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풍백화점 붕괴 30주년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2025-06-28

“주거지가 어떻게 됩니까?”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OOO호입니다.” 지난 4월14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벌어진 문답 일부다. 질문자는 지귀연 중앙지법 형사25부 재판장, 답변자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로 국회 탄핵소추를 당한 윤 전 대통령이 4월4일 헌법재판소 재판관 8명 전원일치 의견으로 파면에 처해지고 나서 처음 열린 형사재판 풍경이었다. 윤 전 대통령이 서초구의 주상복합건물 아크로비스타에 산다는 점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법정에서 갑자기 아크로비스타가 거론되니 문득 옛날 그 자리에 있었던 삼풍백화점이 떠오른다.

2005년 정이현 작가가 단편소설 ‘삼풍백화점’을 발표했다. 서울 강남에서 부족함 없이 20대를 보낸 여자 ‘나’와 삼풍백화점에서 판매직으로 일하던 고교 동창생 ‘R’의 어색한 만남을 통해 백화점 붕괴 당시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삼풍백화점에 대한 정 작가의 관심은 장편소설 ‘안녕, 내 모든 것’(2013)으로도 이어졌다. 황석영 작가의 장편소설 ‘강남몽’(2010)은 최고급 백화점 ‘대성백화점’이 무너지는 장면에서 출발해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며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장면을 하나씩 끄집어낸다. 소설 속 대성백화점이 바로 삼풍백화점이다. 문홍주 작가의 장편소설 ‘삼풍’(2012)은 백화점 붕괴 후 1주일 동안 벌어진 일들을 마치 기록영화처럼 그렸다.

방송 드라마로는 2010년 SBS가 방영한 이범수·박상민·황정음 주연의 ‘자이언트’를 꼽을 수 있다. 돈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안 가리는 악덕 기업을 고발한 이 드라마는 마지막 회에서 서울 금싸라기 땅에 지어 올린 초호화 쇼핑몰 ‘만보플라자’가 무너지는 장면을 통해 삼풍백화점 비극을 형상화했다. 영화는 유지태·김지수·엄지원 주연의 ‘가을로’(2006)가 대표적이다. 개봉 당시 배우 유지태가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자리에 추모비 대신 아파트가 들어서 아쉽다”고 말한 것이 화제가 됐다. 옛 삼풍백화점 터에 지어진 아파트가 바로 아크로비스타, 오늘날 윤 전 대통령의 주거지다. 삼풍백화점 추모비는 사고 현장에서 떨어진 양재동 ‘시민의 숲’에 세워졌다.

지금으로부터 꼭 30년 전인 1995년 6월29일 오후 5시55분 삼풍백화점이 불과 20초 만에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백화점 내부, 또는 근처에 있던 시민 502명이 목숨을 잃고 930여명이 다쳤다. 실종된 6명은 끝내 시신조차 찾지 못했다. 검찰 수사 결과 백화점 붕괴 사고는 건물주와 시공업자, 그리고 감독기관 3자의 ‘안전 불감증’이 빚은 합작품으로 드러났다. 이후 그토록 안전, 안전을 외쳐댔어도 세월호 참사(2014), 이태원 핼러윈 참사(2022) 등을 막지 못했다. 최근 취임한 이재명 대통령은 이들 참사를 언급하며 “최소한 이재명정부에서는 그런 일은 절대로 벌어질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다짐이 반드시 실행에 옮겨지길 기원하며 삼풍백화점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