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의 시대’, 이대로 놓아둘 순 없다

2025-11-16

지난 20세기 후반에 ‘고독’을 사회적 의제로 부각한 사람은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즈먼이다. 리즈먼은 『고독한 군중』(1950)에서 자신이 속한 조직으로부터 소외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늘 타인의 생각과 행동을 고려하는 성격을 낳았다고 분석했다. 개성보다 관계를 중시하는 ‘타인지향형’의 사회적 성격이 불안에 사로잡힌 현대사회의 ‘고독한 군중’을 등장시켰다는 게 그의 메시지였다.

국민 38.2%가 평소 외로움 느껴

외로움은 ‘사회적 질병’으로 봐야

정부, 복지·보건·인구대책 내놓고

시민사회는 사회적 신뢰 높여야

2020년대에 들어와 ‘외로움’의 사회적 계몽을 시도한 사람은 경제학자 노리나 허츠다. 허츠는 『고립의 시대』(2020)에서 무한경쟁을 강제하는 신자유주의와 대면적 상호작용을 감소시키는 정보사회가 외로움을 증대시켰다고 분석한다. 외로움이 공감과 소통을 줄이고, 나아가 적대와 증오를 부추겨 극단적 포퓰리즘을 강화하며 민주주의를 위기로 몰아넣는다는 게 그의 메시지다.

『고독한 군중』과 『고립의 시대』를 떠올린 것은 11일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5년 사회조사 결과’ 때문이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13세 이상 인구 중 외롭다고 응답한 비중은 38.2%로 나타났다. ‘자주 외롭다’는 응답이 4.7%였고, ‘가끔 외롭다’의 응답이 33.5%였다. 연령이 높을수록 더 많은 이들이 외로움을 느꼈고, 65세 이상은 43.4%를 기록했다. 국가데이터처는 외로움이 올해 처음 조사한 항목이라고 밝혔다.

사회적 관계망의 조사 결과도 주목할 만하다. 특정 상황에서 도움받을 수 있는 사람도, 평소 교류하는 사람도 없다고 응답한, 즉 사회적 관계망이 부재한 이들은 13세 이상 인구의 5.8%로 나타났다. 더하여, 사회적 관계망이 없으면서 평소 외로움을 느끼는 고립 위험군에 속한 이들은 3.3%(150만 명)로 추산됐다.

지구적 차원에서 조사한 자료도 시선을 끈다. 올 6월 세계보건기구(WHO)의 사회적연결위원회는 보고서 ‘외로움에서 사회적 연결로’를 내놓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4~23년 진행된 조사에서 여성은 16.1%, 남성은 15.4%가 외로움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10대와 20대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13~17세 응답자 중 여성 24.3%와 남성 17.2%가, 18~29세 응답자 중 여성 16.8%와 남성 17.4%가 외로움을 느꼈다. 위원회는 젊은이들이 다른 세대보다 더 강한 사회적 관계를 원하기에 이와 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해석했다.

이러한 통계는 21세기가 ‘외로움의 시대’임을 보여준다. 사회학적으로 외로움은 개인적인 동시에 사회적인 현상이다. 개인적 차원에서 시인 정호승이 노래했듯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는 말은 전적으로 맞다. 인간은 본디 외로운 존재다. 자유의 존재로 살아가려는 한, 고독은 감당해야 할 조건이다. 온라인 관계들이 빚어내는 ‘초연결의 시대’에 잃어버린 고독을 찾아 자기만의 삶의 의미를 물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사회적 차원에서 외로움은 사회적 고립의 출발점이다. 외로움은 단절을, 단절은 고립을 낳는다. 사회적 고립은 불안과 우울감을 증대시켜 개인의 정신건강은 물론 신체건강을 지극히 위태롭게 만들고, 나아가 공동체에의 유대감을 약화해 사회의 건강지표라 할 수 있는 국민통합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외로움을 이대로 놓아둘 수 없는 이유다.

외로움에 대한 사회정책으로 주목받아온 국가는 영국과 일본, 덴마크와 스웨덴이다. 2018년 영국은 디지털·문화·미디어·스포츠부 장관을 ‘외로움부 장관’으로 겸직 임명하고, ‘연결된 사회’ 5개년 계획을 실행했다. 일본은 2021년 고독·고립 담당 장관을 임명하고, 내각관방에 고독·고립 대책담당실을 설치했다. 한편 덴마크와 스웨덴은 고령 세대의 외로움을 덜어줄 수 있는 ‘살던 곳에서 늙어가기(AIP, Aging in Place)’ 정책을 추진했다. 이러한 지역사회 중심의 돌봄 서비스는 사회적 관계는 물론 개인적 자존감을 유지함으로써 외로움을 줄여주는 정책으로 평가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외로움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정부, 시민사회, 개인 모두의 노력이 요구된다. 정부는 외국 사례들을 참고해 외로움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정책을 체계화해야 한다. 1인 가구 대책, 사회적 고립 예방, 심리적·정서적 지원 등을 포괄하는 종합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시민사회는 낮은 신뢰가 높은 외로움에 비례한다는 점을 주목해 사회적 신뢰를 제고해야 한다. 공존동생(共存同生)의 사회에서 외로움은 자연 감소한다. 개인 스스로의 변화도 중요하다. 타인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서로의 이해를 높이는 마음의 습관을 길러야 한다.

넘치는 관계의 시대 속에 외로움의 시대가 깊어지는 것은 거역하기 어려운 21세기의 시대적 흐름이다. 외로움을 ‘마음의 병’으로만 볼 수 없다. 외로움은 ‘사회적 질병’이다. 외로우니까 이제 정부와 시민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도도한 외로움의 시대를 안타깝게 지켜보는 한 사회학자의 생각을 여기에 적어둔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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