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와 시위가 이어지면서 시위대와 경찰 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 주말 집회에서 시위대 여러 명이 체포되고 경찰 부상자도 여럿 발생했다. 집회 주최 측과 경찰은 서로 충돌의 빌미를 제공했다고 비난하고 나서면서 갈등은 더욱 격화되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전국민중행동·진보대학생넷 등 윤석열정권퇴진운동본부가 지난 9일 연 집회의 시위대 일부와 경찰이 충돌해 11명이 연행됐다. 경찰은 11일 이들 중 6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검찰은 4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법원에 청구했다. 경찰은 민주노총 집행부 7명에 대해서도 “불법 집회를 사전에 기획했다”며 내사에 착수했다.
조지호 경찰청장은 이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상당 기간 집회 신고 범위를 이탈한 것에 대해 여러 차례 시정 조치를 요구했는데도 불구하고 시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조 청장은 “집시법(집회·시위에 관한 법률) 절차를 다 준수했다. 종결처분 요청했고, 해산명령도 3번이나 했다”면서 “그 뒤에도 안 돼서 최소한의 통로를 확보하려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봉식 서울경찰청장도 집회 현장에서의 엄격한 법 집행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집회 대응에 동원된 경찰관 105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위대 규모를 예상하지 못해 너무 협소한 공간을 집회 구역으로 설정한 것이 충돌의 발단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집회는 세종대로 왕복 9차로 가운데 7개 차로에서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예상보다 참가자가 늘면서 시위대가 전체 차로를 차지했다. 김종서 배재대 경찰법학과 명예교수는 “경찰은 신고 인원에 따라 충분한 차로를 확보해 되도록 충돌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전에 조율하는 게 의무”라며 “집회 장소를 제한적으로 둬서, 충돌을 유도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말했다.
주최 측 추산 10만명, 경찰 추산 3만6000명 모인 집회 규모를 감안하면 경찰의 도로 통제 범위가 지나치게 협소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2만여명이 모일 것으로 예상된 지난 9월28일 ‘2024 국제 선명상대회’ 등을 위해 광화문광장 일대 전 차로를 통제했다. 병력 3000명·장비 80여대가 투입된 지난달 1일 국군의 날 행사도 세종대로 전 차로를 통제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평화 집회에 경찰이 폭력적으로 난입했다”고 반발했다. 건설노조는 사전집회가 끝나고 본집회에 합류하는 과정에서 행진이 가로막혀 충돌이 빚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태승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는 “경찰이 직접 골라준 적법한 행진로로 본대회에 합류했으나, 경찰이 막아섰다”며 “사건의 본질은 집회·시위에 대한 과도한 탄압과 제한”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경찰이 ‘민주노총의 사전기획설’을 제기한 데 대해서도 “강경 진압과 연행을 사전 기획한 건 경찰”이라고 맞받았다.
양측의 감정이 격앙되면서 추가 충돌 우려도 나온다. 오는 16일 촛불행동이 주최하는 ‘11월 전국집중촛불대행진’이, 오는 20일에는 민주노총 2차 총궐기 등 대규모 도심 집회에 예고돼 있다. 통제되지 않는 인파가 몰린 상황에서 경찰이 ‘준법’에만 치중하다 보면 충돌은 불가피하다. 김선휴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운영위원(전 헌법연구관)은 “권력의 오남용을 지적하는 집회일수록 집회의 자유가 충분히 보장돼야 하는데, 경찰 강경 대응은 집회 자유를 보장하라는 헌법 취지에 역행한다”며 “형사적 조치까지 동원하는 것은 집회 초기 단계에서 과도하다”고 말했다. 경찰 입장에서도 일반 시민과 시위대의 안전, 표현의 자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유연한 대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