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나무처럼 살고 싶다는 꿈

2025-02-07

‘나보다 오래 살아온 느티나무 앞에서는 무조건 무릎 꿇고 한 수 배우고 싶다’

-안도현의 〈나무 생각〉 중에서

산불의 피해가 워낙 커서 희망을 이야기하기엔 앞날이 아득하다. 그래도, 피해자 돕기에 마음이 모이고 이런저런 문화행사들이 열리고 있어 다행이다. 고통과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모두가 작은 힘이나마 모아야 할 때다.

이런 시절에 희망을 이야기하고 글을 쓰는 일이 무슨 소용인지,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간절하게 찾으면 어디엔가 희망이 있을까? 그런 생각에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니, 나무가 말을 걸어온다. 그래도 찾아야 한다고….

산불로 많은 나무들이 불길에 휩싸여 죽었다. 나무들은 죽어서도 당당하게 서있다. 어쩌면 나무는 슬픔을 이겨내고 분노를 다스리는 슬기를 지니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지혜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퍼뜩 든다. 나무를 닮고 싶다. 주어진 날을 묵묵히 정성스럽게 살아가는 나무를 스승으로 모시고 싶다.

나이 많이 드신 나무를 만나면 절하고 싶어진다. 긴 세월 살면서 묵묵히 지켜봐 오신 역사의 무게를 생각하면 숙연해진다.

나무는 인간보다 훨씬 오래 살며 자연의 중심을 이루고 인간들을 지켜주는 거룩한 생명이다. 산과 숲을 지키는 영험한 나무, 한 마을을 포근하게 감싸안고 있는 어머니품 같은 동수(洞守)나무… 거룩함의 상징인 나무 십자가….

우리 주위에 푸르게 서있는 나무뿐만이 아니다. 나무는 죽어서도 살아서 인간을 보살피며 함께하는 고마운 존재다. 나무는 죽은 뒤에도 다양한 모습으로 다시 살아나 우리 주위에 존재한다. 역사적으로 오랜 세월 그래 왔다.

시멘트와 철제, 플라스틱 등이 일상화되기 전에는 나무가 우리 삶의 거의 전부를 지탱해주었다. 나무와 더불어 숨 쉬며 살았다. 이렇게 한평생을 나무와 함께 살다가 죽어서는 나무 상자에 담겨 땅에 묻혔다.

실제로 우리 삶은 집을 비롯해 삶의 구석구석에서 나무를 만난다. 기둥, 석가래, 대들보, 천장, 추녀, 처마, 마루, 대문, 문틀, 창틀, 담장, 울타리 등 집의 뼈대… 책상, 걸상, 옷장, 반다지, 식탁, 뒤주, 장작, 칼도마, 소쿠리, 함지박, 젓가락, 떡살 같은 살림살이… 수레나 배 같은 교통수단… 거문고, 가야금, 피리, 북 같은 악기들… 다양한 탈과 장승들… 육모방맹이, 몽둥이, 회초리, 형틀, 홍두깨, 말뚝… 온갖 연장, 자루… 대장경판, 나무로 깎은 불상, 목탑, 목탁, 목어 같은 종교용품… 붓, 캔버스 틀, 액자… 등등 모두 죽어서도 살아있는 나무들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몸을 눕히는 관도 나무다.

나무의 가장 아름다운 변신은 목조건물, 목조각, 목공예품 같은 예술품들일 것이다. 일본에 남아있는 목조 미륵반가사유상이나 백제관음상 같은 삼국시대 불상을 대하면 천년이 넘는 긴 세월을 그윽하고 당당하게 살아온 아름다움에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적이다.

“나무의 생명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 천년이 지난 나무가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 대패질을 해보면 지금도 질 좋은 나무 향기가 나는데, 이것이 나무의 생명의 길이입니다.”

-니시오카 쓰네가즈 〈나무에게 배운다〉중에서

이제 비가 내리고 봄이 오면 타죽은 나무 아래에서 아기 나무들이 일제히 고개를 내밀고 왁자지껄하며 노래할 것이다. 죽은 나무 등걸 아늑한 틈새에서 아기 나무들 씩씩하게 무럭무럭 자랄 것이다.

“너무 슬퍼 마세요, 우리가 대신할게요. 할 수 있어요. 따스한 햇살도 세월도 새소리도 모두 우리 편인걸요. 걱정마세요.”

자연은 스스로 그러하게 흘러오고 흘러간다. 나무에게 배우며, 나무처럼 살고 싶다. 꿈이 너무 야무진가?

장소현 / 시인·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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