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권을 말하는 자리는 대개 소란스럽다. 침묵이 문제일 때도 있지만, 말이 넘쳐 본질을 가릴 때도 있다. 지난 10일, 제77회 인권의날 기념식이 열린 그날, 나는 이 소란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국가인권위원회 바로잡기 운동본부 회원들이 안창호 인권위원장의 행사장 입장을 막아섰다. 계엄 사태 앞에서 인권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안 위원장은 취임 이전부터 차별금지법 제정과 성소수자 인권 문제에 대해 일관되게 보수적인 견해를 밝혀왔다. 인권의 가치를 훼손해왔다고 여겨지는 인물이 인권상을 수여하는 장면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분노가 낯설지 않다.
그러나 질문은 남는다. 상을 거부할 권리는 누구의 것인가. 그것은 수상자의 선택이다. 다른 사람들이 시상식을 막을 권리는 없다. 항의와 표현은 민주주의의 권리지만, 봉쇄와 저지는 또 다른 인권침해다. 인권을 말하는 방식이 인권을 훼손하는 순간, 명분은 흔들린다.
곧이어 맞불 집회가 이어졌다. 안 위원장 지지자들이 마이크를 들었다. 고성 위에 고성이 쌓였고, 행사 진행은 거듭 미뤄졌다. 안 위원장이 진입을 시도할 때마다 이들은 주변을 에워싸고 상대편을 밀어냈다. 안 위원장이 자리를 뜨면 다시 자리를 잡고, 스피커의 출력을 높였다. 지지자들은 안 위원장을 치켜세우며 윤석열 전 대통령의 인권에 대해 말했다.
충격은 반동을 부르고, 반동은 다시 더 큰 소음을 낳는다. 인권의날은 그렇게 소리의 전쟁터가 됐다. 지난 인권의날은 하나의 역설로 내게 남겨졌다. 인권을 둘러싼 논쟁이, 가장 인권답지 않은 방식으로 펼쳐졌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