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탁의 댓글 읽기] 감기에 항생제?…“내성 생기면 약 아닌 독”

2025-06-03

댓글을 읽으면 독자가 보입니다. 댓글에는 단순한 독자의 반응을 넘어 여론의 흐름이나 새로운 정보, 여전히 풀리지 않는 궁금증이 담겨 있습니다. 기사 바깥에서 이어지는 독자의 질문을 곱씹어보고 기사에 미처 담지 못했던 맥락을 풀어내려고 합니다. 그 시작점은 여러분의 댓글입니다.

“증상이 없어져도 처방된 약을 끝까지 먹지 않으면 내성 생긴다고 들었는데 아니라더라. 증상 없으면 즉시 끊어야 함”

“일단 편도선 부으면 항생제 먹어야 낫더라”

“감기에는 항생제 먹어야 빨리 낫더라고요. 그냥 먹였어요”

항생제는 세균 감염을 치료하기 위해 유해 세균을 제거하고 증식을 막는 약물이다. 항생제 발견으로 과거에 치료가 어려웠던 감염병이나 수술, 장기 이식 등이 가능해졌다. 실제로 전 세계적으로 흔한 감염성 질환인 폐렴으로 인한 사망률을 감소시킨 것도, 수술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감염률을 줄인 것도 항생제다.

항생제는 다양한 이점이 있지만 위험성도 존재한다. 몸에 해로운 세균뿐만 아니라 유익한 세균까지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항생제에 저항력을 가진 내성균이 생긴다는 것이다. 더구나 내성균은 직접 접촉, 체액 등을 통해 사람이나 농축수산, 식품 등 생태계의 다양한 경로로 발생·전파돼 사회 전반의 내성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항생제 내성이 생겼다는 것은 특정 유해 세균을 죽일 수 없다는 뜻과 같다. 사실상 항생제가 없던 시절로 돌아가게 되는 셈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항생제 내성을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10가지 위험’ 중 하나로 규정하기도 했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전 세계적으로 연간 500만명 이상이 항생제 내성균 탓에 사망하며, 2050년엔 1000만명까지 늘 것으로 분석하기도 했다.

◆감기지만 항생제 처방…환자가 요구 50% 넘어=감기에 걸렸을 때 항생제를 처방받지만, 감기는 바이러스로 인해 발생하기 때문에 항생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인플루엔자(독감)나 코로나19, 대부분의 기관지염 등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댓글에서처럼 ‘항생제가 감기를 빨리 치료해 준다’고 잘못 알고 있는 환자도 적지 않다.

다만, 감기에 항생제가 전혀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감기와 함께 나타날 수 있는 부비동염이나 편도염, 중이염 등의 질환을 예방하기 위해 항생제를 처방하기도 한다.

문제는 의료진이 이같은 상황이 우려되지 않는데 처방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이재갑 한림대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감기 환자 중에서 세균성 원인으로 폐렴이 될 가능성을 우려해 초반부터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며 “또 환자가 항의하거나 소송을 걸 수 있어 항생제를 쓰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2021년 관계부처가 합동으로 내놓은 ‘국가 항생제 내성 관리 대책’에 따르면 설문조사에 응답한 의사의 35%는 “항생제가 불필요한 상황이지만 처방한다”고 했다. 그 이유로 69.2%는 ‘환자의 악화 우려’, 51.3%는 ‘환자의 요구 때문’이라고 답했다.

항생제 처방률은 상급종합병원보다는 병·의원급에서 더 높게 나타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2023년 약제급여 적정성 평가 결과’에 따르면 항생제 처방률은 41.42%로 병원급이 50.97%, 의원급 40.90%, 종합병원 32.79%, 상급 종합병원 4.44% 수준이었다.

◆오남용 시 슈퍼박테리아 발생=항생제를 감기처럼 불필요한 질병에 사용하는 것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 항생제를 오남용하면 내성균이 생겨 정작 필요할 때 효과적인 치료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성균은 신종 감염병에 준하는 위협 가능성이 있다. 항생제 내성균을 ‘슈퍼박테리아’라고도 하는 이유다.

대표적으로 카바페넴 내성 장내세균(CRE)이 있다. 이 균은 폐렴이나 요로감염, 패혈증을 유발하고 치료제가 없어 치사율이 매우 높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올해 CRE 발생 건수는 1만8611건에 이른다.

정부 차원에서 항생제 관리에 나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2003~2012년 ‘국가 항생제내성 안정관리 사업’ 종료 후 부처별로 분절적으로 대응해 오다가 2016년 보건복지부, 농림축산식품부, 식품의약품안전처, 질병관리청 등 범부처가 모여 ‘제1차 국가 항생제 내성 대책’을 수립했다. 2021~2025년 2차 국가 항생제 내성 대책이 진행 중이다.

다만, 2019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항생제 사용량은 26.1DID로 그리스(34.1DID), 터키(31.9DID) 다음으로 높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운데 그리스와 터키에 이어 세번째다. DID는 인구 1000명당 하루 항생제 사용량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26.1DID는 2.61%의 인구 집단이 매일 항생제를 복용하고 있다는 말이다.

항생제는 우리 몸을 살리는 ‘약’이지만 잘못 사용하면 생명을 위협하는 ‘독’이 될 수 있다. 감기 증상이 있을 땐 항생제를 요구하기보다 정확한 진단과 의사의 판단을 신뢰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항생제는 정해진 기간만큼 정확히 복용해야 한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교수는 “항생제 사용에 대한 진단과 치료에 대해서는 의사의 의견을 따르는 게 좋다”며 “처방된 약은 복용 기간을 잘 지켜주는 것이 중요하고 중간에 복용을 끊어버리면 균이 제대로 죽지 않아 내성이 생길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조언했다.

박병탁 기자 ppt@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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