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 이수현씨 모친 신윤찬씨 “과거 집착 말라던 수현이 말처럼… 한·일, 과거 기억하되 서로 양보·상생 발전하는 관계로 나아가야” [창간36-국교정상화 60년, 이 시대의 한·일 가교]

2025-02-02

2001년 일본 유학중이던 아들

선로 떨어진 일본인 구하다 숨져

모친, 매년 아들 기일에 日 찾아

韓서 잊힌 아들, 日선 매해 기억

개인주의 강한 日서 타인 돕고

가두모금 등 선한 영향력 확장

장학회 만들어 유학생들 도와

타국인도 지원… 총1000명 넘어

2024년 日 정부로부터 훈장 받아

일본 유학 중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아름다운 청년’ 고(故) 이수현씨(1974∼2001) 모친 신윤찬(75)씨는 24년 전 참척(慘慽: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는 일)의 고통을 겪었음에도 담담한 표정이었다. 매년 1월26일 아들 기일에 일본을 찾는다는 신씨는 올해도 현장을 찾아 눈물을 훔쳤다.

그는 최근 세계일보와 만나 “저에게 수현이는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아들”이라며 “지금이라도 수현이를 살릴 수 있다면 제 목숨과 바꿔서라도 살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옛말에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는데, 그렇게 큰일을 한 아들을 어떻게 제 조그만 가슴에 묻을 수가 있겠냐”고 뿌듯해했다.

신씨는 “(수현이는) 이미 한·일 양국의 우호와 교류의 상징처럼 돼버렸다”고 평가했다. 올해 광복 80주년, 한·일 수교 60년을 맞은 가운데 한·일 양국 간 민간 차원 교류협력의 상징이 된 자식에 대한 대견함이 잔뜩 묻어났다.

고 이수현씨는 부산에서 태어나 대학까지 다닌 뒤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일본 유학생활 1년 즈음 통학길 지하철에서 선로에 떨어진 현지인 생명을 구하기 위해 과감하게 몸을 던졌다. 신씨는 아들이 생전에 “일본이라는 나라가 생각보다 크고, 배울 게 많은 나라”라며 “한·일 양국이 과거에 너무 집착하면 똑같이 손해를 볼 것 같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전했다.

그런 말을 하는 아들에게 신씨는 마음 한쪽에 불편함이 컸다고 토로했다. 수현씨 친·외할아버지 모두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돼 일본으로 끌려가 고생했던 경험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수현이 사망 이후 일본을 왕래하면서 ‘왜 아들이 일본을 좋아했는지’를 알게 됐다”고 털어놨다. 신씨는 “수현이와 제가 성격상 남에게 피해 주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 또 얼렁뚱땅 일하는 것보다 정확한 것을 좋아하다 보니 일본인들의 준법정신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개인주의가 강한 일본인들은 2001년 이수현씨 희생 이후 위험에 처한 사람들 목숨을 구하기 시작했다. 특히 ‘가깝고도 먼 나라’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인식이 호의적으로 바뀌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반세기 전 일본에서 회자했던 ‘의인’ 이수현씨 희생을 기억하고 있는 한국인은 드물다. 하지만 일본에선 해마다 ‘의인’ 이수현을 떠올리고 그의 희생정신을 기리는 행사가 열리고 있다. 어머니 신씨는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간섭하지 않으려는 것이 일본인들의 특성인데, 수현이를 기억하기 위해 책을 펴내고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것을 보고 개인적인 일로 끝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연말이나 큰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성금모금운동을 벌이는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모금운동 자체가 없다고 한다. 신씨는 “수현이 희생 이후 일본에서 가두모금운동이 벌어지고, 일반 시민들이 매월 일정 금액의 돈을 기부하는 게 하나의 루틴이 됐다고 한다”고 전했다.

신씨는 아들의 비명횡사 직후 장학회(현 LSH아시아장학회)를 만들었다. 그는 “수현이가 생전 하고 싶었던 것을 다 못하고 고생만 하다가 갔다는 생각에 다른 유학생들을 지원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수현장학회를 만들어 일본에서 공부하는 유학생들에게 ‘이수현 정신’을 심어주고, 한·일 양국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하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이다. 신씨는 “처음에는 한국인 유학생에게만 장학금을 지급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동남아시아 유학생들에게까지 지원 대상을 넓혔다”며 “지금까지 이수현 장학금을 받은 유학생이 1000명을 넘었다”고 자랑했다.

신씨는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말 일본 정부로부터 훈장(욱일쌍광장)을 받았다. 그는 “2015년 남편이 일본 정부로부터 (처음) 훈장을 받았다”며 “당시 우리 부부에게 훈장을 준 것이라고 생각해 (이번에 연락이 왔을 때) 몇 차례 고사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지난해 의인 이수현씨 어머니에게 훈장을 수여하겠다고 발표했다. 신씨는 “일본 정부가 먼저 발표를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훈장을 받게 됐다”고 민망해했다. 신씨는 “이번 훈장은 LSH아시아장학회 명예회장이자 한·일 양국이 더 가까워지고 서로를 이해하는 데 다리 역할을 하는 민간 부문에 대한 격려 차원이라고 이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들과 같은 또래의 젊은 부부가 아이 손을 잡고 산책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아들이 너무 보고 싶다는 신씨. 그는 “주책맞게 ‘우리 수현이도 살아 애를 낳았다면 저만한 아들이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며 “아들이 아이를 낳았다면 지금쯤 손자가 대학생이 되었을 것”이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신씨는 남은 생까지 한·일 교류협력 활동을 계속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그는 “(올해) 특별한 계획이 있지는 않다”며 “하지만 건강이 허락하는 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한·일 문화교류 행사 관련 일들을 계속 해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신씨는 “올해 광복 80주년인데 과거를 잊지 말고 기억하되 양국 서로가 조금씩 양보하면 후대에게 더 좋은 세상을 물려줄 수 있을 것”이라며 “한국과 일본이 과거의 앙금을 씻고 상생 발전하는 관계로 나아갔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나타냈다.

부산=글·사진 오성택 기자 fivesta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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