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12·3 비상계엄’ 개입 논란과 관련,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측이 “적법한 절차에 따른 자문”이라고 주장한 데 국방부가 정면 반박에 나섰다. 김 전 장관 측이 적법성의 근거로 든 군무회의에 민간인인 노 전 사령관이 참석한 적도 없고, 참석할 수도 없다는 게 국방부의 설명이다.
“궁지에 몰리니 군무회의로 둘러대”…김용현 측 주장에 싸늘한 국방부 여론
국방부 관계자는 27일 중앙일보에 “김 전 장관 측이 노 전 사령관의 개입을 정당화하기 위해 느닷없이 군무회의를 꺼내들었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얘기”라고 말했다. 김 전 장관의 변호인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국방부 장관은 법에 의해 외부인의 자문을 구할 수 있다”며 “특히 외부인을 포함한 군무회의를 조직하는 게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12·3 비상계엄의 비선 설계자로 지목된 노 전 사령관으로부터 군무회의라는 적법한 틀 안에서 자문을 구했다는 취지다.
하지만 복수의 국방부 관계자들 얘기는 다르다. 군무회의에 직접 관여하는 한 관계자는 “노 전 사령관의 군무회의 참석은 금시초문”이라며 “군무회의의 구조를 보면 알겠지만 민간인이 참석할 성격의 회의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실제 국방부 직제 규정에 따르면 군무회의는 국방부 장관이 의장을 맡고 차관, 합참의장, 각 군 참모총장, 주요 실장 등이 구성원을 이룬다. 심의안건에 따라 외부인이 참석하기도 하지만 국방정책심의회운영 훈령은 한국국방연구원(KIDA), 국방과학연구소(ADD)의 전문 연구요원 또는 방위사업청, 병무청의 관련 국장으로 범위를 제한하고 있다.
이 중 어디에도 노 전 사령관 같은 민간인이 끼어들 여지가 사실상 없는 셈이다. 이 관계자는 “국방부 내 민간 자문위원을 굳이 꼽자면 국방정책 자문위원 정도가 가능하다”며 “김 전 장관 측이 노 전 사령관 건으로 궁지에 몰리니 군무회의로 둘러대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김용현 시절 군무회의 딱 한 차례…노상원 듣도 보도 못했다
김 전 장관 측이 노 전 사령관으로부터 자문받았다는 사안을 놓고서도 상식적이지 않다는 시각이 상당하다. 김 전 장관 측 변호인은 정보사 블랙요원 명단 유출 사태를 수습하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서버 업무에 해외 세력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규명하는 데 노 전 사령관의 자문이 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통상 군무회의에서 다루는 성격의 안건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예산 또는 국방중기계획 등 국방정책과 관련된 분야에서 성숙된 안건들이 군무회의에 올라온다”며 “정보사 인원의 비위, 선관위 서버 해킹이 국방정책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같은 국방부의 설명은 기록으로도 뒷받침된다. 김 전 장관 재임 시절 군무회의가 개최된 건 지난 11월 6일 한 차례에 불과했고 안건은 국방중기계획이었다.
‘선관위 가상 서버 제출’, ‘정보사 계엄 관여 정당화’ 주장에도 허점
선관위가 국가정보원의 보안시스템 점검을 거부하고 가상의 서버만을 제출했다는 김 전 장관 측 주장도 따져볼 대목이다. 이에 대해 선관위는 “국정원에 가상의 서버만을 제출했다는 김 전 장관 측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보안 컨설팅을 수행한 최고의 보안 전문가들이 실제 서버와 가상의 서버를 구분하지 못했다는 주장과 다름없다”고 즉각 반박했다.
앞서 국정원은 지난해 10월 선관위 사이버 보안관리에 대한 합동 점검에서 전체 IT 장비 6400여대 중 무작위로 317대(5%)를 뽑아 살펴본 적이 있다. 그 결과 가상 해커가 전산망에 침투해 유령 유권자를 등록하는 데 성공하는 등 다수의 해킹 취약점이 발견돼 선관위에 개선 조치를 권고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당시 “해커의 관점에서 침투가 되는지를 확인해봤다”며 “실제 (선거) 조작이 있었는지는 점검 대상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에서 김 전 장관 측이 계엄시 사실상 통상 임무가 없는 정보사를 투입해 ‘2수사단’을 구성하려 한 것도 석연치 않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김 전 장관 측은 정보사와 국군방첩사령부로 2수사단을 구성하면서 정보사에 부정선거와 여론조작을 시도하려는 북·중·러 등 해외 세력에 대한 수사 임무를 부여할 계획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군 내부에선 국정원과 경찰 등 유관 기관이 이미 조직을 갖춰 활동하는 해당 부분 수사에 군인을 투입하려는 시도 자체가 불필요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외에서 대북 첩보 수집을 위한 공작을 주로 수행하는 정보사 요원들에게 관련 수사를 맡기는 게 적절한지 의문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군 관계자는 “계엄과 관련이 없는 정보사 조직을 편의적으로 끌어다 활용하려 했던 건 나름의 이유가 있지 않겠냐”며 “말 잘 듣고 공작에 능한 군인들을 장관 직속으로 두려 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