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월세 구할 때 면접도 보라고? ‘임차인 면접제’ 갑론을박

2025-12-27

[주간경향] ‘주차등록 1대, 애완동물·흡연 금지, 시설·물품 변경·파손 원상복구, 퇴거 시 청소 책임, 건물 매매 시 조건 없이 명도, 특약 미이행 시 퇴거.’

지난가을 서울 송파구의 아파트형 오피스텔을 계약한 직장인 A씨는 계약서를 작성하면서 10개가 넘는 특약사항에 동의했다. A씨는 “집주인이 특약 종이를 가져와서 하나하나 다 읽고 부동산중개업소에서 계약서에 추가했다”면서 “또 전에 살던 곳은 어디인지, 보통 얼마나 늦게 들어오는지까지 물어보더라”고 말했다. 그는 “부동산중개업소에서 ‘집주인이 책임감 있어서 관리를 잘하는 거다’라고 해서 지나갔는데, 나중에 보니 이런 게 임차인 면접인가 싶었다”고 덧붙였다.

집을 빌릴 때 집주인이 세입자의 면접을 보고 계약 여부를 결정하는 이른바 ‘임차인 면접’이 국내에도 도입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임차인 면접을 법제화해달라는 국회 청원이 등장하고, 임대인 협회 등에서는 별도의 ‘스크리닝(선별)’ 서비스도 준비하고 있다. 주택 임대차 시장에서 투명성을 높여가는 현상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지만, 임차인 권리가 충분히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세입자 차별 등 임대인의 지배력만 키우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적지 않다.

주택임대인과 임대사업자 등으로 구성된 대한주택임대인협회는 내년 상반기 서비스 출시를 목표로 임대차 계약 전 임대·임차인의 기본 정보를 상호 제공·검증하는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협회가 마련 중인 방안에는 임차인의 임대료 납부 내역, 신용정보, 이전 임대인의 추천 등 평판 데이터, 흡연 여부, 반려동물 보유, 동거인 유무 등이 담길 예정이다. 협회는 임대인·임차인의 동의하에 계약 진행 시 관련 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앱)을 개발해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성창엽 협회장은 “전세사기 등으로 비아파트 임대차 시장이 초토화되면서 빌라 쪽은 전세는커녕 반전세 계약도 꺼릴 정도로 시장이 얼어붙었다”면서 “저보증이나 무보증금 형태의 계약이라도 성사시키자는 구상으로 시작된 사업인데, 임대인도 보증금을 낮춘 만큼 임대료를 확실히 받는다는 보장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임차인에 대한 신용도 같이 알자’ 이런 취지”라고 설명했다.

성 협회장은 다만 “가계대출 등 규제가 강화되면서 당장 저보증·무보증 형태로 바로 연결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임대인의 정보도 열람 동의가 아니라 앱을 통해 바로 볼 수 있게 하고, 등기부 분석도 제공하는 등 임대인·임차인 모두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서비스가 제공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11월에는 ‘면접 또는 서류 심사 등을 통해 임차인의 신용도, 월세 지급 능력, 거주 태도 등을 확인하고 평가’하는 임차인 면접제도 도입을 요구하는 국민동의 청원도 국회에 등장했다. 청원자는 “현재 깜깜이 임차 계약 시스템으로는 내 집에 전과자가 들어오는지 신용불량자가 들어오는지 알 길이 없다”며 임차인 면접제도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청원은 최소 동의 미달로 종료됐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임차인 정보 공개를 둘러싼 일련의 움직임들이 전세 급감과 월세 증가라는 임대차 시장 재편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정준호 강원대 교수(부동산학과)는 “현재 우리나라 임대차 시장이 전세 제도에서 월세 제도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며 “전세는 보증금 규모가 크기 때문에 그 자체로 보증의 성격이 크지만, 월세의 경우 보증금이 적기 때문에 전세 보증금만큼 인적 보증이 더 중요해지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월세는 특히 체납 등이 임대인의 수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월세가 충실하게 지속적으로 들어오는 게 집주인에게 가장 중요하고 그래서 더 세입자를 따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국토교통부의 10월 주택통계 자료를 보면 올해 1~10월 거래된 전·월세 거래 가운데 62.7%가 월세(보증부월세·반전세 포함) 거래였다. 같은 기간 월세 거래 비중은 2023년 54.9%에서 2024년 57.3% 등 계속 상승하고 있다. 서울의 경우 올 10월까지 월세 거래비율은 64.2%로 2년 전보다 8.1%포인트 증가했다. 월세가 2건 계약될 때 전세는 1건 계약되는 꼴이다. 특히 최근 월세 전환 추세가 가속화된 것은 정부의 부동산 규제가 실거주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전세 품귀→전셋값 상승→반전세 전환 확대→월세 상승으로 이어지는 도미노 현상으로 볼 수 있었다. 올해 서울 아파트 월세 상승률은 한국부동산원에서 관련 집계를 시작한 2015년 이후 처음으로 3%를 웃돌았다.

