 전국 주요 국립공원으로 이 분석 대상을 점차 넓혀 나갈 예정이다.
국립공원의 숲과 바다는 말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데이터로 그 속삭임을 들을 수 있으며, AI로 그 흐름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공단은 AI를 도입하고 빅데이터를 분석해 공원관리의 효율성을 높여 나가고 있다. 기술은 이제 자연을 통제하는 수단이 아니라, 자연과 다시 연결시켜주는 다리가 되어가고 있다. 탐방의 문화를 바꾸고, 자연을 이해하며, 사람과 생명을 지키기 위한 기술로 국립공원이라는 공동의 유산을 함께 지켜나가겠다.
기술로 생명을 보호하고, 기술로 사람을 지키고, 기술로 옳은 길을 안내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국민과 함께 만들어가고 싶은 국립공원의 미래다.
주대영 국립공원공단 이사장
〈필자〉경기 포천 출신으로 서울대 농화학과를 졸업한 뒤 1992년 기술고시(28회)를 거쳐 공직에 입문했고, 이후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 데이비스 캠퍼스(UC Davis)에서 환경화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환경부 감사관, 국립환경인재개발원장, 기획조정실 정책기획관, 대구지방환경청장, 대변인, 2050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사무처 사무차장 등 환경 분야 핵심 업무를 맡아왔으며, 2025년 제16대 국립공원공단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취임 이후 보호지역 확대와 보전·관리 역량을 강화 하는데 중점을 두고, 탄소중립 선도기관으로써 변화하는 환경에 적극 대응해 지속가능한 국립공원 조성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