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퍼 이영지도 '엄마가방' 들었다…10대까지 홀린 '중가 럭셔리' [비크닉]

2024-09-21

b.트렌드

트렌드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망과 가치를 반영합니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모호함을 밝히는 한줄기 단서가 되기도 하고요. 비크닉이 흘러가는 유행 속에서 의미 있는 트렌드를 건져 올립니다.

최근 명품 업계가 전반적으로 침체한 가운데, 이른바 ‘접근 가능한’ 중가 럭셔리 브랜드가 선전하고 있다. 고물가와 경기 침체로 소비자들의 지갑이 얇아진 데다, 새활용(업사이클링) 등 Z세대의 구미에 맞는 새로운 전략을 펼친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되살아난 코치, Z세대 주목

대표적인 사례는 엄마 가방 취급받으며 철 지난 브랜드로 여겨졌던 패션 브랜드 코치(Coach)의 화려한 부활이다. 코치 모회사 태피스트리는 지난달 2024 회계연도 매출이 전년 대비 1% 늘어나 66억7000만 달러(8조8700억원)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태피스트리는 코치를 포함해 케이트 스페이스, 스튜어트 와이츠먼 등의 브랜드를 보유한 미국의 패션 기업이다. 이중 코치는 전 세계적으로 50억 달러(6조6500억원)를 벌어들여 기존 연간 매출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는 LVMH·케어링 등 유럽발 초고가 명품 기업의 저조한 실적과 대비된다. LVMH는 올해 상반기 지난해 같은 분기보다 1% 줄어든 417억 유로(약 62조원)의 매출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구찌 등을 보유한 케어링 그룹은 상반기 90억 유로(약 13조원) 매출을 기록, 전년 동기 대비 11% 감소했다.

코치의 부활은 지난 202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브랜드는 당시 전 세계적 트렌드인 Y2K(세기 말 패션)와 복고의 영향으로 1980~90년대 빈티지 핸드백의 인기가 올라가는 현상에 착안, ‘리 러브드(Re-loved)’라는 친환경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고객의 묵은 가방을 수리 및 업사이클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 코치의 C 로고가 빽빽하게 수 놓인 모노그램 숄더백 등이 틱톡 등 SNS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이 이때부터다.

빈티지 코치백과 함께 2019년 출시된 태비 백의 선전도 한몫했다. 1970년대 디자인을 재해석해 로고 C를 간결하게 내세운 가죽 소재 핸드백을 내고, 래퍼 릴 나스 엑스, 이영지 등 젊은 세대에 통하는 유명인을 모델로 기용했다. 특히 패딩처럼 가방을 부풀린 필로우(pillow·배게) 태비백이 Z세대에 눈도장을 찍으면서 본격 부활의 신호탄을 쐈다.

지난해 4월에는 하위(second) 브랜드 ‘코치토피아’로 본격 Z세대 ‘흥행템’의 반열에 올라섰다. 버려지는 가죽을 활용하는 업사이클링 브랜드로 코치보다 가격을 낮춰 1020 세대의 지지를 끌어냈다. 특히 코치토피아의 ‘에르고 백’은 출시 때마다 완판 행진을 벌이는 등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 심플한 숄더백 디자인에 리본이나 참(장식)을 다는 식으로 최신 ‘백꾸(가방 꾸미기)’ 트렌드에도 맞아 떨어진다는 평가다. 브랜드에 따르면 코치는 올해 북미에서만 약 650만 명의 신규 고객을 확보했는데, 이 중 절반이 Z세대라는 분석도 나온다.

중가 브랜드 잘 나가네

코치와 함께 흥행하는 중간 가격대 브랜드로 롱샴이 꼽힌다. 지난 2010년대 초까지 인기를 끌었던 롱샴의 ‘르 플리아쥬’는 최근 길거리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잇백(it bag)’이 됐다. 지난해 초부터 배우 정려원, 가수 강민경 등 국내 유명인들이 롱샴의 가방을 들면서 조금씩 화제가 됐고, 나일론 가방 특유의 실용성과 접근 가능한 가격대를 매력으로 최신 유행 가방 브랜드로 회자하고 있다. 실제로 롱샴은 지난 2023 회계연도에 글로벌 매출이 전년 대비 44% 증가했다고 밝혔다.

미국 디자이너 브랜드 토리버치도 최근 주목받는 중간 가격대의 럭셔리 브랜드 중 하나다. 2004년 설립된 토리버치는 한동안 촉망받는 미국 브랜드로 상업적 성공을 이어갔지만, 차츰 최신 유행 리스트에서는 멀어졌던 것이 사실이다. 지난 2019년 초 LVMH 출신의 피에르 이브 루셀이 최고 경영자로 합류했고, 2022년 봄·여름 컬렉션부터 패션계의 시선을 끌어오다가 지난해 독특한 디자인의 슬리퍼 ‘피어싱 뮬’이 히트작으로 떠올랐다. 패션 검색 엔진 LYST에 따르면 지난 2023년 3분기 기준 토리버치의 검색량은 지난 분기 대비 15% 증가했으며, 피어싱 뮬은 인기 제품 목록에 올랐다. 벨라 하디드, 에밀리 라타이코프스키 등이 피어싱 뮬을 신은 모습이 목격되는 등 이른바 ‘뉴(new) 버치’ 시대에 진입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접근 가능한 럭셔리 뜬다…. 버버리는 가격 낮춰

한동안 럭셔리 및 패션 시장은 초고가 혹은 저가로 양극화해왔다. 코로나19 기간 이른바 ‘보복소비’ 여파로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를 필두로 한 초고가 브랜드가 경쟁적으로 가격을 올리면서 럭셔리 시장을 선도했고, 국내 백화점의 명품 브랜드 성장률은 2022년 기준 30%에 육박하는 등 매출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최근에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7월 백화점 해외유명브랜드(명품)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1% 감소했다. 백화점 명품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두 자릿수 감소율을 기록한 것은 코로나19로 전국이 ‘셧다운’ 됐던 지난 2020년 3월 이후 4년 4개월 만이다.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지면서 해외 구매가 늘어난 것도 원인으로 꼽히지만, 무엇보다 이어지는 불황과 소비심리 위축으로 2030의 명품 소비 자체가 줄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불경기가 지속하면서 한동안 소비자들의 시야에서 벗어났던 중간 가격대의 ‘미들 럭셔리’ 브랜드가 주목받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에루샤’ 같은 초고가 브랜드 일색에서, 비교적 합리적 가격대의 품질 좋은 브랜드에 대한 선호가 높아진다는 얘기다. 코치와 롱샴, 토리버치 등의 이른바 ‘매스티지(Mass+Prestige)’ 럭셔리의 선방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특히 이 같은 변화는 지갑이 얇은 2030 젊은 세대 사이 더 확산하는 모양새다.

고가 전략을 고수하던 명품 브랜드들의 가격 인하도 이어지고 있다. 버버리가 국내 가격을 20% 안팎으로 내렸고, 생로랑도 국내 가격을 3~15%가량 인하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7월 “럭셔리 산업이 초부유층 쇼핑객을 유혹하는 데 지나치게 열중한 나머지 중요한 고객인 중산층의 외면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스턴 컨설팅 그룹에 따르면 글로벌 럭셔리 매출의 절반 이상은 고가 핸드백과 의류, 보석에 연간 2000유로(약 300만원) 미만을 쓰는 3억3000만명의 중산층 소비자로부터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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