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탐구 1990년대
1997년 12월 30일 경기도 평택의 한 빌라. 매서운 추위가 살을 파고드는 겨울 아침이었다. 하늘은 잿빛으로 무겁게 내려앉았고, 바람은 얼굴을 찌르는 듯 날카로웠다. 원종열 형사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빌라를 올려다봤다. ‘신창원, 오늘은 꼭 끝내주마.’ 손에 쥔 가스총에서 전해져 오는 냉기가 그의 결의를 다졌다.
김 형사가 앞장서고, 너희들은 입구에 있어.
원 형사가 조용한 목소리로 지시했다. ‘이번엔 꼭 신창원을 잡아야 한다.’ 조용히 마음을 다잡으며 은신처가 있는 빌라 2층으로 올라갔다. 옥상으로 통하는 길은 미리 차단했고, 빌라 입구에는 태권도 유단자 후배들 6명을 배치했다. 체격이 좋은 김 형사가 앞장서고 바로 뒤에 원 형사가 가스총을 손에 쥔 채 문 앞으로 다가갔다.
신문 구독하시면 선물 드려요.
의심을 사지 않으려고 동장 아주머니의 협조도 받았다. 아주머니가 신문 몇 부를 손에 들고, 마치 구독을 권하는 척 문을 두드렸다. 문이 열리자 제일 먼저 모습을 보인 건 신창원의 동거녀 강모(23)씨였다. 그녀의 어깨너머로 다부진 남자의 실루엣이 보였다. 신창원이었다.
주방 앞에 서 있던 그는 무언가를 썰고 있었다. 식칼을 쥔 그의 손놀림은 빠르고 매끄러웠다. 칼날이 도마를 치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렸다. 그의 어깨는 평안해 보였지만, 눈빛은 날카롭게 주변을 스캔했다. 방 안의 공기는 영하의 바깥 날씨보다 더욱 차갑게 느껴졌다.
“신창원, 꼼짝 마!”
원 형사가 총을 겨누며 소리쳤다. 도마에 칼을 부딪치던 소리가 멈췄다. 순간의 정적이 흐르고 신창원이 매섭게 노려봤다. 그의 눈빛엔 당황도, 두려움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먹이를 탐하는 맹수와 같았다.
“멈춰!”
두 형사는 동시에 소리쳤지만, 신창원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망설임 없이 식칼을 휘두르며 한 발씩 다가왔다.
식칼이 공기를 가를 때 형광등 빛에 반사된 칼날이 반짝였다.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치던 김 형사가 바닥에 미끄러졌다.
“탕! 탕!”
원 형사가 재빠르게 가스총 두 발을 발사했다. 매캐한 냄새가 진동했다. 그러나 신창원은 꿈쩍도 없이 앞으로 돌진했다. 쓰러진 김 형사를 뛰어넘어 원 형사 위로 올라탔다. 신창원은 그의 얼굴에 칼날을 가까이 들이댔다. 눈빛은 차갑고, 목소리는 차분했다.
원 형사는 마치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신창원은 순식간에 몸을 일으켜 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원 형사의 몸은 반격할 틈도 없이 뻣뻣하게 굳었다. 그놈과의 두 번째 대면, 이번에도 그를 놓친 것이다.
신창원 스토리의 서막
위에 무슨 일 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