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의 재발견, 새로 쓰는 완주문화관광지도] 만경강 지킴이에서 문화콘텐츠 개발자로

2024-10-28

인생의 이정표가 된 문화해설사

 해외 발령을 받은 남편 따라 해외생활을 했다. 돌아올 무렵 한국에서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이었다. 우연히 아리랑TV에서 문화유산해설사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보고 바로 이거다 싶었다. 그렇게 손안나 로컬콘텐츠연구소 대표의 제2의 인생은 ‘문화’라는 이름과 함께 시작되었다.

 한국에 돌아와 궁궐로, 숲으로, 현충원으로 문화와 관련한 일을 즐기다 보니 문화야말로 진짜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한 문화를 소개하는 것이 아닌 문화를 어떻게 풀어갈까를 고민하다 보니 주변에서 ‘문화기획자’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사람들과 문화 이야기를 나누고 답사를 다니는 일은 항상 즐겁고 새로웠다. 무기력했던 삶에서 벗어나 사는 재미가 쏠쏠했다.

 위기는 코로나와 함께 왔다. 코로나가 절정일 때는 사람들 사이에 왕래만이 아니라 단체 활동 자체가 불가능했다. 문화 관련 활동이 전국적으로 중단되었다. 그때 고향 전북에서는 길이 보였다. 그동안 서울과 전북을 오가면서 강의를 했던 게 큰 덕을 보았다. 이후 남편이 해외로 발령을 받으면서 갑작스럽게 우울증이 몰려왔다.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다가오는 바람에 마음이 산산이 부서지는 느낌이었다. 손 대표에게는 절대적인 탈출구가 필요했다. 그렇게 만난 게 만경강이었다.  

내 인생에 만경강이 들어왔다

 2017년 ‘만경강 아카데미’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만경강을 걸으며 그곳의 매력을 조금씩 알아갔다. 이후 ‘만경강 사랑지킴이’를 만들고 몇 년 동안 만경강을 샅샅이 훑었다. 사람들이 만경강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데 대한 서운함도 있었지만 이 매력을 혼자만 보기에 아깝다는 생각도 컸기 때문이다.

 그렇게 뜻이 맞는 사람들과 만경강 구석구석을 돌아보면서 많이 배우고 성장했다. 이 과정에서 걷기 좋은 만경강 8코스를 발굴한 것은 작은 기쁨이었다. 손 대표가 만경강을 걸으면서 가장 컸던 즐거움은 지역민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발굴하고, 그들과 소통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던 사람들도 함께 걸으면서 만경강의 생태, 역사, 자연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보여주었다. 얼마 전부터 손 대표는 완주에 처음 부임한 교사들에게 완주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전파하는 전도사가 되었다. 자연스럽게 ‘완주를 걷다. 골목을 걷다’라는 책도 내게 되었다.

 완주의 멋스러움에 눈을 뜬 이들은 손 대표를 학교 현장으로 불렀다. 그렇게 아이들과 어른들이 어우러지는 진짜 만경강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이렇게 쌓인 이야기들은 완주군내 각 읍면의 대표적 마을을 소개하는 ‘나무가 들려주는 마을 이야기’라는 책으로 나왔다. 덕분에 완주의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더 많은 만경강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었다.  

전북의 8개 빛깔을 만들다

 2020년 손 대표는 생생문화재활용사업에 선정되어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몇 개를 돌렸다. 사람들과 임진왜란과 동학농민전쟁의 격전지였던 웅치와 이치를 돌아보면서 역사가 과거가 아니라 현재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꼈다. 완주 하리교에서부터 비비정 열차카페까지 걷는 구간은 매회차마다 사람들의 신청이 순식간에 마감될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완주한 사람들과 노을을 보면서 뒤풀이를 즐기는 것도 이 프로그램만의 특별한 재미였다. 이후에도 손 대표는 만경강을 찾는 사람들에게 그 매력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지속적으로 제공했다.

 올해 손 대표는 사람들의 반응이 뜨거웠던 파일럿 프로그램을 8개나 진행했다. 특히 외국인을 대상으로 했던 팸투어와 K-컬쳐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평소 남들이 다니는 흔한 관광지 대신 로컬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토속적이고 한국적인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한국 음식 체험, 한지 뜨기 등에 대해 참가자들의 기대 이상의 호응이 이어졌다.

 지역의 토산물과 자원만으로도 충분히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세계화가 가능하다는 걸 확인했던 순간이었다. 올해는 로컬콘텐츠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손 대표로서는 외형이나 내실면에서 한 단계 더 성장했던 한 해였다. 군산, 김제, 부안을 수시로 넘나들면서 새로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로컬을 배경으로 한 관광상품의 가능성을 확인했던 건 보이지 않는 수확이었다.

 여행작가 대상의 어청도 기행과 교육자 대상의 관광도 뜨거운 호응과 찬사를 받았던 프로그램이다. 사람들이 지역의 아름다움에 찬사를 보내고, 지역의 맛에 감탄을 자아낼 때 손 대표는 기획자이자 실천가로서 뿌듯함을 맛볼 수 있었다. 그녀에게 올해는 뜻을 같이 하는 크루들과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지역 관광의 가능성을 재확인했던 한 해였다.  

더 그리워지는 것들과의 만남

 최근 몇 년 동안은 손 대표는 새로운 관광상품을 개발하고 실천하느라 정신없이 보낼 수밖에 없었다. 지역에서 기획자는 고달프다. 심지어는 본격적인 프로그램 진행에 앞서 사전 답사비조차 챙길 수 없는 게 우리 현실이다. 다른 분야에서는 이미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열정 페이라는 말이 우리 문화계에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래도 문화 불모지라 할 수 있는 지역에서 완주 DMO처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기관이 있다는 건 반가운 사실이다. 그동안 완주 DMO에서 지속적으로 추진했던 선진지 견학이 손 대표에게 영감을 불어넣고 새로운 프로그램 개발에 자극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역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업체들과 협력체제를 구축하고 실력을 갖추는 일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손 대표는 자신의 문화 활동의 원동력과 자산이 만경강이라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만경강은 ‘치유’라는 이름과 동일한 의미를 지니며, 또한 끊임없는 창작의 모티브이기도 하다. 그 자신이 실제로 만경강을 걸으면서 우울증을 치유할 수 있었고, 함께 했던 많은 이들이 힐링 받고 다시 살아나는 것을 눈앞에서 목격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손 대표는 사람들에게 만경강도 좀 더 알리고 싶고, 그동안 뜨거운 호응을 얻었던 프로그램을 좀 더 다양화하고 싶은 바람도 있다. 최근에 다녀왔던 <수류금산순례> 길도 더 다듬어서 한국의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만들고 싶은 마음도 간절하다. 지역에 이렇게 풍부한 역사를 안고 있는 소중한 문화 자산이 사람들의 관심권 밖으로 사라진다는 사실이 안타깝기 때문이다. 그녀가 지역에 관심을 갖고 지역 살리기에 진심인 이유이기도 하다.

 문화는 거저 오지 않는다.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손길과 수고로움, 그리고 지속적인 관심과 실천이 곁들여져야 비로소 문화는 우리에게 온다. 이 가을에는 우리 지역의 아름다움에 관심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지역의 숨겨진 매력을 발견해나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고 지역과 더불어 어떻게 살아갈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또한 지역민으로서 나답게 사는 첫걸음일 수 있다.

 장창영 시인

저작권자 © 전북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