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퇴임 앞둔 日 총리의 부라사가리

2024-09-22

껄끄러운 질문에도 성실 답변

언론 통한 국민과의 소통 실천

尹, 도어스테핑하다 조기 중단

국민 설득 노력 부족해 아쉬워

지난 6일 서울 용산에서 한·일 정상회담이 끝난 직후 일본 반응을 체크하기 위해 NHK방송을 켰다. 마침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가 회담을 취재하러 온 일본 기자들과 질의 응답을 갖고 있는 장면이 생중계되고 있었다.

그는 작은 수첩을 들고 회담 내용을 간략하게 전하고, 직접 회담 의미를 평가했다. 기자들의 질문은 이즈음 후보들의 출마선언이 이어지며 달아오르고 있던 자민당 총재 선거로 이어졌다. 한국에서 열린 정상회담 취재 현장이었지만 기자들은 일본 내 주요 현안에 대한 견해를 스스럼없이 물었고, 기시다 총리는 나름의 대답을 내놓았다. 화면을 보며 ‘일본은 총리와 언론의 만남이 참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부라사가리’라 불리는 일본의 약식 기자회견 장면이다. 총리가 관저로 출퇴근하며 기다리고 있던 취재진의 질문을 받는 게 가장 잘 알려져 있는 형태다. 국정 최고 책임자의 공개된 활동이지만 특별한 형식은 없다. 사전에 내용이 조율되기도 하지만 마주 보고 선 총리와 기자들은 자연스럽게 질문, 대답을 주고받는다. 이 자리에서 총리는 주요 정책 내용, 당면 현안에 대한 대응 방안, 해결 의지 등을 설명한다. 정국을 자신의 생각대로 이끌어가기 위한 포석을 깔기도 한다. 2001년 취임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가 처음 도입했고, 시간이 꽤 지난 이제는 일본 국민에게도 익숙해졌다.

기시다 총리는 약식이든 정식이든 상대적으로 기자회견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듣는 힘’을 자신의 강점으로 자부한 그는 “더 물으시라”라며 질문을 자신이 나서서 재촉하기도 했다.

2021년 10월 취임 이후 1년간 170여회의 부라사가리를 진행했다고 한다. 지지율 만회를 위해 기자회견을 적극 활용한 것도 눈에 띈다. 그는 지난해 8, 9월 두 달간 약식·공식 기자회견을 34번이나 진행했다. 이틀에 한 번꼴이었던 셈이다.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 방류가 시작된 8월24일에는 하루에 3번 기자들과 만났다. 이즈음 기시다 총리 지지율은 30%대(니혼게이자이신문 여론조사 기준)로 떨어지며 뚜렷한 하향세를 보이고 있었다.

“최근 부라사가리가 잦아지는데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주요 정책 등의) 투명성을 높이고, 신속하게 전달하는 것은 총리로서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대답했다.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보며 종종 비판을 하고, 껄끄러운 질문을 하기도 하는 언론을 만나는 것이 총리라고 달갑기만 할 리 없다. 총리의 성향에 따라 부라사가리의 질과 양은 차이가 있다. 말실수로 악재가 발생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전 총리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악화하던 무렵 감염자 확산과 관련해 “인구가 감소하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가 호된 비판을 받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여전히 총리의 부라사가리는 일본 정치에서 특별할 게 없는 장면이다. 언론을 통한 국민과의 소통이 중요하다는 점을 알고 실천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초 부라사가리와 비슷한 형식의 도어스테핑을 시작했다. 하지만 2022년 11월 61회를 끝으로 중단했다. 역대 대통령이 관례처럼 했던 신년회견을 특정 언론과의 단독 인터뷰로 대체하기도 했다. 지난 5월 취임 2년 기자회견은 무려 1년 9개월 만의 회견이었다. 대선 후보 시절 “대통령은 언론에 자주 나와 질문을 받아야 하고 솔직하게 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던 것과는 괴리가 너무 크다.

얼마 전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윤 대통령에 대한 긍정평가는 20%로 역대 최저치를 찍었다. 부정평가의 이유 중 세 번째로 많은 것이 ‘소통 미흡’이었다. 여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으나 언론과의 접촉을 꺼리는 것도 주요한 요인일 것으로 짐작된다.

이제 한국에서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한다는 자체가 특별한 일인 양 인식되는 듯한 느낌이다. 말로는 언제나 앞세우는 국민에게 설명하고, 국민을 설득하는 데는 무신경한 한국 정치의 실상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강구열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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