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냥 쉬는 20대 청년이 40만 명을 넘어섰다. 이들이 취업을 포기하고 ‘쉬었음’을 선택한 이유를 게으름이나 무기력, 현실 도피 등으로 폄훼할 일이 아니다. 구직활동조차 포기할 정도로 구조적 요인이 청년들을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AI)과 자동화가 가속화하면서 신규 채용은 줄고 기업들은 경력직을 선호하며 청년들은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정부·노조·경영계 모두 ‘미스매칭’을 이유로 청년들에게 눈높이를 낮추라고 요구할 뿐 정작 이들의 목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정년 연장 논의도 마찬가지다. 당장 일자리에 위협을 받는 청년들은 논의 구조에서 배제된 채 ‘어떻게’보다 속도에만 집중하는 모습이다. 국내 첫 세대별 노동조합인 청년유니온의 김설 위원장은 1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문제의 핵심은 눈높이가 아니라 구조”라며 “대기업 중심의 연공급 임금체계, 기업 간 지나친 격차, 불안정한 노동의 확산, 기회 자체가 줄어드는 산업구조 변화가 복합적으로 청년들의 선택지를 좁히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정년 연장, 연금 개혁, 주거 문제 등은 모두 청년들의 미래에 관한 문제”라며 “정부가 장기적 로드맵을 만들지 못한다면 청년 세대의 기반 자체가 흔들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년 연장 논의에 청년들이 배제되고 있다.
△생산가능인구가 줄고 국민연금의 소득 크레바스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입법 취지 자체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누구를 위한 정년 연장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근본적인 노동시장 개혁 없이는 고임금, 고용 안정을 누려온 소수 집단의 노후 소득 공백을 메우는 특혜 수준에 그칠 것이다. 지금의 논의는 기업 부담 증가를 주장하는 사용자 측과 연공급 체계를 유지해 생애 고용을 지속하려는 노동시장 상층 간의 논쟁에 불과하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로 인해 정년 혜택조차 받지 못하는 다수의 불안정 노동자와 이제 막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청년들과는 무관한 논의다.
-그렇다면 청년들이 원하는 정년 연장 구조는 뭔가.
△부모 세대가 더 오래 일하는 것은 부양 부담 측면에서 청년들도 환영한다. 그러나 지금 논의되는 정년 연장이 실질적인 노후 빈곤 대책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실질 은퇴 연령이 49.4세인 상황에서 이미 퇴직 후 재고용이나 단순 노무직, 자영업 창업 등으로 빠져 있는 고령 노동인구의 양극화를 확대할 수 있다. 소수 대기업의 연공급 구조가 지켜지는 상황에서 정년 연장이 실시되면 신규 채용이 줄 수밖에 없다. 노동시장 구조 개혁이 선행되는 정년 연장이 필요하며 속도 조절도 필수적이다.
-정년 연장을 위한 구조 개혁의 핵심은 무엇인가.
△임금체계 개편이다. 연공급 임금체계를 숙련도를 반영한 직무 중심으로 재편하는 논의가 병행돼야 한다. 생산성에 따른 임금 조정은 개별 노조 입장에서 합의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임금체계 개편이 ‘10~15년 장기 과제’라며 2015년 정년 연장 이후에도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지금이라도 대기업 중심의 상층 노동시장에서 연공급 구조조정을 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2015년 임금피크제 도입 당시 약속했던 신규 고용 확대 약속을 지켜야 한다. 당장 임금체계를 바꾸기 어렵다면 정년 연장 후 일정 기간 임금 상승분을 유보하고 그만큼을 신규 채용에 투입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임금 조정과 노동시간 단축이 일자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저생산 구조에서는 노동시간을 줄인다고 기업이 일자리를 늘리지 않는다. 오히려 비정규직 비율만 높아질 수 있다. 청년 입장에서는 노사 모두 이기적으로 보인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노동유연성 강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일정 부분 동의하지만 청년들의 과도한 비정규직 진입이 우려된다. 노동유연성 강화의 방향은 맞지만 부작용을 최소화할 사전적 안전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청년 고용 문제 원인을 ‘미스매칭’으로 보는 시각을 어떻게 생각하나.
△미스매칭은 고용 문제의 책임을 청년들에게 전가하는 개념에 가깝다. 청년들에게 눈높이를 낮추라고 요구할 것이 아니라 일자리의 질을 높여야 한다. 우리나라는 교육에 너무 많은 자원을 투입해 높은 대학 진학률과 우수한 인재를 배출하지만 정작 80%가 넘는 일자리는 별도의 숙련 형성이 필요한 곳이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모두가 이른바 ‘좋은 일자리’에 갈 수 없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좋은 일자리의 정의부터 다시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중소기업은 구조적으로 구인난에 시달린다.
