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일기] 말 많은 세상, 말이 사라지는 나

2025-07-31

요즘은 무언가를 말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오히려 세상 사람 모두가 쉽게 말을 하는 시대인데도 말이다. 인터넷을 통한 세상은 24시간, 365일, 매초의 순간에도 떠들썩 시끄럽고, 내가 한순간도 놓지 못하는 휴대폰엔 광고, 문자, 댓글, 리뷰, 공지 등의 알림이 끊임없이 울린다.

세상은 정말 말이 넘친다. 그 세상에서 나는 정작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잃게 되는 것 같다.

예전에는 말이 참 많았다. 친구들과 있으면 늘 얘기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자기 자랑도 슬쩍 끼워 넣고, 분위기가 무릇 익으면 진지한 고민도 털어놓으며 서로에게 위로와 격려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말을 할수록, 무언가를 설명할수록, 오히려 오해가 커지는 경험이 많아졌다. 특히 온라인의 공간에서의 말은 나의 감정을 배제한 글이면서 문장의 의도보다는 단어만 잘려 나가고, 말의 맥락보다는 논쟁만 남는 걸 경험한다.

그럴수록 나는 자꾸 말을 안 하게 된다. 시대의 변화인지, 나만의 변화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요즘엔 차라리 침묵이 더 안전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게 된다.

가끔은 “요즘 어때요? 잘 지내요?”라는 질문을 받는 것도 부담스럽다. 그 짧은 문장 하나에 무수한 감정과 상황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닌다.

일이 잘 풀리는 것도 아니다. 몸이 썩 건강한 것도 아니다. 가정도 그럭저럭 잘 지켜내고는 있지만, 때로는 지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주저리 뱉어내기엔 부담스러움이 다가온다.

그래서 결국 그냥 “잘 지내”라는 말로 끝내버린다. 편하지만, 공허하게.

사실 요즘 말이 줄어드는 건 내 마음속 언어도 줄어들고 있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생각은 있는데 정리가 되지는 않고, 느낌은 있는데 표현이 서툴다.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내 마음은 마음속에서만 맴돌다 스스로 사라진다.

이런 시대에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더 빛난다. TV를 통해서든 인터넷을 통해서든 설득력 있게, 유려하게, 감정을 흔들며, 진심을 알지는 못하지만 말만 잘하면 더 인정받는 시대인듯하다. 진심으로 얘기하는 것이지만 표현이 서툴다고 느껴진다면 그 사람은 점점 더 뒤로 밀려난다. 나는 그런 현실 속에서 회피인지, 생존인지는 불명확하지만 어쩌면 말하는 사람보단 기록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지도 모르겠다.

말은 흔들리고 사라지기 쉽지만, 기록은 자료로 남는다. 말은 맥락이 휘지만 글은 의도를 붙잡고 나아갈 수 있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씩이지만 글을 쓰고 있다. 말로 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어쩌면 누군가는 이해해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담아서 말이다.

말이 많은 세상에서 말이 사라져가는 나. 하지만 그 침묵이라는 방패를 들고 애써 버티고 있는 나의 마음을 누군가는 알아주지 않을까? 오늘도 그렇기에 몇 번의 쓰고 지움을 반복해서 자료를 남긴다.

류민수 펜을 든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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