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수폐전견(隨吠前犬)과 이탁오(李卓吾)

2025-05-20

‘나는 어려서부터 공자의 가르침이 담긴 책을 읽었으나, 그 가르침을 온전히 이해하진 못했다. 공자를 존경했지만 왜 존경할 만한 인물인지 몰랐다. 왜소증(dwarfism) 환자가 겨우 사람들 가랑이 높이에서 공연을 보다가,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말하면 덩달아 반응하는 경우와 같았다. 50세 이전까지 난 진짜 한 마리 개에 불과했다. 앞에 있는 개가 짖으면 나도 따라 짖었다. 그리고 간혹 누군가 나에게 짖는 이유를 물으면, 언어장애인처럼 어색한 웃음으로 상황을 모면하곤 했다.’

이번 사자성어는 수폐전견(隨吠前犬. 따를 수, 짖을 폐, 앞 전, 개 견)이다. 앞 두 글자 ‘수폐’는 ‘따라 짖는다’란 뜻이다. ‘전견’은 ‘앞의 개, 또는 먼저 짖는 개’다. 이 둘이 합쳐져 ‘개들이 먼저 짖는 개를 따라 짖는다’라는 의미가 만들어진다. 영문도 모르고 남을 따라하는 경우를 비웃을 때 주로 사용된다.

‘수폐전견’은 명나라 사상가 이탁오(李卓吾. 1527~1602)가 50대 중반에 자신의 지난 인생을 되돌아보며 반성한 앞의 글에서 유래했다.

유교 지식인 계층의 위선을 하나하나 날카롭게 지적한 것으로 유명한 이탁오는 푸젠(福建)성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이지(李贄)고, 탁오는 그의 호(號)다. 어려서 모친과 사별했고, 서당에서 글을 가르치던 부친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다. 조숙하여, 공자(孔子)가 농민을 ‘소인(小人)’이라고 발언한 것에 대해 비판하는 글을 12세에 짓기도 했다.

사색을 즐겼으나 과거시험을 위한 고리타분한 학업도 결코 소홀하지 않았다. 26세에 향시(鄕試)에 합격하고 거인(擧人)이 됐다. 이어 30세부터 54세까지 순탄하게 관료 생활을 했다.

이탁오의 ‘인생 2막’은 우연이나 수동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는 55세에 갑자기 관료 생활을 그만두고 자신의 인생을 철저하게 성찰하기 시작한다. 이 성찰의 결과, 그는 자신의 관료 인생이 ‘수폐전견’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 그는 가족을 고향으로 보내고 후베이(湖北)성 소재의 지불원(芝佛院)에 홀로 머문다. 생각을 더욱 다듬어 본격적으로 저술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서였다.

이 시기에 쓰여진 그의 저서 가운데 ‘분서(焚書)’가 꽤 유명하다. 그가 굳이 ‘이 책을 불태워라’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결정한 이유는 복잡하지 않다. 책의 내용 가운데 많은 분량이 동시대 유교 지식인들의 반(反)지성적 사고와 행실을 신랄하게 폭로하고 꾸짖고 개탄하는 내용이다. 만약 그들이 자신의 책을 읽게 되면 크게 분노하여 죽이려 들 것으로 그는 염려했다.

61세에 그는 삭발했다. 외모로만 살펴보면 틀림없는 스님이었다. 머리를 삭발한 후 그는 더욱 사색과 저술에 몰두하여, 약 10년에 걸쳐 ‘속분서(續焚書)’, ‘장서(藏書)’, ‘속장서(續藏書)’ 등 시대를 앞선 탁월한 저서를 완성한다. ‘장서’는 사마천의 ‘사기(史記)’ 못지않은 대작이다. 역사 속 여러 인물들에 대한 이탁오의 이런저런 평가도 빼곡히 담겨있다.

그는 왕양명(王陽明. 1472~1529)이 창시한 ‘양명학’ 계보의 지식인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의 사상은 과거제(科擧制)의 폐해를 지적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맹자, 심지어 공자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조차 이탁오의 비판에서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지금 기준으론 보편적인 상식이지만, 당시 기준으론 이단아였다. 옥에 갇혔다가, 옥중에서 자결했다. 그의 나이 75세 때의 일이다.

그는 문학 이론 분야에선 ‘동심설(童心說)’을 주장했다. 특히 글을 쓸 때, ‘진심(眞心)’을 드러내어 써야 하고 마음에 없는 내용을 적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가 말하는 ‘진심’은 어린아이의 때 묻지 않은, 그런 청정한 본래 마음이다.

최근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불특정 다수의 생각을 마치 자신의 고유한 생각인 것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혹시 ‘수폐전견’을 떠올리면 이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임시방편은 될 수도 있겠다. 최선책은 아무래도 인문학을 가까이하며 수시로 성찰하는 방식이 아닐까 싶다. 습관이 되면, 체계적으로 오류를 치유해주는 든든한 상비약이 될 수 있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