△중소기업의 인력 확보가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임금·안정성·조직문화 모든 면에서 대기업과 격차가 크기 때문이다. 연공급 중심의 대기업 임금체계는 중소기업과의 간극을 더 벌려 왔다. 중소기업에 존재하는 유일한 임금 기준이 최저임금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내가 하는 일이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떤 보상 기준을 갖는지 명확해야 미래 성장에 대한 기대가 생기고 청년들이 버틸 수 있다. “네가 가서 좋은 일자리로 만들면 되지 않겠느냐”는 말은 무책임하다. 결국 청년들은 바늘구멍 같은 대기업 취업에 올인할 수밖에 없다.
-기업의 경력직 선호 현상이 점점 뚜렷해지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보나.
△기업이 교육·훈련 비용을 줄이기 위해 경력직만 채용하면서 청년들은 정규직 진입 전 비정규직 경력을 쌓는 ‘스펙 쌓기’ 악순환에 빠지고 있다. 한 번 채용하면 해고가 사실상 어려운 경직적 고용제도 때문에 대기업은 신입보다 검증된 경력직을 선호하고 그 결과 청년층 채용은 줄어든다. 단기 알바나 현금성 지원이 아니라 노동시장 이중구조 완화 등 보다 근본적인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쉬었음’ 청년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불평등, 사회적 낙인 효과가 결합한 결과다. 청년 대부분이 중소기업에서 일하지만 우리 사회는 대·중소기업 간 격차가 크고 중소기업 노동자를 비하하는 풍조가 만연하다. 대기업과 공공부문 중심의 좁은 관문만을 ‘성공’으로 인식하는 사회에서 그 문을 통과하지 못하면 곧바로 낙인이 찍힌다. 이를 개선하려면 직무 중심 임금체계 개편과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 확립 등 노동시장 전반의 격차를 줄여야 한다. 지난 정부에서 축소된 지역 주도형 일자리 사업이나 청년내일채움공제 등 청년들이 중소기업에 정착하도록 돕는 정책의 복원도 필요하다.
-고용노동부가 니트(NEET) 대책을 내놓았는데.
△니트 문제는 복지·고용이 얽힌 영역으로 기업 체험이나 단기 프로그램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고립·은둔과 니트를 동일시하는 것도 잘못이다. 학교 졸업 이후 6개월~1년 동안 진로 탐색, 고용 서비스, 주거, 심리 상담을 통합 지원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독일처럼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청년을 졸업 직후 일정 기간 집중적으로 케어하는 체계를 통해 노동시장 진입을 자연스럽게 유도해야 한다.
-청년 일자리가 AI로 대체되고 있다는 인식에 대한 견해는.
△저숙련 업무는 AI·자동화로 빠르게 대체될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은 청년 일자리의 98%가 AI 고노출 업종이라는 분석도 내놓았다. 그럼에도 정부는 직무 전환, 재교육, 안전망이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AI 교육 확대만으로 해법을 찾으려 하고 있다. 6개월 배워서 AI 전문가가 될 수는 없다. 실직 위험이 높은 분야에서 전환을 지원하는 사회적 시스템이 필요하다.

-연금 개혁도 청년들의 불만이 큰 분야다.
△신·구 연금 분리 주장 등 극단적 의견이 나오는 것은 지난 20년간 개혁을 미뤄 왔기 때문이다. 소득대체율 인상 중심의 개혁은 지속 가능하지 않아 반대한다. 이는 세대 간 격차만 키운다. 보험료율 조정과 함께 가입 기간을 채우기 어려운 노동자와 청년들을 위한 실질 보장률을 높일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내가 낸 돈을 못 돌려받는다”는 불안이 크다. 불안정 노동시장과 주거난이 결합하면서 연금은 더욱 부담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청년층이 원하는 연금 개혁 방향은.
△정부가 추진하는 군 복무·출산 크레딧 확대, 첫 소득 가입자 지원은 일부 도움이 되겠지만 근본 대책은 아니다. 불안정 노동 확대를 고려한 새로운 노후 안전망 설계가 필요하다. 잦은 이직·단절이 특징인 청년 노동시장의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악화되는 연금 재정 상황을 명확히 진단하고 정치가 개입하지 못하게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하는 것이다. 그래야 청년들이 국민연금을 신뢰할 수 있다.
-청년 주거 사다리 붕괴에 대한 우려가 크다.
△정책 대출 확대만으로 청년 주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토지·주택 가격 상승이 근본 원인인데 대출만 늘린다고 해결되지는 않는다. 월세 지원 등 현금성 정책은 필요하지만 시장 가격을 밀어 올리는 부작용도 심각하다. 임대료 지원 정책이 오히려 임대인의 가격 책정에 이용되기도 한다. 청년을 위한 공급 정책이 필요하다. 역세권, 도심 핵심 지역에 ‘질 높은 공공임대’를 공급해야 한다. 낙후된 외곽 지역에만 임대주택을 배치하면 누가 살고 싶어 하겠는가.
He is
1994년생으로 전남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2017년 광주청년네트워크 사무국장을 시작으로 활동을 하며 청년운동에 뛰어들었다. 2018년 광주청년유니온 위원장을 거쳐 2022년부터 청년유니온 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위원장에 당선되며 서울에서 처음 생활한다고 하는 그는 청년 노동 현장의 목소리를 대표하고 대변하는 것을 넘어 변화의 단초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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