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TV=신동현 기자] 확률형 아이템의 정보를 고의적으로 속인 게임업체에 대해 최대 3배에 달하는 징벌적 배상금을 부과하는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번 법안은 피해를 입증할 책임을 게임사에 두고 있어 게임업계 전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7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거짓 표기 등에 대해 게임사가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지는 내용을 기반으로 한 게임산업진흥법 일부 개정안이 작년 12월 3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해당 법안은 법률 공포 6개월 후 시행될 예정이다.
이 개정안에는 게임사가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정보를 표기하지 않거나 거짓으로 기입해 이용자에 손해를 입히면 손해배상 책임을 지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동시에 확률 거짓 표시의 고의·과실이 없다는 사실을 게임사가 직접 증명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했다. 만약 고의로 손해를 입혔다면 법원에서 인정한 피해액의 최대 3배까지 배상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번 개정안 통과로 게임업계에 큰 경종을 울렸다고 평가했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은 "확률형 아이템 문제는 그동안 자율 규제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였지만, 게임사들이 이를 무시하고 은폐하는 사례가 많았다"며 "결국 법적 규제가 불가피하게 된 상황까지 왔다"고 밝혔다.
김정태 동양대 교수는 "확률형 아이템 문제는 한국 게이머들이 오랜 기간 피해를 입어왔던 부분"이라며 "법안 통과가 너무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확률 정보의 투명성을 강화하고 게이머와 게임사 간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개정안 통과로 게임업계에는 여러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 중 하나로 다양한 장르의 게임을 개발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또 게임사들이 더욱 면밀하게 확률 정보를 관리하고, 리소스 확충에 나설 것으로 내다봤다.
김정태 교수는 "최근 스토리텔링과 그래픽에 집중하는 다른 방향의 게임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며 "확률형 아이템 비즈니스 모델은 게임사들에게 단기적으로 수익을 가져다줬지만 장기적으로는 소비자들에게 부정적인 인식을 심었고 이제는 게임사들이 다양한 게임을 만들어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해야한다"고 말했다.
게임업체 한 관계자는 "게임사들이 확률형 아이템 표기 오류에 대한 법적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됐다"며 "이를 준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강화하고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할 것"이라고 답했다.
개정안 통과로 중소 게임사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추가 인력과 리소스를 마련해야 한다는 점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다. 반대로 중소 게임사들도 확률 정보를 관리할 능력이 충분하며 확률을 투명하게 공개하면 문제가 발생할 이유가 없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정태 교수는 "중소 게임사들에게 이번 법안이 부담이 될 수 있는 점은 이해한다"며 "인력과 리소스가 부족한 게임사들에게는 확률 정보 관리 시스템 구축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게이머 보호와 신뢰 회복을 위해 확률형 아이템의 투명한 정보 공개는 필수"라고 덧붙였다.
위정현 학회장은 "중소 게임사들이 확률 정보 관리 시스템을 갖추지 못할 정도로 힘든 상황은 아니다"라며 "단순히 내부적으로 작성한 데이터를 소비자들에게 공개하는 수준으로 진행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정 기준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대형 게임사들에만 적용할 수도 있고 중소 게임사들에게는 좀 더 유예 기간을 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게임 업체 관계자는 "중소 게임업체가 타격을 받는다는건 다소 단편적인 시각"이라며 "중소 게임업체들도 게임을 서비스하는 이상 법안에 맞춰 운영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해외 게임사가 국내 시장에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면서도 제대로 된 규제를 받지 않는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해외 게임사 같은 경우는 국내 대리인을 두게 돼 있지만 과징금이 2000만원밖에 안된다"며 "해외 게임사 입장에서 보면 이 정도 벌금은 아무런 부담이 안 되는 금액"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국내 대리인 제도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법적으로도 제재 수단이 약하기 때문에 해외 게임사들이 규제를 회피할 수 있다"고 덧붙이며 제도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위 학회장은 "해외 게임사들, 특히 중국 게임사들이 확률 정보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조작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번 법안이 제대로 시행되면 중국 게임사들의 국내 진입을 막고 국내 게임사들을 어느정도 보호해 주는 비관세 장벽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김정태 교수는 "게임업계가 게이머와의 신뢰 회복을 위해 이번 법안을 계기로 내부 시스템을 정비하고 투명한 운영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며 "이는 단순히 처벌을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게임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필수 과제"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