윤지해 부동산114 리서치랩장은 “전세의 특성 때문에 (국내에) 들어오지 않았을 뿐 계약, 교환 관계에 있는 당사자들의 신용정보를 확인하는 것은 (해외에서는) 당연하고, 오히려 진작에 들어왔어야 한다”면서 “전세사기를 계기로 임대인 정보를 달라는 요구가 등장하니 자연스럽게 ‘그럼 임차인 정보도 보자’는 요구가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영미권서 보편” vs “국내 시기상조”

실제로 유럽과 영미권 국가, 일본 등에서는 임차인 면접 제도 혹은 그에 상응하는 스크리닝 제도가 오래전부터 자리 잡고 있다. 독일의 경우 임차인이 집을 얻기 위해서는 연체 기록 등이 망라된 개인신용정보서(SCHUFA)와 직업과 소득 등을 기록한 자기소개서, 3개월 치 급여명세서 등을 기본으로 제출한다. 프랑스와 영국도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소득 증빙과 신용조회 동의, 이전 임대인의 ‘월세 미납 없음’ 추천서 등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정 교수는 “독일은 좋은 집의 경쟁률이 수십 대 1에 이를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고, 그만큼 세입자를 집주인이 가려 받는다”면서도 “세입자 보호가 정말 잘돼 있기 때문에 집주인들이 더 까다롭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계약갱신청구 거절이나 세입자 퇴거 요건 등을 엄격하게 정하면서 한번 들어온 세입자 퇴출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애초부터 문제가 될 세입자를 받지 않기 위한 선별 작업이 고도화됐다는 설명이다.

그는 “한국은 아직 세입자 권리 향상이나 법적 장치가 충분히 마련되지 않은 상태인데, 면접 시스템부터 도입되면 집을 구하는 임차인의 권리가 지금보다 더 약화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임차인 면접제가 제도권으로 편입될 경우 세입자에 대한 과도한 개인정보 침해나 차별, 소득에 따른 거주지역 분리 같은 주거 양극화 문제가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청년주거 문제 시민단체 민달팽이유니온의 김가원 사무처장은 “임대인 정보 공개는 사회적 재난인 전세사기·깡통주택을 비롯한 보증금 미반환 문제에서 기인했다”며 “상황이 이런데 정보 불균형 운운하며 사생활을 침해하겠다는 시도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임차인 면접제를 운영하는 독일이나 일본의 경우 계약 기간을 정하지 않는 세입자의 장기 거주가 보장돼 있고, 임대차 계약해지 사유를 엄격히 제한하는 특수성이 있다”며 “이를 고작 2년 계약에, 집값에 육박하는 보증금을 받는 한국에 도입하자는 것은 그야말로 억지”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민감한 사적 정보를 기반으로 세입자를 가려 받겠다는 것은 인권침해”라며 “성소수자와 장애인 등 가뜩이나 차별을 받는 사회적 약자의 주거권을 심각하게 위협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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