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기업 괴롭히는 '빈쭉정이' 국감, 반복 지겹다

2025-11-04

최근 오랜만에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기 위해 영화관을 찾은 적이 있다. 워낙 오랫동안 진행된 시리즈인지라 기대가 컸었다. 다양한 OTT 서비스를 구독하면서 관람 횟수가 현저히 줄었지만, 극장으로 향하는 마음은 설렜었다.

하지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갔을 때 한숨만 쉬면서 극장을 나와야 했다. 전편보다 관객이 줄어든 모습이 이해가 갔다. 시리즈의 궤를 벗어나 수습이 어려운 시나리오, 의미 없는 신의 연속 등 그야말로 '빈쭉정이' 같은 영화였다. 차기작이 나오더라도 비싼 티켓값을 내고 영화관에서 보지는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얼마 전 끝난 2025년도 국정감사, 그중에서도 국토교통위원회가 '빈쭉정이' 같았다. 국토위 국감이 기대됐던 건 건설과 부동산에 대한 중요한 이슈들, 그중에서도 건설현장 안전 문제에 대해 실마리나마 찾을 기회였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기업을 찾아가면서까지 안전 문제를 강조하고 있는 와중에도 건설현장에서는 잇달아 사망사고가 발생했던 터다.

국토위에서도 마음을 단단히 먹었는지 대형 건설사 대표들을 대거 국감장으로 불러 모았다. 원래 8명에 달하는 대표들이 증으로 채택됐으나 국감 첫날 출석한 이들은 5명으로 줄었다.

국감장에 기업 대표들이 나와 국회의원들한테 혼이 나는 장면은 늘 있는 일이다. 사고 경위가 어찌 됐든 사망 등 중대재해가 발생했기에 건설사로서는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서릿발 같은 목소리로 건설사 대표들을 추궁하는 장면의 거의 볼 수 없었다. 아니 이들에게 질문하는 의원조차 보기 어려웠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의원들이 CEO들을 혼내지 않아서가 아니다. 건설현장 안전사고 문제는 대통령이 여러 번 언급한 현안이다. 유래를 보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건설사 대표를 한꺼번에 부른 만큼 국회 차원에서 '안전'에 대한 해결책 모색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건설사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 여러 가지 제도를 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사고가 나는 근본적인 원인을 짚어볼 것으로 봤다. 안전 시스템 도입으로 인해 늘어난 공사비용이 아파트 분양가의 상승과 연결되는 것을 어떻게 하면 최소화할 수 있을지 의견을 구하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정책적, 법적 방법을 찾아보자고 만든 자리가 국감이다.

하지만 5명 모두 합쳐 고작 15분도 채 되지 않아 증인 출석이 끝났다. 이렇게 헛되이 시간을 보낼 것이었다면 건설사 CEO들은 대체 왜 부른 것일까. 이러니 기업 대표들의 국감 출석을 놓고 정치인들의 기업 괴롭히기라는 말을 듣는 것이다. 이후 국감이 끝날 때까지 안전에 관해 진지하게 논의하는 장면은 볼 수 없었다.

지루하고 진부한데도 매년 똑같이 알맹이 없는 국감은 제발 좀 그만두자. 국민 세금을 들여 오랫동안 준비하면서도 변하는 게 없다면 관객 없이 텅 빈 영화관처럼 국감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는 바닥을 길 것이다. 이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정치인들이 져야 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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