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을 뒤엎는 자와 몽둥이질

2025-02-25

바둑에는 이기는 수 아니면 지는 수밖에 없다. 상대보다 실력이 없다거나 자신이 잘못해서 패색이 짙어졌다면 지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럴 때면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하고 돌을 던짐이 떳떳한 모습이다.

적어도 양식 있고 도덕과 법률의 가치를 믿는 이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그 순간에 지는 수 외에 또 다른 수가 있다고 주장하며 그 수를 아무렇지도 않게 실행에 옮기는 자들이 있다. 그 수는 다름 아닌 판을 뒤엎는 수다. 승패를 확정 짓기 전에 판을 뒤엎었기에 자신이 졌다는 점을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판을 뒤엎는 것은 룰에 어긋나며 몰상식하고 비윤리적이라 비판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지는 것보다는 뒤엎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했기에 뒤엎는 수를 결행했고, 또 자신은 그렇게 해도 될 만한 힘을 지니고 있었기에 그리했다고 눈 껌벅이며 말할 뿐이다.

그래서 이렇게 자기에게 힘이 있다고 하여 판을 뒤엎는 사람을 두고 몰염치하다, 무법하다, 사악하다고 비판하는 건 무의미하다. 그런 비판은 염치 있고 양식과 이성을 갖추고 있으며, 사회규범과 법률을 지켜야 마땅하다고 여기는 이들에게는 분명 뼈아픈 타격감을 안긴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루저들의 자기 합리화에 불과하고, 기껏해야 아큐식의 정신승리법일 따름이라고 여기는 이들에게는 아무런 타격도 되지 못한다. 그들은 판을 뒤엎어서라도, 그 결과 자신이 속한 집단은 결딴나든 말든 오로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만 있다면, 당당하게 그리하는 것이 지혜이고 능력이며 도덕적, 사회적으로 떳떳한 행동이라 여긴다.

그래서 양식 있는 사람들, 사람다운 사람들의 기준으로 그들을 일깨우고 꾸짖는 것은 더없이 부질없다. 중국의 대문호 루쉰이 사람을 무는 개는 물에 빠졌든 뭍에 있든 모조리 패야 한다고 한 일갈이 하나도 과격하지 않게 다가오는 이유다. 그들은 비유컨대 언제 어디서든 사람을 물어대는 개다. 무슨 도리나 정의 같은 것이 그들에게 있을 리 만무하다.

루쉰의 통찰처럼, 물에 빠진 개를 구해주면 개는 자신이 이익을 봤다고 여길 뿐 결코 회개하지 않는다. 하여 틈만 생기면 다시 사람을 물어댄다. 하여 몽둥이질이냐, 도덕적 꾸짖음이냐는 상대에 따라 골라 써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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