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갑부 머스크가 트럼프의 오른팔이 되면서 자신을 규제하려는 EU와 격전을 벌일 듯하다.
EU는 2년 전부터 디지털서비스법(DSA)을 시행 중이다. 머스크의 X와 같은 초대형 온라인플랫폼은 이용자에게 해로운 콘텐트를 삭제하고 거짓정보 확산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의무가 있다. EU 차원의 경쟁정책을 담당하는 집행위원회는 작년 말부터 X가 이런 의무를 위반한 혐의가 있다며 조사를 시작했다.
머스크는 이번 미국 대선 중에 “민주당이 불법 투표를 위해 이민자들을 미국으로 데리고 오고 있다”는 식의 허위사실 수천 건을 온라인에 게재했다. 2억명이 넘는 팔로워를 거느린 그의 글은 급속하게 퍼졌다. 비판이 일자 머스크는 언론의 자유라 맞받아쳤다.
X뿐만이 아니다. EU는 지난해 5월 발효된 디지털시장법(DMA)에 따라 미국 애플·구글·메타에 대한 조사도 개시했다. 이들이 공정경쟁을 저해했다는 혐의다. 디지털서비스법과 시장법은 미국을 겨냥해 만들었다는 의심을 받아왔다. 이전에도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은 EU에 거액의 벌금을 납부했다. 구글의 경우 경쟁자를 저해하는 검색 결과 조작이 적발돼 시정을 요구받았다. 미국 내보다 EU에서 미국의 빅테크 기업 규제가 더 빈번했다. 그때마다 미국 행정부는 ‘유럽의 규제가 빅테크 경쟁력을 저해한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발표했다.
이번에는 상황이 매우 다르다. 돈과 권력을 손에 쥔 머스크가 EU의 규제에 강력하게 반발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도 과거와 다르게 이 규제를 두고 EU와 확전도 벌일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는 2020년 대통령에서 물러난 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미국에 쏟아져 들어오는 독일 자동차를 막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이제 대미 교역에서 큰 흑자를 기록 중인 독일과 EU를 대상으로 2기 집권 초기에 관세의 칼을 거세게 휘두를 것이다. 관세분쟁의 와중에 빅테크 규제 전쟁도 발발할 확률이 높다.
EU와 미국은 디지털 기술에 대한 시각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미국은 빅테크의 기술혁신을 우선시하고 사용자 권리를 소비자 관점에서 본다. 이용자들이 불편을 느끼면 개인적으로 해결하는 식이다. 반면에 EU는 인권으로 규정한다. 디지털 시대의 원유인 개인의 자료를 거대 기업이 악용할 수 있기에 이를 규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X나 메타와 같은 거대 온라인 플랫폼은 응당 인권을 중시해야 하고 이 범위 안에서 언론의 자유도 행사돼야 한다는 게 유럽의 시각이다.
이처럼 디지털 기술을 둘러싼 근본적인 시각 차이는 쉽게 해소될 수 없다. 미국과 유럽 간의 디지털 분쟁이 지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이유다.
안병억 대구대 교수(국제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