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불의 위치를 잘못 갖다 놓았을 뿐 그들은 그저 불에 뛰어든 전사들입니다. 상황이 바뀌면 국가를 위해서도 기꺼이 불에 뛰어들 요원들입니다. 그들의 잘못은 그저 무능한 지휘관을 만난 것뿐입니다. 모든 것은 나와 내 상관의 책임이니….”
전 1공수여단장 이상현, 진심이 묻어나는 그의 증언을 듣다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의 부하들은 그런 지휘관을 만나 그간 행복했겠다. 그가, 그리고 그가 사랑한 대원들이 법적으로 어떤 책임을 질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인간적으로는 함께 울어주게 된다. 그때 왜 그 문장이 생각났을까.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비상계엄 증언 듣다 떠오른 법어
행복, 칼 쥔 권력 아닌 지혜서 나와
인내·고통감수성, 과오 맛볼 힘 필요
윤, 책임전가 말고 성숙할 계기되길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초기 경전인 『숫타니파타』에 나오는 말인데, 법정 스님의 책 제목이기도 했다. 처음 그 문장을 접했을 때 찾아온 것은 저것이 어떻게 가능하지, 라는 의문이었다. 축복의 말씀이 공허해 보였던 것이다. 신기한 것은 공허하다고 느꼈는데도 문득문득 떠올랐다는 것이다. 문장의 힘이었다. 이젠 알 것 같기도 하다. 그것은 공허한 문장이 아니라 빛으로 꽉 차 빛을 뿌리는, 태양과도 같은 문장, 신성한 문장이라는 것을!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바람에 실려 와 내 마음에 와 닿은 것들을 그렇게 축복해주다 보면, 이상하다, 내 마음은 어느새 햇살의 세례를 받은 듯 따뜻해져 있다. 나는 윤석열 대통령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대통령’의 지시를 거절하지 못해 수족의 역할을 하다가 기소된 사람들까지도 다 행복했으면 좋겠다. 대통령으로서, 장관으로서, 청장으로서 잘 나간다고 믿었던 그들은 이제 알게 되었을 것이다. 잘 먹고, 잘 마시고, 마음에 들지 않은 사람은 찍어내고, 말 한마디에 세상을 움직였던 그 삶이 결코 좋은 삶, 행복한 삶이 아니었다는 것을.
행복은? 지혜에서 온다. 그리고 지혜는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힘에서 온다. 그리스 사람들은 고통까지 감수하게 하는 그 지혜의 힘을 묘하게도 ‘운명에의 감수성’이라고 했다.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는 그리스 고전 『안티고네』가 가르쳐준 진실이다.
안티고네의 오빠 폴뤼네이케스는 반역죄를 저지르고 죽었다. 테베의 법에 따르면 반역죄인은 무덤을 가질 수 없다. 그렇지만 안티고네는 자기 마음의 법을 따라 오빠의 무덤을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국법이 정하는 죗값을 당당히 받기로 한다. 자기 의지에 따라 행한 일이기 때문에 석굴에 갇혀 생매장되는 일도 마다치 않는다. 그녀에게 책임전가나 회피 혹은 변명은 없다.
오히려 그녀의 약혼자인 하이몬이 나서서 왕인 아버지 크레온을 찾아가 그녀를 변호한다. “내가 왕인데 내 마음대로 통치할 수 없느냐”고 묻는 크레온을 향해 하이몬이 말한다. “한 사람만의 국가는 국가가 아닙니다. 사막에서라면 멋지게 독재하실 수 있겠지요.”
권력이 침범당하는 것을 용서하지 못한 크레온은 마침내 소중한 가족들을 모두 잃고 나서야 깨닫는다. 행복은 타인을 향해 언제나 칼을 뽑을 수 있는 권력에 있지 않다는 것을, 최고의 행복은 지혜라는 것을. 깨달음은 언제나 늦다. 그래도 그것은 삶을 바쳐 얻을 가치가 있을 만큼 소중한 것이다. 그것이 소포클레스 비극이 가르치는 중요한 진실이다. 그런데!
헌재에 나와 증인석에 선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보고 놀랐다. 그는 여전히 주인의 비위만 맞추는 하수인 같았다. 늘 격노하는 부모 밑에서 기가 죽어 부모 눈치만 보는 자식의 두려움 같은 것이 보였다. 슬펐다, 슬펐다, 슬펐다!
나라의 중심 대통령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보는 것은 불편하기까지 했다.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별들이 떨어지고 나라가 얼마나 많이 소란하고 불안한가. 그런데도 제 살길만 찾는 어리석은 가짜 ‘王(왕)’, 그는 자신만 살면 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
궁금하다. 별까지 달았던 사람들, 그날 친위 쿠데타의 행동대장이었던 그들이 지금 자기만 살겠다고 한결같은 그들의 증언을 모두 부정하며 그들의 일을 모르쇠 하는 리더를 어찌 생각할지. 죽을 각오도 없이 그렇게 큰 사고를 기획했다면 명태균의 말대로 5살짜리 아이에게 권총을 쥐여준 것이란 말인가. 이 상황에서도 그가 누려왔던 껍데기를 내려놓지 못하고 여전히 헛손질로 분열의 에너지에 기름을 붓고 있는 것을 보면 화려한 이력은 인격 혹은 지혜와는 무관하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는 것만 같다.
행복은 지혜에서 온다. 지혜는 인내에서 오고, 인내는 고통에 대한 감수성에서 온다. 고통에의 감수성은 헤세에 따르면 스스로 저지른 과오의 온갖 쓰라림을 맛볼 수 있는 힘에서 온다. 대통령까지 한 사람이라면 그 이력이 부끄럽지 않게 더 이상 책임 전가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수족들은 항명죄 때문에 어쩔 수 없었으니 나만 처벌하라고, 법과 함께 살아온 사람답게 당당하게 임했으면 좋겠다. 이번의 이 엄청난 사건이 고통을 감수하고 성숙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행운들이 찾아오는 것이 행복이라면 그 행복은 늘 불안하다. 행복은 지혜에서 온다. 지혜는 고통을 마다치 않는다. 아니 팽창된 자아가 산산이 부서지는 고통에의 감수성을 통해 성장한다.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이주향 수원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