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박지혜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청사에서 제26회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 SNS. 재판매 및 DB 금지) 2025.6.20/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박지혜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막판까지 고심한 끝에 오는 24~25일(현지시간) 네덜란드에서 열리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에 직접 참석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 대통령의 결정에 영향을 준 가장 큰 요인은 최근 중동 지정학적 리스크 고조에 따른 '경제 문제'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 대통령이 23일 취임 후 처음으로 주재할 수석·보좌관 회의에서도 이 문제를 집중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22일 오후 서면브리핑을 통해 "대통령은 취임 이후의 산적한 국정 현안에도 불구하고 이번 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최대한 적극적으로 검토해 왔다"면서도 "여러 가지 국내 현안과 중동 사태로 인한 불확실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도저히 직접 참석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날 복수의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에 따르면 경제 문제가 이 대통령 최종 판단의 핵심 요인이었다. 한 관계자는 "중동 리스크가 커지면 유가가 급등하고 환율도 치솟을 수 있는데 이에 대한 지휘가 필요하지 않겠나"라며 "(이런 가운데 대통령이 국내를 비우고) 해외에 나간다는 것 자체가 부담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여러 의견을 들어 나토 회의에는 최대한 참석하려 했고 그에 맞춰서 실무 준비를 해왔던 게 맞다"면서도 "그 사이 상황이 급변했고 국내 경제 문제를 외면하고 해외를 나가는 게 국익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실익이 적다는 판단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초만 하더라도 정상 외교에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 등을 들어 나토 정상회의 참석에 신중한 입장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국내 정권이 교체됐더라도 한미 관계가 여전히 공고하다는 신호를 국제사회에 주고 지난해 비상계엄 선포 사태 이후 멈췄던 정상외교를 빠르게 복구하기 위해서라도 나토 회의에 참석해야 한다는 주장에 점차 힘이 실렸다.

[캘거리=뉴시스] 최진석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16일(현지 시간)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캐나다 앨버타주 캘거리로 향하는 공군 1호기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 2025.06.17. [email protected] /사진=
이 대통령 스스로도 지난 16~17일(현지시간) 캐나다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차 출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기자들과 만나 취임 후 짧은 시간 안에 정상외교를 준비하는데 무리가 있다는 고충을 털어놓으면서도 "통상 국가인 대한민국이 국제 관계를 잘 발전시켜야 우리 기업들의 해외 진출도 더 원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어서 정상외교를 더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G7 정상회의 이후 있을 나토 회의에도 이 대통령 참석 가능성을 높이는 발언으로 해석됐다.
이런 상황에서 이 대통령이 출장을 불과 1~2일 앞둔 22일 늦은 오후, 나토 회의 불참을 전격 결정하게 된 데에는 최근 불안정하게 급변한 중동 정세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 21일(현지시간) 포르도, 나탄즈, 이스파한 등 이란의 핵시설 3곳을 정밀 타격했다. 미국이 이란 본토를 공격한 건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처음이다. 당장 이란이 보복을 예고하면서 전세계가 확전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대통령이 단 하루라도 국내를 비운다는 것 자체가 부담일 수 있다.

(서울=뉴스1) 박지혜 기자 = 대통령실은 20일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9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청사에서 참모진과 회의 하는 모습을 SNS에 공개했다. (이재명 대통령 SNS. 재판매 및 DB 금지) 2025.6.20/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박지혜 기자
중동에서의 충돌 격화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건 유가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수 있어서다. 호르무즈 해협은 이란 남쪽에 위치하며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연결한다. 전세계 원유 수송량의 약 20%가 이 곳을 통과하고 한국으로 들어오는 원유는 약 70%가 이곳을 통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 위기에 놓일 때마다 국제유가는 치솟았고 이는 다시 우리나라 물류비, 환율 급등으로 이어져 민생고의 원인이 됐다.
코스피 지수가 3년6개월 만에 3000선을 넘기며 잠시나마 온기가 돌았던 국내 증시도 다시 급랭할 수 있다. 유가가 급등하면 소비가 위축될 수 있고 이는 다시 실물 경제 성장률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자리를 지키며 국내 경제 현안을 면밀 주시해야 한다는 이유 외에도 이런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이 대통령이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해 특정 메시지를 내기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의 통화에서 "이 대통령이 나토에 간다고 하더라도 가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가 굉장히 애매한 상황"이라며 "아마도 트럼프 대통령은 나토에서 공동성명 등을 통해 이란을 강하게 압박하려고 할텐데 한국이나 일본은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시 석유 수입에 굉장히 큰 타격을 받기 때문에 거기에 무턱대고 동조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상황이 너무 심각하고 어려워졌다"고 진단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나토 회의에 정상적으로 참석할지 여부가 불투명하단 점도 변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6~17일(현지시간) 캐나다에서 열린 G7(주요 7개국) 정상회의 중 이란과 이스라엘 간 무력 충돌 격화를 이유로 조기귀국한 바 있다. 이에 캐나다에서의 첫 한미 정상회담은 무산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나토 회의 참석은 예정돼 있긴하나 FT(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 19일 "나토 정상회의는 2시간30분짜리 실무회의로 축소될 예정"이라며 "나토 측은 트럼프 대통령이 G7 정상회의 때처럼 예정보다 빨리 회의장을 벗어나는 것을 막고자 (회의) 일정을 축소하기로 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서울=뉴시스] 최진석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22일 한남동 관저에서 열린 여야 지도부와 오찬에서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발언을 듣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2025.06.22. [email protected] /사진=최진석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더300에 "트럼프 대통령이 나토에 참석을 할지 안할지, 혹은 오더라도 얼마나 길게 있을지가 모두 불확실한 상황"이라며 "짧게 머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더 고민을 하는 것 같다. 국내에선 트럼프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을 기대하는 시각이 굉장히 많은데 이게 두번이나 무산이 되면 이재명 정부의 외교력에 대한 의문이 생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대통령실은 나토에 이 대통령이 불참하는 대신 정부 인사를 대신 참석시키는 방안을 고려중이다. 강 대변인은 "정부 인사의 대참 문제는 나토 측과 협의할 예정"이라고 했다.
한편 이 대통령은 23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취임 후 첫 대통령 주재 수석·보좌관 회의를 연다. 이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도 참모진과 중동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국내 영향을 점검하는 한편 대응 방안을 집중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22일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긴급 안보·경제상황점검회의를 주재해 현황을 파악하는 한편 한반도 안보·경제 영향이 최소화되도록 관계부처에 소통과 협업을 당부했다. 또 우리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게 우선임을 강조하면서 향후 관계 당국과 추가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